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진이정에 관한 논의는 거개가 진이정의 죽음의식과 관련하여 전개되었다. 이는 요절이라는 특별한 죽음의 양식이 던져준 충격과 마치 그것을 기다리며 쓴 듯한 유고시집의 분위기 ...
그간의 진이정에 관한 논의는 거개가 진이정의 죽음의식과 관련하여 전개되었다. 이는 요절이라는 특별한 죽음의 양식이 던져준 충격과 마치 그것을 기다리며 쓴 듯한 유고시집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은 항상 사각지대를 만들기 마련이다. 한 측면이 과도하게 강조된 선행 연구들은 시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에 걸맞은 새로운 시를 치열하게 모색했던 시인으로서의 진이정을 많은 부분 간과하고 있다. 이에 본고는 스스로 “자랑스러운 형식주의자”라고 선언했던 진이정의 모습에 주목하여 그의 시의 형식에 관해 고찰해 보고자 했다.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는 군부독재정권의 폭압적인 정치와 그에 대한 저항으로서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사회였다. 따라서 저항정신으로 무장한 민중문학과 실험정신으로서 당대를 풍자하고 비판한 해체시들이 시사(詩史)의 큰 흐름을 이루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 말에서 90대년 초 동구권이 몰락하고, 국내에서도 민주화의 가능성이 뚜렷이 보이는 등 국내외적 정치 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나자 한국시에도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따른 커다란 변화의 파도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 변화의 양상으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표면적으로 대항해야 할 비판의 대상을 잃어버림으로써 한국시는 탈중심화·다원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이는 전과 다른 미학의 출현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빠른 속도로 우리 삶의 세부까지 파고든 자본주의의 질서로 인해 문학마저 상품화·대중화의 길로 내몰렸으며, 텔레비전과 영화를 필두로 한 급속한 대중문화 산업의 발전과 컴퓨터의 등장이 시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셋째는 지속적인 근대화·산업화의 결과로서 90년대 들어 보편화된 도시적 일상이 ‘도시’라는 새로운 삶의 조건에 적응해가는 세대에게나 애초에 도시에서 나고 자란 세대에게나 중요한 탐구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이다.
1987년 《실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한 진이정의 시는 이처럼 급변한 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화한다. 전형적인 노동시였던 초기의 시세계를 재빨리 탈피한 진이정은 전술한 세 가지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요소들을 과감히 시에 끌어온다. 탈중심화·다원화의 경향은 시구들이 느슨하게 결합되는 모습으로 드러나며, 파노라마처럼 현란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 시의 장면 전환은 날렵해지고, 도시에 대한 매혹과 거부의 감정이 갈등하는 모습을 시의 주된 내용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연작에 와서 절정에 이르는데, ‘다성적 목소리의 출현’, ‘요설과 장광설의 화법’, ‘인유와 패러디의 활용’, ‘메시지의 파괴’ 등으로 그 특징을 정리할 수 있다. 다성적 목소리는 주체가 해체된 자리에서 발화하는 여러 목소리들이다. 거대 정치권력이 약화된 자리를 미시적이고 다원화된 자본의 권력이 차지한 것처럼, 진이정의 시에서도 시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여러 화자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채운다. 이 다양한 목소리들은 끊임없이 서로 간섭하면서 의미 맥락을 지우고 시의 서사를 파편화시킨다.
‘요설과 장광설’은 말 그대로 수다스럽고 장황한 화법을 가리킨다. 진이정의 시는 술주정과 방언과 주문을 연상시키는 요설과 어지러운 말의 소용돌이로 용솟음친다. 이 숨가쁜 요설을 통해 쉼 없이 쏟아지는 말들은 일정한 형식을 거부하며 새로운 언어의 자유를 구가한다. 너무 많은 말들은 서로 엇갈리고 충돌하며 다성적 목소리에 의해 절연된 의미 맥락의 자리에 뜻밖의 풍요로운 의미를 생성하기도 한다.
‘인유와 패러디’는 진이정이 애용하는 수사 전략이다. 시에는 말 그대로 융단폭격에 가까운 인유와 패러디가 펼쳐진다. 특이한 것은 진이정은 인유와 패러디를 정반대의 효과를 노리고 사용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인유를 사용할 때는 어떤 경험이나 지식을 독자와 공유함으로써 작품의 이해도를 높이고 독자와의 관계를 긴밀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진이정의 인유는 독자에게 백과사전적 지식을 요구함으로써 시에 대한 진입 장벽을 높이는 한편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떨어뜨린다. 진이정이 구사하는 인유는 도리어 자기 시에 쳐놓은 바리케이드에 가깝다.
‘메시지의 파괴’는 전술한 진이정 시의 세 가지 형식적 특징이 결합하며 생기는 효과다. 진이정은 메시지를 파괴하여 독자가 자기 시를 모르게 하는 것을 자신의 시적 방법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참뜻은 헤아리기 어렵지만, 진이정의 시적 방법론은 그의 시들을 통해 확실히 성취된다. 다성적 목소리는 의미 맥락을 분절시키며 축적된 메시지를 허물고, 요설과 장광설은 그 다성적 목소리의 효과를 증폭시키며, 난립하는 인유와 패러디는 시의 독해를 방해한다.
이렇듯 진이정은 시대적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당대가 요구한 새로운 시정신의 모색에 열정을 쏟았다. 그는 암울했던 1980년대의 상황을 마음속에 새기면서도 80년대의 문학 엄숙주의를 탈피하여, 변화한 199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치열한 자기 모색으로써 정면에서 통과하고자 했다.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라는 시집 제목이 암시하듯이, 그의 동명의 연작시들은 엄청난 변화의 속도에 휩쓸려 있던 한국시의 감수성에 숨통을 틔우려는 전위적 시정신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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