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국제결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하...
1990년대 후반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국제결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다문화·다인종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결혼이주여성의 적응과 정착을 위한 정책과 사업을 시작하였다. 민과 관 모든 영역에서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결혼이주여성과 그 가족을 위한 사업이 크게 실시되었으며, 다문화 붐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였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결혼이주여성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 한국 가족생활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국의 가정과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아내·어머니이자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로의 통합과 동화가 필요한 수동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현실에서 결혼이주여성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동화의 요구를 받는 제약 속에서도 아내와 어머니로서 가정에 머물러 있지 않으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노동자이자 시민으로서 정착한다.
이에 본 연구는 한국 사회에 일방적으로 동화될 것을 요구받고, 일차적인 생활 공간을 가정영역으로 제한받는 결혼이주여성이 사회 주체로서 자신과 집단,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파워를 획득하는 과정은 어떠하며, 이 획득 과정에 영향을 주는 조건과 요인은 무엇인지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본 연구는 결혼이주여성의 경험이 가진 의미와 조건을 맥락적으로 드러내는데 초점을 두기 때문에, 과정과 맥락을 탐색하고 이해하는데 유용한 질적연구방법을 선택하였다. 본 연구의 참여자는 도시지역(서울, 경기, 인천)에 거주하는 아시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며, 한국에 거주한지 7년 이상 되었으며, 자원봉사, 취업 등 다양한 사회참여 경험을 가진 23명의 결혼이주여성을 심층면접하여 분석하였다.
본 연구결과 결혼이주여성이 파워를 획득하는 단계는 4단계로 나타났다. 첫 번째 단계는 이중적 특성을 가진 동화 단계로서 자발적·전략적인 동화와 비자발적·강제적 동화가 동시에 나타난다. 결혼이주여성은 이주로 인해 익숙했던 모국의 환경과 사회관계로부터 단절된 반면, 정착한 한국에서 혼자서는 일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에 직면하며 ‘좌절’, ‘고립감’, ‘무력감’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경험한다. 결혼이주여성은 모국에서처럼 일상적 생활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려면 생존 자원으로서 한국어 능력과 사회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한국 사회로의 동화는 적응과 정착을 위한 자원이 되기 때문에 자발적인 특성을 갖는 동시에, 반대로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인 특성도 함께 가지고 있다. 빠르게 동화하기를 기대하는 한국 가족은 결혼이주여성이 가정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수행하고, 모국 언어와 생활 문화 등의 문화적 차이를 드러내지 않기를 원하였다. 특히 가족의 재생산은 결혼이주여성에게 협의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과업’이자 ‘의무’가 되었다. 하지만 가족으로부터의 강제적 성격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억압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강제적이지만 수용하였을 때 가족으로부터 ‘신뢰’와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워를 획득하는 두 번째 단계는 다문화 정책에 의해 포섭되어 의존하는 단계이다. 다문화 정책의 제도화로 결혼이주여성이 정보를 획득하고 자원에 접근하는데 우호적인 환경이 형성되었다. 특히 결혼이주여성 대상의 교육과 사업은 결혼이주여성이 가정 ‘밖으로’ 나오는 공식적인 이유였으며, 교육과 사업을 통해 만난 모국 여성들과의 교류가 가능해졌다. 모국 여성들과의 만남은 결혼이주여성에게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가족의 동화 압력으로부터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또한 결혼이주여성은 다문화 행사에 각국의 전통 노래, 공연, 음식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였으며, 다른 문화를 가진 ‘존재(being)’임을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인정과 귀속감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문화 현장에서 문화를 다루는 방식은 각 나라의 문화를 ‘관광’하고 레스토랑에서 다른 나라 음식을 ‘맛보는’ 것과 같이 다양한 문화를 ‘전시’하고 ‘체험’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문화적 차이만을 강조하는 다문화는 결혼이주여성을 ‘우리’와 다른 ‘그들’이라는 타자의 위치에 고정화하는 한계를 가진다.
다문화 정책의 제도화로 결혼이주여성 집단과 다문화 일자리가 형성되면서, 결혼이주여성 간의 접촉면과 빈도가 증가하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발적인 모임으로 연결되었다. 이주 초기에 결혼이주여성이 생활 지역에서 문화정체성을 유지하며 서로에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작은 친목 모임들이 생겨나는 기반이 되었다. 비록 자발적이 아닌 위로부터의 집단화이지만, 집단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결혼이주여성은 소속감과 자신감을 획득하였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을 경험한다. 특히 집단으로서의 활동 경험은 개별화된 존재 일 때는 가질 수 없는 대표성을 가지며, 사회적 행위체로서 인정받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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