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의 『우게쓰 모노 가타리(雨月物語)』는 일본 문학사에서 최고 괴이담(怪異談) 소설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세속적인 소재와 괴이담이라는 장르를 다루면서...
우에다 아키나리(上田秋成)의 『우게쓰 모노 가타리(雨月物語)』는 일본 문학사에서 최고 괴이담(怪異談) 소설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세속적인 소재와 괴이담이라는 장르를 다루면서도 유려함과 설득력을 잃지 않은 아키나리의 문체와 중국과 일본의 고전소설의 번안적 요소는 현재도 문학작품뿐만이 아니라 영화, 연극을 비롯한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이유이다.
『雨月物語』는 괴이담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괴이담이라는 장르는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나 좀처럼 드문 일들을 그리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본 논문에서는 『雨月物語』의 9가지 이야기 중 「기비쓰의 가마솥(吉備津の釜)」, 「뱀여인의 음욕(蛇性の婬)」에 주목하여, 각각의 주인공 여성의 캐릭터인 이소라와 마나고를 분석해, 이 괴이담이라는 장르 특성상 만들어질 수 있는 ‘悪女’캐릭터에 대해서 고찰하고 에도시대 중기의 현실적 여성상과 이들 악녀 캐릭터를 대비했다.
‘악녀’적인 요소가 단순히 꺼림칙하고 비난받아야 할 것으로 치부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에 이르러 ‘악녀’의 정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악행과 음행을 일삼는 악인으로써 여겨지는 과거와 달리, 시대상황에 어쩔 수 없이 억압되고 희생되어 양산 된 또 하나의 피해자라는 배경에 주목하고, ‘악녀’라는 말에 담긴 성차별적인 시선에 주목하여 당시의 시대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뿐 뛰어난 미모와 능력, 적극성을 지닌 여성들이었다고 하는 재해석이 검토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예로 드라마와 소설 영화 회화 등 장르와 영역을 뛰어넘어 여성 캐릭터, 그 중에서도 악녀 캐릭터가 가지는 매력과 역할, 의미에 대해서 재조명하는 작품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雨月物語』가 쓰인 일본 근세시대에 여성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본능을 억제하도록 강요당하는 처지에 있었고,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던 남성들은 죄책감 해소와 오락성이라는 목적 하에 괴이담 속에서 평범한 여성을 악녀로 탄생시켰다. 남성들의 엄격한 기준과 무리한 요구를 여성들이 모두 기뻐하며 감내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으므로 남성들이 불안해 할만 한 요소, 즉 ‘악녀’성 혹은 ‘악녀’가 될 만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 보통의 여성들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악녀’는 철저히 남성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고 평가된다. ‘악녀’의 뜻을 17세기 초기에 간행된 『닛포지쇼(日葡辞書)』에서 살펴보면 ‘보기 흉하고 외모가 나쁜 여자, 또 몸가짐이 나쁜 여자’라고 되어있다. 이것을 보면 중세후기부터는 성질이나 품행이 ‘나쁜’ 여자라는 의미가 병행해서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현대에서는 추녀의 의미는 거의 모습을 감추지만 다른 요소들이 더해진 것 같다. 그 요소란 남자를 홀리고 마는 ‘매력적인 여자’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나쁘게 말해 음행을 저지르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여자가 ‘악녀’이겠으나, 실제로는 당시 시대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나 혹은 그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당시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이었을 때를 전부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즉 이소라와 마나고는 당시 시대 상황으로 비추어 보면 어쩔 수 없이 악하고 음탕한 여자가 되어버리지만, 그것 자체가 몹시 남성적인 시선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며 성차별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소라나 마나고는 여성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캐릭터이면서도, 요미혼이라는 장르 자체가 남성들을 위한 것이었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만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여성들이 자신의 롤 모델로 삼을 만큼의 레벨에는 도달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남성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 캐릭터였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나 근대를 거쳐 현대로 오면서 여성의 권리와 함께 역할은 다양하게 늘어나고,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는 여성 캐릭터의 위치와 활용도도 한층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그 가운데 새로운 타입의 ‘악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경향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치인의 사랑』의 나오미와 다무라 도시코의 「그녀의 생활」의 마사코를 통해서 엿보았다.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분방함이나 성적 매력, 마사코의 생활 속의 투쟁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여성권리 향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더불어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여주며 어떠한 시대에도 여성들 자신이 원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찾아왔을 때, 그 현실에 체념하지 않고 그 상황을 해쳐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은 ‘악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근대에 새롭게 나타난 이러한 악녀캐릭터들은 시대가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고, 그와 달리 『雨月物語』의 이소라와 마나고는 남성들이 시대를 안정시키고 더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여성의 구속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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