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주 일본어소설 연구
-『인왕동시대』, ?노지?, ?우수인생?, 『개간』을 중심으로
김지영
아흔 살이 넘어서도 영어로 작품을 발표한 장혁주는 인생의 절반을 조선에서, 나머지 절반을 ...
장혁주 일본어소설 연구
-『인왕동시대』, ?노지?, ?우수인생?, 『개간』을 중심으로
김지영
아흔 살이 넘어서도 영어로 작품을 발표한 장혁주는 인생의 절반을 조선에서, 나머지 절반을 일본에서 살았다. 인생의 초?중반에는 ‘장혁주’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지만, 일본에서 활동한 중?후반에는 ‘노구치 가쿠츄우’ 혹은 ‘노구치 미노루’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처음으로 일본 문단에서 상을 받고 화려하게 작가생활을 시작한 장혁주는 한국과 일본 양쪽으로부터 배제당한 작가였다. 그의 친일행적 때문이기도 했지만, 조선어와 일본어로 창작을 했던 장혁주는 소속을 논하기에 부적절한 표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그의 친일행적 때문에 장혁주의 작품들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의 문학적 가치를 폄하하기에는 장혁주가 걸어온 발자취가 길고 분명해서 문제적이다.
프로문학적인 경향이 드러난 초기 작품들부터 통속적인 연재소설, 동경 또는 만주 이주 조선인을 다룬 소설, 국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내용을 담은 소설 등 장혁주가 발표한 소설들은 그 수가 많은 만큼 내용도 다양하다. 문제는 그 소설들 중 상당수를 일본어로 썼다는 사실이다. 식민자의 언어인 일본어로 작품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피식민자의 언어인 조선어로도 작품을 발표했던 장혁주에게 ‘일본어’란 새로운 근대문명의 상징이자 성공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그래서 장혁주는 1936년에 일본문단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동경으로 이주한다. 일본어로 발표한 소설이라서 번역작업이 끝나고 출판되어야만 장혁주의 소설들을 한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혁주 연구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연구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런 점에서 장혁주 연구는 그의 친일행적만큼이나 언어의 문제가 넘기 힘든 장애물로 자리잡고 있다.
장혁주는 태생부터 비밀에 쌓인 작가이고 자신의 생애와 관련된 글을 많이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창작했다고 밝힌 『인왕동시대』는 장혁주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비천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가족들로부터 존재를 부정당하지만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주인공은 근대문명의 냄새와 ‘일본어’를 경험하면서 ‘낡고 오래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새로운’ 근대문명을 상징하는 ‘일본어’를 습득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은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일본어작가가 되어서 동경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동경으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현실을 취재한 기사인 ?조선인 취락을 가다?를 바탕으로 창작된 ?노지?와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태어난 소년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한 ?우수인생을 발표한다. 장혁주는 조선 문단과 갈등을 계속되자, 자신을 인정해준 동경으로 1936년에 이주한다. 그러나 일본에서 발표한 작품들이 혹평을 받으면서 슬럼프에 빠진 장혁주는 일본 문단이 요구한 ‘이국풍의 읽을거리’와 ‘조선적인 것’ 사이의 거리를 ?조선인 취락을 가다?와 ?노지?, ?우수인생?을 통해서 찾고, 이 작품들에 드러난 혼종성이 역으로 드러내는 차이와 차별, ‘동화’의 모순을 폭로한다.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일본어작가로 평가받았던 장혁주는 이제 ‘제3의 공간’인 만주로 넘어간다. 그리고 만주로 이주하여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성공적인 공동체를 세운 조선인들을 취재하고 쓴 ?개간?을 발표한다. 식민지 조선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만주’에서 유랑할 수밖에 없었던 불운한 이주 조선인의 현실과 정주 희망 그리고 불안한 미래를 통해 ‘보이는’ 존재였던 식민지 조선의 작가가 ‘보는’ 존재와 ‘보이는’ 존재 사이를 오가며 결국 ‘보는’ 존재로 변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다.
논문의 Ⅱ장에서는 장혁주가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을 모티브로 썼다고 밝힌 『인왕동시대』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가족의 냉대 속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받았던 할아버지와 고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장혁주가 타자로부터 인정받고자 했던 욕망이 얼마 컸는지를 알 수 있다. 항상 ‘나’를 ‘보는’ ‘파놉티콘’과 같았던 집과 가족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지만, ‘새로운’ 근대문명과 ‘일본어’를 만나면서 집과 가족에게서 벗어나 식민자인 일본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망을 품는다. 유년시절부터 ‘보는’ 존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던 ‘보이는’ 존재인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의 욕망의 기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장혁주는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질투한다고 생각한 조선문단을 떠나서 작가로서 자신을 더욱 인정해준다고 여긴 동경으로 이주한 것이다.
Ⅲ장에서는 동경으로 이주한 장혁주가 조선인 부락을 취재한 르포기사인 ?조선인 취락을 가다?와 조선인 부락 취재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노지? 속에 나타난 조선인 부락의 빈곤과 열악한 환경, 소외 등을 장혁주가 외면하지 않고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는 점과 ?우수인생?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혼혈 소년의 눈을 통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모습과 모순된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 작품들에 나타난 ‘조선적인 것’은 장혁주가 일본문단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혹평을 받았던 시기에 그를 난관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준 절대적인 선택이자, 부정할 수 없는 장혁주의 또 다른 정체성이었다. 그 속에서 장혁주는 ‘자연적인 동화’와 ‘강제적인 동화정책’ 틈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드러내며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일본어작가인 장혁주는 ‘자연적인 동화’를 버리고 ‘강제적인 동화정책’의 편에 서는 쪽을 선택하면서 ‘보이는’ 존재에서 ‘보는’ 존재로의 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더 큰 권력이 잠재해 있던 ‘제3의 공간’인 만주로 넘어가는 ‘제국의 힘의 이동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Ⅳ장에서는 장혁주가 괴뢰국 만주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창작한 『개간』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을 추적하였다. 일본어로 창작된 『개간』은 전체 11장으로 구성된 긴 분량의 소설이다. 완역이 되어 출판되지 못했기에 그동안 짧은 논문에서 그 많은 양에 비해 상당히 단편적인 부분만 번역되어 소개되어서 기존의 평가처럼 체제에 순응하는 소설로 비춰졌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전체 11장 중에서 9장까지는 조선 이주 농민들의 고난과 싸움 그리고 자립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으며, 10장과 11장에서만 체제에 순응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 장에서는 1-9장까지의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장혁주가 바라본 만주에서의 조선 이주 농민들은 실패자가 아니라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승리자였으며 그것이 그들 스스로가 이루어낸 결과임을 장혁주가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그 안에서 ‘조선적인 것’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를 작품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형상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장혁주가 ‘조선적인 것’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친일이력과 더불어 일본어로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장혁주는 사실 확인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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