이 논문의 목적은 묘지석물(墓地石物) 중에서 망주석(望柱石)의 올바른 설치 위치가 어디인지 살펴보고, 그 망주석의 의미를 탐구하는 데 있다. 따라서 필자는 먼저 조선시대의 묘지석물, 특히 망주석의 기원과 그것이 설치된 위치를 왕릉과 사대부 묘지로 나누어 비교⦁고찰해서 망주석 설치의 기준을 살펴보았다. 중국의 망주석은 묘지나 마을의 위치를 알리는 화표(華表)로서 일종의 신호(sign)체계인 사실적 의미만을 갖는 표지석(標識石)이다. 이와 달리, 조선의 망주석은 표지석의 의미뿐만 아니라 망자의 경건한 영역을 상징하는 예악문화의 가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이 논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첫째, 조선왕조실록과 산릉도감의 기록에 의하면, 왕릉은 국조오례의⦁춘관통고 등의 규정과 원칙에 근거해 조성되었다. 반면에 일반 사대부의 묘지는 아마도 조성기준이나 근거자료인 서적이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일정한 기준 없이 묘지석물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까닭에 묘지석물의 표본인 왕릉상설의 구성을 풍수적으로 살펴봄으로써 망주석 설치 위치의 기준을 탐색하는 예비적 고찰로 삼았다. 둘째, 일정한 기준과 근거문헌 없이 석물을 설치한 사대부 묘지의 여러 사례를 탐구하였다. 많은 수의 사대부들은 집안의 흥망성쇠에 따라 묘지석물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외면한 채 자의적으로 석물을 개축하거나 설치하여 그 존재 의미를 훼손하였다. 묘지의 석물문화는 토템신앙과 도교⦁불교 및 유교의 가치관과 세계관 등이 함축된 한민족의 정신과 문화예술적인 가치가 내포되어 있다. 더욱이 묘지석물은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조상에 대한 효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예악(禮樂)문화의 상징체계이다. 따라서 가문의 흥망성쇠나 개인의 생각, 혹은 정치적 입장에 의해 일정한 원칙 없이 석물을 설치하거나 개축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국가적으로 규정된 한국의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기준을 추종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조선 왕릉과 사대부 묘의 석물 중에서 특별히 망주석을 선택해서 그 올바른 설치기준을 제시하였다. 셋째, 한국 망주석의 설치 위치와 의미는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고찰하였다. 중국의 망주석은 화표(華表)로서 마을 입구나 묘역 입구에 설치해 마을이나 묘지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석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망주석은 이러한 표지석의 역할 뿐만 아니라, 망자의 영역과 그 영역을 수호한다는 상징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망주석은 다음과 같은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왕릉의 경우에 하현궁을 알리는 경계석이며, 이것은 망자의 영역을 알리는 표식이다. 풍수적 사고에 의하면, 혈(穴)과 당(堂)의 구분으로도 볼 수 있고, 아울러 세호의 운동성을 통한 좌우 청룡과 백호의 음양적 조화를 추구한 풍수적 비보의 역할도 하였다. 또한 영혼이 북두칠성으로 나가는 통로인 동시에 제례 때 다시 내려오는 상징적 길, 즉 하늘의 길로 인도하는 표식이며 관문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의미가 함축된 망주석은 한국의 전통적인 정신문화와 풍수적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망주석의 설치 지점은 그 위치가 정확하게 명기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 『경국대전』, 『국조오례의』, 『주자가례』, 『춘관통고』 등에 근거해야 한다. 다시 말해, 망주석은 조선 왕릉의 상설도를 표준으로 삼아, 즉 혼유석 좌우측에 연하여 사성(莎城: 활개⦁곡장)이 끝나는 지점의 안쪽인 상석 좌우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韩语论文题目,韩语论文范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