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줄리아의 생애와 영성(生涯와 靈性)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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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에서는 오타 줄리아(Ota Julia)의 生涯와 靈性에 대해 연구하였다. 연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 졌다. 첫째, 임진,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피랍자들의 실태와 일...

본 논문에서는 오타 줄리아(Ota Julia)의 生涯와 靈性에 대해 연구하였다. 연구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이루어 졌다.
첫째, 임진,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피랍자들의 실태와 일본에서의 생활, 그리고 세례를 받은 조선 천주교인들의 삶과 순교를 살펴보았다.
둘째, 오타 줄리아(Ota Julia)의 출생년도, 출신지, 출신 신분, 성명의 문제, 세례와 고니시유키나가(小西行長) 가문과의 관계, 도쿠가와이에야스(徳川家康) 가문으로의 신분 이적과 궁정 생활, 유배와 해배, 그리고 마지막 모습을 살펴보았다.
셋째, 오타 줄리아(Ota Julia)의 생애를 통하여 드러난 영성을 고찰하였다.
연구는 주로 문헌연구 방법을 통하여 진행되었다. 문헌은 예수회 루이스 메디나(Juan Garcia Luiz de Medina) 신부의『遥かなる高麗』(1988)를 중심으로 『イエスズ會士とキリシタン布敎』중 「한국인 오타 줄리아를 찾아서」를 참고하였다.
다음은 이원순 교수의 「오타 줄리아 실기」와 박철 교수가 번역한 『한국천주교전래의 기원』중「한국 교회사 연대표」를 참고하였다. 그 밖에『누리와 말씀』(1998년 제 6호)에 실린 손승철 교수의 「임란 때의 피랍 조선인들과 일본 천주교회」를 참고하였다.
이상의 저서들을 중심으로 연구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임진,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피랍자들은 약 10만으로 추정하며, 이 조선인 피랍자들 중 대부분은 경작노예, 가사 노예, 전매 노예 등으로 취급되었고 오타 줄리아(Ota Julia)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들 조선인 피랍자들 중 천주교인이 되어 순교한 사람들도 많았다.
둘째, 오타 줄리아(Ota Julia)의 출생연도, 출신지, 출생신분을 증명할 사료가 하나도 없으며, 한국어 성과 이름도 알 수 없다. 다만,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1596년 5월 줄리아라는 이름으로 고니시유키나(小西行長)가 집안에 소속되어 모레홍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605년에서 1611년까지 도쿠가와이에야스(徳川家康) 궁정에서 그의 총애를 받으며 생활했다. 1612년 천주교 신앙을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1615년까지 코우즈지마(神津島)로 유배되었다. 그녀는 궁정에서 뿐만 아니라 유배지에서 하느님과 더 깊이 일치하여 초탈한 생활을 하였다. 그 후 해배되어 1619년에는 나가사키(長崎), 1922년에는 오오사카(大阪)에 살았다. 선교사들의 서한을 통해 이곳에서도 성 콘프라디아(Confradia)라는 신심회를 도우며 가난한 여아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이를 끝으로 그 후 그녀의 마지막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셋째, 서한을 통해서 전해지는 오타 줄리아(Ota Julia)의 영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그녀는 피랍인 생활조차 하느님의 섭리로 인식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 고해와 영성체를 자주하는 신앙생활을 하였다. 박해의 위기가 닥쳤을 때 모든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더욱 가난을 실천하였다. 궁정에서나 유배지에서나 언제든 기회가 될 때마다 열정적으로 선교하는 삶의 모범을 보였다. 또한 목숨을 걸고 정결을 지키는 철저한 하느님 사랑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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