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西部地域 原三國-漢城期 百濟 시루(甑) 硏究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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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중서부지역 원삼국~한성기 백제 시루의 계보 및 시·공간적 특징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시루는 주로 밥을 짓는데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루의 등장을 곡물의 재배 및 수...

본 연구는 중서부지역 원삼국~한성기 백제 시루의 계보 및 시·공간적 특징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시루는 주로 밥을 짓는데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시루의 등장을 곡물의 재배 및 수확과 관련되는 고고학 자료의 특징을 통해 시루의 기능을 파악하였다. 한반도 인접지역에서 燕나라 철기문화의 영향으로 철제 농공구류의 제작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주목하였다. 연문화의 파급으로 인해 서북한 및 요동지역에서는 세죽리-연화보유형이, 연해주 남부, 수분하유역 및 동북한지역에서는 단결-크로우노프카문화가 형성된다. 단결-크로우노프카문화에서는 시루와 철제농기구가 유사한 시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농업생산량의 증가와 시루의 사용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시루의 사용이 곡물의 조리와 관련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해왔지만, 다른 사용의 가능성이 있는지 파악하고자 시루가 등장하기 이전과 이후의 생계경제를 비교하였다. 중서부지역에서는 초기시루와 관련된 문화상이 빈약하기 때문에 한반도 남부지역을 통해 유추하였다. 그 결과, 농업생산성의 발달과 시루는 상관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외에도 패류 및 동물자원의 수급을 통해 생계경제가 유지되는 경우 충분히 시루의 사용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한반도에서 확인되는 초기시루의 형태는 단면삼각형점토대토기로, 점토대토기문화와 시루의 사용과 관련되는 철제 농공구류 및 부뚜막은 세죽리-연화보유형과의 연관성이 있으며 점토태토기에 투공이 이루어진 시루 역시 이와 관련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서북한지역 및 요동지역일대 점토대토기문화에서는 시루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시루는 삼각형점토대토기문화의 유입보다는 늦은 기원전 1세기대에 확인되는 것으로 볼 때, 점토대토기문화에서 시루가 유입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반도 중부지역이 남부지역보다 시루의 등장시기가 늦은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인천 운북동유적에서 기원전 1세기대에 해당하는 시루편이 확인되어 남부지역과 유사한 시기에 중서부지역에서도 시루가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경로는 요동지역에서 서해연안을 따르는 해로를 통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시기 점토대토기문화에서는 시루가 사용되지 않는 점, 인천 운북동유적에서 漢系 유물이 다수 확인되고 있다는 점으로 볼 때, 시루는 한나라와의 교역과정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루의 형태는 한반도 외부에서 보이는 형태와는 차이가 있다. 재지토기인 삼각형점토대토기에 다수의 투공이 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시루의 기능만 기존에 사용하던 토기에 적용시킨 것으로 파악된다. 화성 도이리유적에서 확인된 점토대토기 시루편으로 볼 때, 남부지역과 마찬가지로 중서부내륙지역에서도 삼각형점토대토기의 시루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후 1세기 전반 원삼국시대 이른 시기에 해당하는 춘천 신매리유적에서 단결-크로우노프카문화와 관련되는 시루가 확인됨에 따라 중서부지역 시루의 계보는 서북한지역 및 동북한지역에서 계통이 다른 시루가 시기차이를 두고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원후 2세기대부터 원삼국시대 중서부지역에서 시루가 다수 확인된다. 시루의 기형을 이루는 구연부와 저부형태의 조합 및 관련 속성의 특징을 기준으로 총 7개의 형식을 설정하였다. 원삼국시대 중서부지역에서는 지역별로 다양한 형식의 시루가 확인된다. 북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그 이북지역과 이남지역에서는 각각 무문발형의 3형식과 1형식의 타날문동이형 시루가 분포한다. 경기 북부 및 남부지역에서는 2-1형식의 낙랑(계)시루가 확인된다. 경기 서해지역 일대에서는 2-2형식의 말각평저 무문동이형 시루가 등장한다. 충청지역은 금강유역을 중심으로 시루의 분포에 있어 차이가 나타난다. 금강 이북지역에서는 2-3형식의 무문원저동이형 시루가, 이남지역에서는 무문심발형의 4형식 시루가 확인된다. 한성 Ⅰ기에는 서울·경기지역을 중심으로 난형의 5형식의 사용이 증가한다. 동일시기에 충청지역 및 강원 영서지역에서는 원삼국시대에 사용되는 시루가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가운데 충청 일부지역에서도 5형식의 시루가 제작된다. 한성 Ⅱ기에 들어서면서 백제 도성일대에 평저동이형의 7형식이 등장한다. 격자문 및 반원형 투공만 주로 확인되고 있어 다른 형식에서 보이지 않는 고유한 특징의 시루가 제작되었다. 동일시기 경기 남부지역에서는 외반(심)발형의 6형식이 확인된다. 충청지역에서는 원삼국시대부터 제작된 시루의 형식이 지속되는 가운데 7형식이 충청지역 전역에서 발견된다. 다만 증기공 및 타날문형태에 있어서 백제 도성주변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강원 영서지역은 7형식의 시루가 사용되지 않으며 오히려 원삼국시대 시루인 경질무문 시루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시루는 백제 국가 성립 및 영역 확장과정에서 형태적인 변화가 나타나지만, 각 지역별로 그 양상은 차이를 보인다. 이는 곧 지역의 특징에 따라 시루의 제작이 유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 중서부지역 시루의 계보 및 시·공간적 전개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자료의 축적으로 선행연구보다 넓은 지역을 대상으로 시루의 변화상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또한 기존에 세부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시루의 등장시기 및 계보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시루의 사용은 단순한 문화의 파급과는 다른 성격을 나타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燕 철기문화의 확산과 함께 단결-크로우노프카문화에서는 시루가 확인된 반면, 세죽리-연화보유형에서는 시루의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지역차는 당시 역사적 상황 및 식생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루의 사용이 식문화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 향후 세부적인 연구를 통해 보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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