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필연적 실재(實在)이면서도 피안(彼岸)의 세계에 대한 열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사건이다.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있는 죽음은 실상 두려움의 실재이지만, 한... 죽음은 필연적 실재(實在)이면서도 피안(彼岸)의 세계에 대한 열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사건이다.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져있는 죽음은 실상 두려움의 실재이지만, 한편으로 죽음 너머의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끊임없이 되묻게 되는 인간 실존적 문제(問題)이자 과제(課題)이다. 현대사회의 역사적 체험과 시대적 조류(潮流)는 인간을 덮고 있는 죽음에 대한 부정성(否定性)의 그늘이 얼마나 짙은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상대주의(Relativism)로 인한 진리(眞理)의 부재(不在)로 가톨릭의 종교‧윤리적 진리는 상대화 되었으며,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cism)적 사고관으로 종교의 내세관(來世觀)에 대한 불신(不信)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이기주의(Egoism)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은 죽음을 한 인간의 개인적 문제로 전락(轉落)시키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과 죽음은 신성한 것으로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취급할 대상이 아니다. 죽음은 불가항력적인 대상 가운데 하나로서 인간의 삶의 마지막 기로(岐路)에서 경험하게 되는 필연적 과정이자 신비(神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음 너머의 희망을 갈망한다면 죽음의 신학은 필요하며, 죽음에 따른 파스카 신비에 대한 고찰(考察)도 필수적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리스도교의 장례예식 안에서의 고별식을 통해 인간의 죽음과 영원한 삶의 희망인 파스카 신비에 대해 신학적 고찰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제1장은 파스카의 일반적 의미와 어원을 토대로 성경에 나타난 파스카의 의미를 먼저 살펴본다. 그리고 파스카와 죽음의 관계성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다. 파스카는 본래 구약의 과월절 축제를 가리키는 말로서 ‘건너가다’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해방과 구원의 상징을 갖고 있다. 신약에 이르러 구약의 파스카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예수는 최후의 파스카 만찬에서 새로운 파스카를 제정함으로써 친히 파스카의 어린양이 되어 희생 제물이 되고 십자가에서 희생 제사를 바친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여 죽음을 이기고 죄 많은 인류를 죽음에서 생명에로 건너가게 하였다. 교회는 이 파스카 사건을 성체성사로 기념한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파스카이다. 이제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죽음을 하나의 축복으로 기쁨의 축제로 전화(轉化)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그의 죽음에 동참함으로써 파스카 신비의 여정(旅程)을 걸으며, 죽음을 통해 그 여정을 완성한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죽음은 파스카 신비의 완결의식이 되고 기쁨과 희망의 사건이 된다. 제2장은 고별식과 파스카 신비와의 관계성에 대해 고찰한다. 먼저 고별식의 가톨릭적 의미와 고별식의 변천과정을 살펴본다. 그리고 고별식 기도문의 본문과 어휘를 분석하여 고별식의 파스카적 특성을 파악한다. 가톨릭 교회의 고별식은 다른 문화나 종교의 영결식과는 달리, 부활의 영광 속에 고인(故人)과 다시 만날 것을 희망하며 하느님께 고인의 영혼을 의탁(依託)하는 예식이다. 이러한 고별식은 역사적 변천과정을 통해 예식의 본질적 의미가 변화하게 된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파스카 신앙의 신비를 토대로 죽음과 파스카적 의미를 장례예식에 적합하게 적용시켰다. 고별식과 같은 독립적 예식은 없었으나 장례예식 안에서 고별식의 주요 요소들(작별과 의탁)이 예식과 기도문을 통해 나타난다. 초대교회의 장례예식은 죽음을 통해 죽은 이의 영혼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기약(期約)하는 하나의 고별예식이었다. 그러나 중세로 접어들면서 로마 전례는 프랑스·독일 지역의 갈리아 전례의 영향으로 죽음 이후의 심판과 징벌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고별식을 ‘사죄예식’(Absolutio), 그리고 1614년 로마 예식서(Rituale Romanum)에서는 ‘사도예절(Ritus Absolutionis)’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시기의 특성상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메시지가 더욱 강조되면서 죽은 이의 속죄(贖罪)를 위한 전구(轉求)가 예식의 중심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한 긍정적 고찰과 성찰을 바탕으로 초대교회의 파스카적 특성들을 전례를 통해 회복시키고자 노력하였다. 전례의 파스카적 특성을 다시금 회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1969년 새로운 장례예식서 ‘Ordo Exsequiarum’을 반포한다. 새 장례예식서의 고별식 구조와 본문은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파스카적인 특성들로 구성된다. 먼저 예식의 구조는 고인이 지상 나그네인 교회 공동체와 작별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진다. 즉 지상에 남겨진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의지하여 고인을 하느님께 의탁하며, 마지막 날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게 될 것을 기약하는 예식으로 꾸며진다. 기도문에 사용된 파스카적 어휘는 비(非)-파스카적인 어휘보다 더 많이 사용되었으며, 비-파스카적 어휘 역시 파스카적인 어휘와의 관계 속에 파스카적 메시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고별식은 초대교회의 정신을 회복하여 죽은 이와의 재회(再會)를 기약하며 공동체적 사랑을 표시하고, 서로의 슬픔과 고통을 덜어주며, 파스카의 희망을 북돋워 주는 예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OE 185). 제3장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고별식에 나타난 죽음과 파스카 신비에 대한 신학적 관점들을 고찰한다. 고별식은 그 예식의 구조와 더불어 그리스도론, 교회론, 성사론, 종말론의 신학적 관점에서도 파스카적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고별식은 그리스도 중심의 예식으로서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론적인 이해가 강조된다.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한 속량(贖良)으로 인간은 죄와 죽음에서 해방되는 과정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믿는 이들의 부활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드러낸다. 이러한 부활에 대한 희망과 확신은 공동체적 예식을 통해 더욱 절정(絶頂)으로 이끌어간다. 교회는 고별식을 통해 고인의 파스카 여정을 함께 하며 죽음의 공동체적인 의미를 이룬다. 그리고 고인은 지상에 순례하는 나그네인 교회를 떠나 천상 교회로 건너가며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이 두 공동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고별식은 지상에 남겨진 이들도 잊지 않고 위로하며, 마지막 날에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여 고인과 함께 기쁨의 천상 잔칫상에 참여할 것임을 선포한다. 또한, 고별식은 교회의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체현(體現)한다. 특히 고별식은 세례성사로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성사적 삶의 완성으로서 죽음을 상징한다. 성사를 통하여 파스카 여정을 시작한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를 통해 지상의 파스카 여정을 이어가며, 죽음을 통해 그 성사적 삶을 완성하여 천상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을 누리며 실재로서의 성사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 마지막 날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는 종말론을 희망한다. 그날에 그리스도인 모두는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와 같이 그리스도의 빛나는 육신으로 변화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상 낙원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될 것임을 고별식을 통해 선취(先就)하게 된다. 그러므로 고별식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는 기쁨과 희망의 파스카 축제이다. 고별식은 죽음의 슬픔과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에서 슬퍼하고 고통 받는 것보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더 큰 복락(福樂)이 하느님 나라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고별식을 통해 나타나는 공동체적 친교를 통한 위안과 성사적 삶의 완성, 기쁨과 희망의 종말론은 죽음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이끌어간다. 따라서 고별식은 죽음 이후의 그 기쁨을, 그 희망을 미리 선취하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기쁨과 희망의 파스카 예식이 되는 것이다. 이제 현시대의 죽음은 고별식을 통해 단지 부정적 의미로서의 종국(終局)이 아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의 성취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의 파스카적 희망의 메시지를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긍정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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