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서정주의 『질마재 神話』를 연구 대상으로 시텍스트에 드러난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구조와 의미를 살핀다. 이를 토대로 시인의 무의식을 구성하는데 기여한 시대적 배경과 상황...
이 논문은 서정주의 『질마재 神話』를 연구 대상으로 시텍스트에 드러난 이데올로기적 환상의 구조와 의미를 살핀다. 이를 토대로 시인의 무의식을 구성하는데 기여한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데올로기적 환상이란 사회의 현실 관계를 구성하는 무의식적인 환영을 말한다. 현실 감각에 누구보다도 예민했던 시인이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궁극적으로 서정주 시세계의 고유한 특징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주지하다시피 『질마재 神話』가 출간된 1970년대는 세계적으로는 평화적 분위기가 확산되었으나 국내에서는 독재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유신 체제의 확립으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쳐 억압과 갈등, 대립이 심화되던 시기였다. 서정주는 전쟁의 체험으로 인해 첨예화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적 적대와 폭력성을 파악하였다. 그러나 시인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대신 이상향으로서의 어린 시절 시인의 고향이었던 질마재 마을을 복원해내어 공동체의 기원을 재구성해낸다.
서정주의 시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의식은 ‘영원성’ ‧ ‘영원주의’와 ‘신라정신’이다. 이러한 의식은 『질마재 神話』에서 독재 체제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현실의 모순을 재현하는 대신 무질서하고 전도된 이상세계를 꿈꾸었던 것에서 드러난다. 서정주가 현실을 초월하는 영원불멸의 삶을 소망하는 것은 스스로가 포착한 현실을 견디기 위한 방식이며, 그것은‘질마재’라는 유토피아를 구성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이분법의 해체와 금기의 해제는 질마재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그들을 둘러싼 질서와 체계의 기원을 찾아 헤매게 만든다. 이것은 주체의 근본적 결여에서 비롯되는데 이 지점에서 『질마재 神話』를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믿음에 의해서만 지속 가능한 ‘無’임이 환기된다.
『질마재 神話』는 현실과 정반대의 지점을 신화적으로 드러내는 재현의 방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사회와 인간의 주체성이 구성되는 근본적인 차원을 보여준다. 이는‘질마재’에서 사는 것이 결국 무의미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서정주의‘영원주의’와 ‘신라’ 지향은 현실을 초월하는 탈속한 삶의 방식이 아닌 시인이 포착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정교한 ‘신화’에 가깝다. 이것은 그를 공포에 떨게 한 ‘현실’의 윤곽을 선명히 그린 작업이기도 하다.
Ⅱ장에서는 ‘전통성의 회복’과 ‘영원주의’라는 서정주 시정신의 근원이‘질마재’라는 신화로 재현되는 것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야기가 가진 주술적인 힘은 시 속에서 강력한 주문(呪文)처럼 반복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는 시인이 시의 서사화를 통해 시적 주체의 기원의 결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질마재 神話』에서의 ‘신화’는 시적 주체의 기원적 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한다.
Ⅲ장에서는 환상 속에서 드러난 ‘자아ego’는 『질마재 神話』에서 그럴듯하게 꾸며진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서정주 시세계에서 핵심인 ‘영원성’과 ‘환상성’의 매개로 기능한다. 또한 서정주의 『질마재 神話』에 나타나는 전통으로의 회귀 지향성과 시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소문은 현실의 불안정한 실재를 가리기 위해 시적 주체가 구성한 이데올로기적 환상 작용으로 파악된다.
『질마재 神話』에 드러난 ‘환상성’은 서로 다른 의미 작용을 결합시켜 이룩된 고도로 통제된 환상이다. 이것은 합리성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여서 탄생한, 가장 견고한 환상이다. 표면적으로는 사회 질서를 위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긍정하는 태도를 은폐함으로서 지배층의 이익을 옹호한다. 이러한 의미의 층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민감하게 포착해낼 수 있었던 시시인의 비범함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질마재 神話』가 갖는 문학사적 위상은 더욱 공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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