存齋 朴允默 漢詩 硏究 : 晩年期 漢詩를 中心으로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提示:本资料为网络收集免费论文,存在不完整性。建议下载本站其它完整的收费论文。使用可通过查重系统的论文,才是您毕业的保障。

본고는 19세기 여항문학을 대표하는 存齋 朴允默(1771~1849)의 晩年期 漢詩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조선후기 여항문학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박윤묵은 당대 ...

본고는 19세기 여항문학을 대표하는 存齋 朴允默(1771~1849)의 晩年期 漢詩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조선후기 여항문학에서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박윤묵은 당대 사대부와 여항인 집단과 다양한 교유형태를 보였으며 당대와 후세에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방대한 양의 문집과 작품의 난해함으로 인해 그의 시는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기존연구는 閭巷詩社를 연구하며 박윤묵의 작품들을 부분적으로 언급하였는데, 여항시사에서 활동한 그의 일부 시들을 작품론의 관점에서 다루었을 뿐, 박윤묵 개인으로서의 문학은 다룬 것이 없다. 박윤묵은 당대 현실을 사실적인 표현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65세에 平薪鎭 僉使를 제수받았다. 이 시기는 세도가의 전권으로 민중의 삶이 매우 피폐해지던 때이다. 그는 선량한 지방관으로서 平薪鎭 지역을 다스렸으며 본인의 재산을 풀어 기근으로 허덕이는 민가를 구휼하였는데, 첨사일을 하면서 당시 피폐혜진 백성들의 삶을 관찰하고, 시를 통해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박윤묵은 여항인으로서 드물게 두 번이나 금강산에 간다. 첫 번째는 御製詩의 임무로 갔으며 두 번째는 순수한 유람으로 간다. 두 번째 유람에서 박윤묵은 그간의 삶과 문학적 성취를 정리한다. 또한 첫 번째 여행과는 다르게 유가 사상을 고수하면서도 도가와 불가 사상을 어느 정도 수용한 점이 보인다. 박윤묵은 여항시사를 두루 거친다. 여항시사의 전성기인 松石園詩社에 뒤늦게 참여하여 마지막까지 활동한다. 그리고 후배 여항인들과 교류하며 후배 여항인들이 만든 시사에 참여한다. 이 시사에 참여하면서 유흥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후배 여항인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한다. 그의 이와 같은 행보를 통해 19세기 초 여항시사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말년의 박윤묵은 여러모로 우울한 삶을 살았다. 육체적 노쇠와 그동안 겪어온 시대와의 괴리감으로 인해 자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는 다른 여항인들과 달리 유가적인 자기수양과 얼마 남지 않은 지인들과의 교유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17~19세기 여항문학은 조선시대 신분사회가 낳은 문화현상이다. 이러한 사회적 억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인물들은 서얼과 중인서리였다. 이들의 경제적·문화적 역량은 그 전에 비할 바 없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자신들이 존재감을 자각할수록 내면의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박윤묵은 다른 여항인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와의 불화와 괴리감으로 인한 자괴적인 심상이 그의 문집 곳곳에 드러나며 동시에 이를 이겨내고자 했다. 그의 작품들은 19세기 전반기 여항인들의 삶과 문학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韩语论文网站韩语论文
免费论文题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