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지성으로서 백제 박사의 성격과 역할을 연구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설정하였다. 첫째, 백제의 토착지성은 누구였으며, 그 성격과 역할은 무엇인가? 둘째, 백제의 박... 본 연구는 지성으로서 백제 박사의 성격과 역할을 연구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연구문제를 설정하였다. 첫째, 백제의 토착지성은 누구였으며, 그 성격과 역할은 무엇인가? 둘째, 백제의 박사는 어떤 활동을 하였으며, 동시대 다른 나라와의 박사 교류가 가지는 성격과 역할은 무엇인가? 셋째, 박사가 백제의 지성인으로서 새로운 문화의 형성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박사가 등장하기 전부터 백제에는 老軀‧日者‧巫者의 토착지성이 있었다. 노구는 둔갑술과 같은 신이한 능력을 보유하였고, 일자와 무자는 천문과 기이한 자연현상을 관찰하여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였다. 또한 노구는 보호령 또는 예언가로 자리매김하여 사람들에게 주술적인 안정을 주었으며, 일자‧무자는 天變‧地異의 자연현상을 점복으로 예언하여 사람들이 대비할 수 있도록 하였다. 노구는 특정 기관에 예속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활동하였으며, 일자‧무자는 왕의 주변에서 자문관 정도로 활동하였을 뿐 정식 관등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老軀‧日者‧巫者는 비범한 능력을 바탕으로 정신세계에 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백제의 박사 중 최초로 기록된 고흥은 근초고왕대(346∼375) 書記를 편찬하였다. 그는 왕족을 중심으로 국가기록을 편찬하여 중앙집권적 통치체계를 확립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동아시아의 공식문자인 한자를 백제에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국가 간 교류를 확대하는데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박사를 통한 백제의 대외교류는 양‧왜‧신라에 걸쳐 있었다. 박사를 통한 양과의 교류 기록은 성왕대(523∼554)에 나타났다. 백제는 양으로부터 유교에 정통한 毛詩博士‧講禮博士를 초빙하였다. 양의 모시박사는 백제 사람들의 유교서적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고, 백제 사람들의 문학적 소양과 유교식 통치술을 발달시켰다. 강례박사 육후는 백제가 유교의례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儀禮·周禮·禮記의 三禮에 맞추어 국가의례를 정비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사를 통한 왜와의 교류는 아신왕대, 무령왕대, 성왕대, 위덕왕대에 걸쳐 있었다. 아신왕대(392∼405)에 파견된 아직기‧왕인은 한학과 유학을 왜에 전수할 만큼 백제의 학문수준이 고도화되었음을 보여주었다. 무령왕대(501∼523)에는 오경박사 단양이‧고안무가 왜로 교대 파견되며 유교문화의 국제적인 전파자로 활동하였다. 이들의 정기적인 파견과 복귀는 백제와 왜가 박사를 통하여 지속성을 갖고 학술‧외교활동을 이어갔음을 보여주었다. 오경박사는 문인계통 박사로 학술의 전파, 통치이념과 국가체제의 정비에 기여하였다. 성왕대(523∼554)에는 오경박사뿐만 아니라 易博士‧曆博士‧醫博士 등 잡학계통의 박사도 파견되었다. 易博士는 占卜 및 陰陽學의 전문가로 보인다. 曆博士는 천체의 운행을 기준으로 시간‧날짜를 구획하는 역법의 전문가로, 남조‧백제‧왜가 공통적인 紀年을 설정하는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위덕왕대(554∼598)에는 露盤博士‧瓦博士‧書人博士가 왜로 파견되었는데, 이들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사원 건축을 주도한 불교문화의 전파자였다. 신라의 경우 「울진 봉평리 신라비」에 거론된 탁부의 박사가 백제 박사로부터 영향을 받아 운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비가 건립될 무렵 신라가 백제사신의 안내‧통역으로 양과 교류한 점, 백제가 왜로 박사파견의 경험이 많았던 점, 나제동맹의 시기였던 점의 이유 때문이다. 백제의 박사는 비범한 능력, 정신세계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 老軀‧日者‧巫者가 가졌던 지성인의 속성을 계승하였다. 하지만 토착지성이 선천적인 신이함, 비공식적인 측면의 국내활동을 하였다면, 박사는 후천적인 탁월함, 국내와 국제를 포괄한 공식적인 측면의 활동을 하였다. 백제는 양을 비롯한 나라로부터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로 박사 교류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왜의 군사지원을 이끌어 내거나 신라와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데도 박사를 활용하였다. 백제 박사는 사서오경의 유학‧한학만이 아니라 점복‧역법‧의학의 잡학, 금속‧토도‧목칠공예의 기술학까지도 포괄하여 어느 분야에서든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당대의 문화를 주도한 지성이었다. 백제가 한문을 중심으로 유교‧도교‧불교‧율령을 토대로 하는 동아시아 공유문화권을 형성하는데 기여하였다면, 동아시아 공유문화권을 형성하는데 교량적 역할을 한 주역은 바로 백제의 박사라고 할 수 있다. ,韩语论文范文,韩语毕业论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