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식주거지는 주로 호서 및 호남지역에서 발굴조사 되어 그에 따라 기존의 사주식주거지 연구도 호서 및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최근 경기지역에서 사주식주거지의 발... 사주식주거지는 주로 호서 및 호남지역에서 발굴조사 되어 그에 따라 기존의 사주식주거지 연구도 호서 및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최근 경기지역에서 사주식주거지의 발굴사례가 급증하고 있지만 현재 이에 대한 연구는 자료집성도 되지 않은 기초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자료집성과 이를 바탕으로 구조적 특징을 확인해보고 시기 및 지역별로 전개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경기지역 사주식주거지의 전반적인 양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원삼국~한성백제기에 걸쳐 경기지역 사주식주거지는 서부, 남부, 북부지역에 분포 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총 132기가 확인되었다. 사주식주거지의 입지, 평면형태, 취사·난방시설, 주공속성 등을 살펴보고, 출토유물을 통하여 사주식주거지를 시기에 맞춰 배열한 결과 입지(ⅰ→ⅱ), 평면형태(Ⅰ→Ⅰ·Ⅱ→Ⅰ·Ⅱ·Ⅲ), 주공 속성(A→B·a→b)에서 점진적인 변화가 확인되었다. 이렇게 이 주거지는 평면 형태나 입지, 주공 속성, 취사·난방시설의 종류 등에서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유사한 양상을 가진다. 이렇게 시기 및 지역별로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경기지역 사주식주거 집단들이 대체로 동질적인 성격을 가진 것으로 파악되며 이에 따라 지역적으로도 통합적인 특징을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경기지역 사주식주거지는 지역별로 존속시기가 다르게 확인되었다. 서부의 경우 이른 시기부터 사주식주거가 조성된 것은 충청 서해안 지역과 연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근거로는 충청 서해안 지역의 사주식주거지와 분구묘를 들 수 있는데, 서부 지역도 분구묘 분포권인 것으로 보아 충청 서해안 지역의 마한 세력에 의해 원삼국시대 이른 시기에 서부 지역으로 사주식주거와 분구묘가 유입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서부지역은 충청 서해안 지역의 사주식주거지 전파 및 확산에 의한 결과로 판단된다. 남부의 경우 원삼국시대에 해당되는 사주식주거지는 천안·아산지역의 목지국의 영향을 받아 등장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는 남부지역과 천안·아산지역의 분묘 및 출토유물 등의 동일성을 근거로 삼을 수 있다. 이후 백제가 남부지역을 장악하기 시작했음에도 한성백제기에는 사주식주거지가 지속되었으며, 呂·凸자형 출입구 시설이 사주식과 결합되어 조성된 형태도 나타난다. 이렇게 주거지가 지속된 이유는 백제가 경기 남부 지역의 마한 문화를 인정하면서 유연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마한세력을 흡수하고 통합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경기 남부지역의 사주식주거는 원삼국시대 마한 문화의 바탕 위에 백제의 새로운 문화들이 융합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북부의 경우 양주 옥정동 유적은 다른 사주식주거지와는 다른 특징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는 호남지역에서 보이는 장타원형수혈이 확인되었으며 그 외 평면 형태·규모·주주공의 위치 등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가지는 것으로 보아 호남과의 연관성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호남형 토기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과 옥정동 이외에는 북부에서 비슷한 형태의 사주식주거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확하게 호남형 주거구조가 어떻게 경기 북부지역에서 보이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免费韩语论文,韩语论文题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