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倉進平の韓国語硏究 : 日帝强占期の韓国人硏究者との比較を中心に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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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의 배경과 목적 한국어가 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사회에 있어서 근대로의 이행의 결정적인 전화점이 된 갑오경장(1894)이후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어...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한국어가 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사회에 있어서 근대로의 이행의 결정적인 전화점이 된 갑오경장(1894)이후로 알려져 있다. 또한 한국어연구 역사 중에서 갑오경장이후부터 일제시대(1894~1945)까지의 약 50년 간은 한국어 연구의 토대가 이루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한국어 연구에 종사한 연구자들은 크게 한국인 연구자들과 일본인 연구자로 나눌 수 있다. 일본인 연구자들이 한일합방 이전부터 한국어 연구를 시작하여 해방 이후까지 왕성히 연구해 진행해 온 사실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이 시기에 한국어 연구에 종사한 대표적인 일본인 연구자로서 小倉進平를 들 수 있다. 일본학계에서 小倉進平는 한국어 연구 방향에 「決定的寄与」를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河野六郎를 비롯한 일본 학계와 한국 국어학 양측 학계에서 小倉의 각각의 논문에 대한 구체적이고 분석적인 고찰 특히 동시대에 이루어진 한국인 연구자들의 연구와의 비교고찰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小倉에 관한 包括的인 評価은 이루어져 있으나, 小倉의 한국어 연구 업적 그 자체에 관한 구체적인 평가는 한일 양국에서 모두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황에 착목하여 본 연구에서는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小倉와 한국인 연구자들의 한국어 연구를 여섯 개의 연구 영역으로 나누어 양자의 연구에 근거하여 구체적인 비교를 통하여 小倉와 한국인 연구자의 한국어 연구와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었는가, 또한 한국인 연구자들의 손으로 통합, 발전 되어가는 과정에 있어 小倉의 연구가 영향을 미쳤다면 어느 정도의 것이었는가에 관하여 실증적으로 검증하여、한국 국어연구사에 있어서의 小倉의 位置를 재검토해보기로 한다.
2. 연구의 방법과 범위
본 연구에 도입한 방법은 주로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小倉와 한국인 연구자들의 한국어 연구 업적의 문헌을 비교연구사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며. 종래의 小倉의 한국어 연구에 대한 한국 국어학계의 평가도 검토하였다.
또한, 음운, 향가, 문법, 방언, 로마자 표기법, 한국어학사의 여섯 개의 연구 영역에 해당하는 小倉의 연구업적과, 동시대에 이루어진 한국인 연구자들의 연구내용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토대로 양자 간의 상관관계의 정도를 실증적으로 밝힐 것을 시도하였다. 비교분석의 대상이 된 연구 업적의 범위는 다음과 같은 기준에 의한다.
첫 번째, 본 연구의 시대적인 범위는 小倉가 활동한 시기에 맞추어 일제시대(1910~1945)의 36년간으로 하나. 극히 일부 연구영역에 있어서는 부득이하게 해방이후의 한국인 연구자의 연구업적을 비교고찰 대상에 포함시킨 경우도 있다.
두 번째로, 小倉의 방대한 연구 영역 가운데 대표적인 연구영역인 음운, 향가, 문법, 방언, 로마자 표기법과 한국어학사 연구 여섯 분야를 비교 고찰 대상 분야로 한다.
세 번째, 위의 비교 고찰 연구 분야에 있어서, 小倉의 대표적인 연구 업적과, 동시대에 이루어진 한국인 연구자들의 연구로 테마가 일치하거나 관련이 있다고 판단되는 거의 대부분의 연구 업적에 대하여 분석고찰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는 小倉나 한국인 연구자들의 이념적인 관점 등 역사적인 문제에 초점을 두지 않는 즉, 순수한 조선 어학 연구사에 관한 고찰이다.
3. 연구의 구성과 내용
제1장 「序論」에서는, 小倉의 한국어 연구의 역할과 동시대의 한국인 연구자들이 발전해 간 과정을 고찰하기위해서는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양자의 한국어연구에 대한 집중적이고 구체적인 분석이 시급함을 인식하였다.
제2장 「甲午更張이후부터 日帝强占期까지의 한국어 연구」에서는 甲午更張 이후부터 日帝强占期까지 이루어진 일본인과 한국인의 모든 한국어 연구에 대하여 개관해 봄으로써, 이 시대의 한국어 연구의 있어서의 小倉의 위치를 재검토하였다.
제3장「小倉進平와 한국인 연구자의 朝鮮語音韻音声研究比較考察」에서는, 小倉와 한국인 연구자들 대부분의 音韻音声研
究에 관한 구체적인 분석을 통하여 양자의 音韻研究 전개에 관한 상관관계를 고찰한다.
제4장「小倉進平와 梁柱東의 郷歌研究比較考察」에서는, 小倉와 梁柱東의 郷歌解読 내용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実証的으로 비교 분석하여、郷歌研究의 발전과정에 있어서의 小倉 연구의 역할에 관하여 고찰한다.
제5장「小倉進平과 韓国人研究者의 韓国語文法研究比較考察」에서는, 小倉의 中世韓国語文法研究와 동시대의 한국인 연구자의 연구내용과의 구체적인 比較略论를 통하여 小倉의 연구가 한국인 연구자들의 손으로 통합되어가는 과정을 고찰한다.
제6장「小倉進平와 한국인 연구자의 方言研究比較考察」에서는 일제시대에 이루어진 小倉와 韓国人研究者들의 方言研究를 方言資料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비교 분석을 통하여 한국인 연구자들의 안목으로 통합되어가고 발전해가는 과정을 고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小倉의 방언연구의 역할를 규명한다.
제7장「小倉進平와 한국인 연구자들의 그 밖의 韓国語研究比較考察」에서는 로마자 表記法、朝鮮語学史研究에 관한 小倉와 한국어 연구자들의 연구를 비교고찰 함으로써 로마자 표기법의 변천과정과 小倉의 朝鮮語学史 연구에 관한 재평가를 시도한다. 또한 이 이외의 小倉와 한국인 연구자의 한국어 연구에 관하여 개관해 본다.
제8장「結論」에서는, 본 연구 결과를 토대로 小倉의 韓国語研究가 한국인 연구자들에게 있어서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시사점을 제시한다.
4. 연구 결과
첫째 小倉(1920,免费韩语论文,1923)와 일제시대의 한국인 연구자들의 音韻音声研究를 편의상 여섯 항목의 연구영역으로 나누어 비교 분석을 한 결과, 한국인 연구자들의 음운음성연구의 대부분이 小倉의 音韻音声研究를 토대로 발전해 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그 과정에서 日帝强占期에 활동한 韓国人研究者들의 역할과 발전 양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小倉(1929)와 梁柱東(1942)의 郷歌解読 내용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비교분석한 결과, 해독 방법에 있어서 양주동은 음수율을 고려한 점 이외에는, 借字解読法을 도입하고, 古語, 方言을 考慮하여 해독한 점등은 小倉의 해독방법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均如伝』11首와 『三国遺事』14首의 해독에서 보이는 小倉와 양주동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해독이 같거나 유사한 경우가 56%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小倉의 郷歌研究가 후학자들에게 미친 영향이 컸음을 실증적으로 증명하였다.
셋째, 小倉와 한국인 연구자의 한국어 역사 문법를 구체적으로 비교분석한 결과, 郷歌의 「叱」를 持格 助詞인 「사이시옷(ㅅ)」으로 해독한 小倉(1929)의 해석이 梁柱東(1942)를 비롯한 한국인 후학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謙譲法接尾辞「□」의 研究에 있어서는 우선 梁柱東(1942)의 경우, 郷歌에서의「白」을 「□」으로 連綴과 母音調和를 考慮하여 표기한 점이 小倉(1929)에서 진일보한 성과로서 인정된다.
또한、金亨奎(1947)는、謙譲法의 接尾辞의 変遷의 틀자체는 小倉와 거의 일치하였다. 그러나 小倉가 독립적인 接尾辞로서 설정한「□」을、接尾辞「□」의 変遷過程D[서 나타나는 形態素로 編入시킨 점, 또한 謙譲法 接尾辞의 変遷過程에 있어서의 시대구분을 표시한 점이 성과로서 확인되었다..
넷째로、小倉(1944)와 동시대의 한국인 연구자의 방언연구(1930年代)를 구체적으로 비교분석하였다. 우선 小倉와 일제시대의 한국인 연구자들의 방언조사지역을 비교한 결과, 小倉는 전국에 걸쳐서 균등하게 지역을 지정하여 조사한 것에 비해 일제시대 한국인연구자들은 지방을 중심으로 단편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1945년 이전까지는 小倉의 방언연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또한, 金亨奎의 方言研究(1974)와의 비교결과 金은 方言調査의 어휘 분류방식이나 대상 지역 설정 방법등에 있어서는 小倉의 것을 그대로 계승했음이 확인되었 다. 하지만 小倉가 구분하지않았던 方言調査語彙의「長短」의 문제에 주목하고, 副詞·助詞·語尾類, 終結語尾, 특히 動詞類는 45個, 形容詞類는 25個의 語彙를 중점적으로 첨가하여, 調査範囲를 확대하여 진전시켰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로, 小倉(1934)와 朝鮮語学会(1941), 韓国文化部(1984)와의 로마자 표기법의 変遷過程에 관하여 比較略论을 하였다. 그 결과 小倉(1934)가 처음으로 제안한 韓国語 로마자 표기법은 朝鮮語学会(1941)를 거쳐 韓国文化部(1984부터 現在)에 이르러 변천해 왔는데、부분적으로 수정되기는 하였으나, 小倉의 원안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小倉와 金允經의 朝鮮語学史를 比較考察한 결과, 金의 연구를 「狭義의 朝鮮語学史(1938)」로 한다면, 小倉의 연구는 연구 당시의 시대적, 학문적 상황을 고려한 「広義의 朝鮮語学史(1920)」즉 한국어학사의 효시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5. 향후의 연구 과제
본 연구에서는 小倉의 한국어 연구 전반과 일제 시대의 한국어 연구자들의 연구와의 상관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 하였기 때문에 각 영역별로 보다 심층적인 연구는 앞으로의 연구 과제이다. 또한, 본 연구에서 비교 고찰한 연구 영역이외에도 小倉의 語彙, 系統, 文字研究에 관한 주목할 만한 업적을 확인한 바 있다. 일제시대의 小倉와 한국인 연구자들의 남은 연구테마에 관한 집중적인 한편 실증적인 비교고찰이 절실하다。
또한, 甲午更張이후부터 日帝强占期까지(1894~1945)에 이르기까지 한국어 연구에 있어 小倉이외에도 많은 일본인 연구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어 어휘, 어원, 문자연구에 있어서는 白鳥庫吉, 鮎貝房之進이, 系統研究는 金沢庄三郎, 西村真太郎에 관한 고찰이 필요하다. 또한, 書誌研究는 前間恭作와 末松保和이 대표적인 연구자로 들 수 있다. 그리고, 한국어 한자 연구자로서는 有坂秀世와 河野六郎를 주목해야한다。
이상과 같이 한국 국어 연구사 규명에 있어서 외면할 수 없는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 논문은 일제 시대의 한국어연구사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에 의한 고찰로서 선구적인 연구라 할 수 있다. 향후 본 연구를 바탕으로 본 연구와 관련된 보다 심층적인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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