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1964년 북한 문화혁명의 변화과정 연구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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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is about the transition of North Korean Cultural Revolution from 1958 to 1964. To reason the socio-cultural unification of South and North Korea, we need to focus on the transition of them. The term, ‘Cultural Revolution’ has been a sym...

This study is about the transition of North Korean Cultural Revolution from 1958 to 1964. To reason the socio-cultural unification of South and North Korea, we need to focus on the transition of them. The term, ‘Cultural Revolution’ has been a symbolic phrase for the construction of socialism culture in North Korea over the last 60 years and a movement to practice the term. Thus, the ‘Cultural Revolution’ plays an important role to show the cultural transition in North Korea. Based on the perspective, this study deals with an overall transition process from the acknowledgement of Cultural Revolution in socialism, which tries to look into the historical significance and the reality of the revolution during the period. Cultural Revolution in North Korea was influenced by the idea of newly born socialism. In the country driven by socialism, the universal idea of Cultural Revolution, based on the Marxism–Leninism which bad been prevailed in the late of 1940, was established. They were realizing their society by accepting the theoretical idea of the Cultural Revolution that constructing the culture of socialism should be on the basis of materials. North Korea also accepted this idea, trying to make use of it to solve social problems. Around 1958, when the economy was developed and renovation in socialism was finished, they started to push forward the Cultural Revolution. Cultural Revolution in North Korea was to create labors and to provide environments. Laborers should be loyal to the policy and the environments suitable for the reality which was undergoing technical improvement in economy and politics. Escaping from backwardness prevailed in the society, it was trying to seek for the culture based on socialism operation system. During the revolution, it was essential to focus on the cultural sanitary, education, and farms and city construction. In the case of ideology education, it was supposed to belong to the revolution in the theory. However, it was considered an independent one in the reality. While people were mostly concerning on these matters, other businesses were undergone as well. Specific examples are as below. In the sanitary and culture projects, the primitive environment was improved and people’s attention to the sanitary was established. Also, the government tried to make a cultural environment which was essential for socialism by eradicating the vestiges of previous society. Education projects was regarded another priority. It was desperate for the government to foster labors who were loyal to the policy as well as possessed technical expertise. For the education, overall reformation of the general and adult education proceeded. Constructing a farm and city started to vitalize from 1957. City was an exemplary space of socialism in which apartments and cultural facilities for laborers were located. Farm was a place filled with cultural facilities suitable for socialism by locating towns and villages for collective farms or working groups. In the case of ideology education, it was sometimes brought up as a task of Cultural Revolution but was regarded so important that it developed independently. The importance of ideology education had been stressed between politics and economy area in North Korea from the late of 1950 to the early of 1960. As the Cultural Revolution proceeded, some characteristics showed up different from earlier times. First, in the era of constructing socialism, it caused a massive cultural transition as a part of Chollima Movement. Second, Cultural Revolution had a long-term goal and had had the culture of socialism smear into the daily life of people by underlining system and practice. The Cultural Revolution in North Korea had been transformed as the situation got aggravated at home or abroad around 1962. This was from the importance to keep the frugality in production and lifestyle and to prevent people from renunciation of their nationality at the same time. As a result, the ideology revolution could be independent from the Cultural Revolution in 1964. The independence of the ideology revolution was regarded to people as a theoretical justification explaining the importance of ruling power and construction policy of socialism. Based on this aspect, various theories were created as well as monolithic systems were born. In the history of North Korea, this was a turning point to get out of the universality.

본 논문은 사람과 사람 간의 통일을 사유하며, 인문학적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통일인문학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통일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는, 북...

본 논문은 사람과 사람 간의 통일을 사유하며, 인문학적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통일인문학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통일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문제 중 하나는, 북한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면적인 이해를 갖추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북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북한 주민의 생활문화 변화과정에 천착할 필요가 있다. 문화혁명은 지난 70여 년간 북한 사회주의 문화건설을 이론적으로 상징하는 표어이자, 실제로 그를 추동하는 운동이었다. 문화혁명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북한이 형성하고자 했던 사회주의적 문화의 실체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살아 숨 쉬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본 연구는 북한 문화혁명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써 초기 북한 문화혁명의 도입과 변화과정을 탐색했다. 범 사회주의권의 문화혁명 인식부터 시작하여 북한에의 도입·실행양상과 변화과정을 총체적으로 살펴 봄 으로써 이시기 문화혁명의 실체를 규명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탐구했다. 초기 북한 문화혁명은 소련과 신생 사회주의 국가들의 문화혁명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북한과 같은 신생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인민민주주의론이 정착되던 1940년대 말에 보편적 문화혁명 개념이 정립된다. 이 시기 신생 사회주의 국가들은 일정한 물질적 토대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적 문화를 건설한다는 문화혁명의 원론적 개념을 받아들인 가운데 이를 자신의 현실에 맞춰 구현해 나가고자 하였다. 북한의 문화혁명 역시 이 맥락 안에 있었다. 일정한 물질적 토대에 기반한 사회주의 문화건설의 대의에 충실하고자 한 가운데 경제건설의 당면 과업 해결에 문화혁명을 활용한 것이다. 다만 북한 문화혁명이 시작할 때 보편적 맥락에서 벗어난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었다. 북한의 문화혁명은 이론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의 문화혁명 개념에 충실했지만, 정책적으로는 기존 사회주의 국가들과 달리 사상 교양을 자신의 영역에서 분리했다. 이는 정치적 갈등과 협동화 과정에서 농민의 반발로 인해 사상 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이 커지며 발생한 현상이었다. 이 시기 북한 문화혁명의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우선 경제적으로는 당 주류의 정책을 충실히 집행하고 일정한 기술 역량도 갖춘 생산인력과 문화를 만들어 내고자 했다. 사회적으로는 잔존했던 문화적 후진성 탈피와 1950년대 말 국가적으로 정립된 사회주의 경리에 기반을 둔 본격적 사회주의 문화창출이라는 목표를 동시 추구하였다. 전개 양상에서는 위생 문화 사업, 교육사업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농촌과 도시건설에 주목하였다. 이들 부문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과학-문학의 전면적 발달 등 사회주의 문화건설과 관련된 여타 사업도 병행하여 추진하였다. 위생 문화 사업은 위생 사업과 문화성 증진을 위한 사업이 연계되어 추진되었다. 우선 각종 사회운동을 통해 위생 사업을 전개함으로써 북한에 만연한 전염병의 매개체를 제거하고 농촌의 낙후한 환경을 개선하였다. 이와 동시에 문화성 증진사업을 진행하여 사회주의 근로자로서 주민들이 살기 편한 위생적, 문화적 생활습관과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였다. 특히 1960년대를 넘어가면서 북한의 경제건설이 더욱 진척됨에 따라 수준 높은 생산문화, 생활문화를 갖출 것이 요구되기도 하였다. 교육사업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에 필요한 기술 인재양성이 절실했으며 이에 더하여 사상 교양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맞추어 교육과정, 제도가 대대적으로 개편되었으며 교과목도 변천을 겪었다. 혁명전통을 간직한 채 당 주류를 따라 북한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적인 인력, 기술적 소양을 갖춘 유능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북한 교육의 주요 목적이었다. 단일 권력 체제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주의 건설 필요에 맞는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자 한 것이다. 문화혁명 과업의 일부는 지난 수년간 북한에서 추진한 문화 사업들의 연장선에 있었다. 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지난 시기와 구분되는 점들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사회주의 건설의 대고조라는 시대적 기반에 따라 거대한 폭의 문화적 변화를 일으키고 대표했으며 마침내 천리마 운동의 일부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일회성 문화 사업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문화혁명을 추진하여 사회주의적 경리에 기반을 둔 문화를 주민의 일상과 환경 속에 완전히 정착시키고자 했다는 점이었다. 북한의 문화혁명은 1962년 이후의 대내외 상황 악화를 거치며 일정한 변용을 겪게 되었다.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전반적 기술의무교육제의 실현은 1962년 실행예정에서 1967년 안에 실행하도록 연기되었다. 이와 함께 자력갱생을 위해 절약하는 생산-생활 문화의 함양이 강조되었다. 특히 주민동원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사회주의 사상 교양이 사상혁명으로 정책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분리되기 시작했다. 사실 1961년 개최된 조선로동당 4차 대회를 전후한 사회주의 정책-이론연구과정에서, 기존 문화혁명 정책은 사회주의 교양 사업을 포함하는 것으로 재해석된 바 있었다. 하지만 대내외 상황악화로 인한 주민 교양, 동원의 필요성이 증가하여 이는 다시금 유명무실화 된 것이다. 결국 북한은 1964년 사회주의 농촌테제를 계기로 사실상 이론적으로 문화혁명에서 사상혁명을 분리시켰다. 이 변화는 이후 북한사의 전개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현실적 적용에서 이탈하는 과정의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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