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마한의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를 대상으로 하였다. 마한은 존속기간이 불분명하여 그 시작과 끝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문헌기록 등을 통해 마한의 시작을 기원전 1세기... 본 연구는 마한의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를 대상으로 하였다. 마한은 존속기간이 불분명하여 그 시작과 끝에 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문헌기록 등을 통해 마한의 시작을 기원전 1세기로 보며, 해체는 백제가 한강 이남지역을 병합하는 시기와 밀접히 관련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 학계의 추세이지만 마한의 토기상이나 사회적 그림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필자는 한국고고학 편년 상 원삼국시대에 해당되는 호남 서부지역 마한 주거지(기원후 2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경) 출토 토기를 대상으로 기능, 형식분류, 변화양상, 생산체제와 유통, 신앙과 의례를 고찰하였으며, 이를 통해 호남 서부지역 마한의 토기문화상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먼저 그동안 학계에서 이루어진 마한 토기 연구 성과를 학사적으로 살피고, 연구의 목적과 대상, 시공간적 범위를 설정하였다. 또한 마한토기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분류는 어떠한 기준으로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였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와 밀접한 관련을 보이는 마한토기 연구의 몇 가지 쟁점을 짚어 보았다. 그리고나서 호남 서부지역의 소지역권을 설정하고, 권역별로 주거지와 마한토기의 출토 현황과 분포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였다. 지역권은 기존에 이루어진 지역권 설정의 문제점을 검토하고, 수계와 산계를 비롯한 문헌기록, 마한 주거지의 분포, 기타 물질문화의 특성 등을 총체적으로 감안하여 설정하였다. 그 결과 호남 서부지역의 지역권은 총 12개소로 설정할 수 있었다. 각 지역권에서는 대형과 초대형 취락이 최소 1개소 이상에서 발견되었으며, 12개의 지역권을 중심으로 권역별 주거지와 마한 토기의 현황 및 분포를 검토하였다. 다음으로 마한토기의 개념적 정의를 시도하고 토기의 기능에 따라 기종을 분류하였다. 토기는 기능에 따라 일상용기와 의례용기로 구분하였으며, 일상용기는 취사기, 저장기․운반기, 식기로 세분할 수 있다. 취사기의 대표기종으로는 심발․장란형토기․시루가 있다. 저장기는 음용수, 곡물, 식재료 등의 보관, 장기 발효식품의 저장, 액체류 등을 운반하는 데에 이용되는 토기로 정의하였으며, 대표기종으로는 원저단경호, 주구토기, 옹, 이중구연호, 평저유견호, 양이부호를 들 수 있다. 식기는 음식을 담아내는 데에 사용하는 토기이며, 완과 반 접시가 이에 해당한다. 이 논문의 Ⅳ장에서는 이와 같이 분류한 마한토기의 기종별 세부 형식을 분석하였다. 또한 각 형식의 연대를 비정하기 위해 주거지의 분석과 공반유물, 절대 연대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였다. 이러한 종합적 검토를 통해 마한 토기는 총 4단계로 변화하는데, 각 단계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Ⅰ기(2세기 중반(?)〜3세기 중반)는 마한 토기문화의 형성기로서 기존의 경질무문토기와 함께 타날기술이 등장하여 마한의 일상용기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는 시기이며, Ⅱ기(3세기 후반〜4세기 중반)는 타날기술(격자타날, 細집선문 중심)에 의한 토기 생산이 사회 전반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며, 마한 토기가 정착화 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Ⅲ기는 a․b기로 세분되는데 Ⅲa기(4세기 후반〜5세기 초반)는 외래 문화의 1차 유입이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마한 재지의 제도기술에 획기적 변화가 발생하는 시기이며, Ⅲb기(5세기 중반〜5세기 후반)에 이르면 또 한 번의 외래 토기가 대거 등장한다. 고배, 삼족토기, 아궁이장식 등이 이에 해당하며, 이러한 외래 토기의 유입과 연동하여 마한토기들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발생한다. Ⅴ장에서는 토기 생산 관련 고고 자료, 실험고고학적 자료에 근거하여 마한토기의 생산과정과 조업체계를 추적하였다. 분석결과, 마한의 토기는 점토제작 → 기본성형 → 정형 → 건조 → 소성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기본성형 공정에서는 구연의 형태가 결정되는데, 이는 제작자의 손동작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정형 단계에서는 원저단경호나 장란형토기의 동체가 부풀려지고 바닥이 둥글려지지만, 시루의 경우는 바닥에 증기공을 뚫고, 파수를 부착하는 과정을 통해 기형이 완성된다. 동체 부풀리기와 바닥의 원저화 공정은 타날기술의 도입으로 가능해졌으며, 동체를 두드리는 과정에서 점토의 접합력을 높임과 동시에 얇은 기벽의 토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원저화 과정에서는 회전대 축흔 등 제작과 관련된 흔적들 일부가 사라지기도 한다. 건조의 구체적 방법을 현재의 고고자료를 통해 유추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시루나 주구토기는 파수에 남겨진 지주흔과 반달홈을 통해 건조과정의 일면을 추정해 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성은 흑반이나 토기가마를 통해서 조업 기술을 추정할 수 있었다. 토기 가마 출토 토기의 분석 결과, 동일 가마에서 적색계열과 회색계열, 연질과 경질토기가 함께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이러한 실험결과는 토기의 소성이 소성분위기 및 최고소성온도의 지속시간 조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지역적 분포권을 갖는 몇 가지 일상용기를 대상으로 호남 서부지역 마한토기의 유통 및 지역권을 파악하고자 했는데, 그 사례로 심발, 장란형토기, 외파수발, 이중구연호, 주구토기, 유공광구호 등을 분석하였다. 이들 토기들은 뚜렷한 지역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향후 이러한 연구를 토대로 마한 소국의 수 및 위치 비정이 가능하리라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토기의 형태적 특성과 출토맥락에 근거하여 마한토기에서 보이는 신앙과 의례적 측면을 살펴보았다. 이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종으로는 모형토기와 조형토기, 조왕그릇, 거치문토기, 조족문토기 등이 있다. 화덕시설에서 발견되는 용기형 모형토기는 조왕에게 올리던 정화수를 담아 신에게 올리던 그릇을 상징하고, 이는 화재 등의 재액을 미연에 방지하는 마한인의 염원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모형토기를 중심으로 한 마한의 의례행위는 3세기 초중반대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되며 이후에는 의례구 형태와 방법이 변화하게 된다. 즉, 이 시기에 이르면 호남 서부지역에서는 조형토기나 조왕그릇 등을 사용한 의례행위를 통해 개별 가정과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韩语论文题目,韩语论文题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