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다. 한국정부는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연인원 32만명의 군인을 베트남에 파병하였고, 이 가운데 5천명이 사망하고 1만여명이 부상을 당... 한국사회에서 베트남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다. 한국정부는 1964년 9월부터 1973년 3월까지 연인원 32만명의 군인을 베트남에 파병하였고, 이 가운데 5천명이 사망하고 1만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현재는 1만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그 밖에 전쟁 트라우마까지 포함한다면 베트남 전쟁의 상흔은 매우 진하다. 그런데 베트남은 당시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던 한국에게 ‘아류 오리엔탈리즘’의 욕망을 구현하려 했던 특수한 역사공간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본 논문에서는 베트남전 파병을 지속가능하게 했던 이데올로기 장치인 미디어의 베트남전쟁 재현 양상을 분석하여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한국 사회의 허실을 파헤치려고 한다. 특히,『선데이서울』과 『여원』이라는 잡지를 중심으로 살펴보는데, 이는 당시 대중들이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표적 대중잡지로 그 영향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두 잡지를 통해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은 여성성/남성성의 이분법적인 구도의 젠더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1960∼70년대 한국사회는 가부장제, 군사주의, 개발주의, 반공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키기 위해 한국여성과 베트남여성을 동원하였고, 그 속에서 여성은 위치 지어졌다. 미디어는 한국여성의 ‘모성애’, ‘현모양처’등의 담론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어 베트남파병을 정당화하였고, 병사들의 위로 및 사기 충전의 중요한 표식으로 위문편지와 위문공연을 재현하였다. 베트남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젠더’와 ‘인종’적 시각이 결합되어 나타났고, 그래서 베트남 여성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순수한 남베트남 여성과 베트콩 여성의 이미지가 양가적으로 혼종되어 드러났다. ‘악=베트콩, 정의=한국군’이라는 구도 속에서 ‘베트콩의 악’을 드러내기 위해 베트콩 여성이 동원되거나 또 다른 면에서는 한국군의 ‘치어리더’로서 표상되기도 하였다. 한국 군인들과 베트남 여성들과의 로맨스, 결혼 이야기도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베트남 여성의 ‘구원자’, ‘보호자’로서의 한국군인 이미지를 강화시키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미군으로부터 베트남인과 구분되는 계급 상승의 욕망, 아시아에서 우위에 서려는 ‘오리엔탈리즘’적 한국의 욕망은 베트남과 베트남 여성을 ‘우리 안의 식민지’로 만듦으로써 드러났다. 한국사회에서 베트남 여성은 국제결혼을 알선하는 현수막을 통해서, 또는 ‘다문화사회’라는 이름에 ‘포함’되면서도 동시에 ‘배제’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과 베트남의 국제결혼 중개업자들은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해 역사적으로 구축된 베트남 여성과 한국 남성간의 성애화된 상상력을 적극 활용하여 한국 남성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베트남전쟁 시기부터 미디어의 젠더 이데올로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며, 한국사회에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었던 일본의 식민제국 이데올로기가 베트남전쟁을 통해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 당시의 텍스트를 해석한다는 것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며, 이를 통해 약 5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한국사회의 이런 허실을 상기시키게 한다. ,韩语论文网站,韩语论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