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론『金閣寺』번역의 목적과 의의
1) 번역의 목적
일본근대문학에서 비교적 우리나라에 알려진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일 것이다. 川端문학의 특징...
1. 평론『金閣寺』번역의 목적과 의의
1) 번역의 목적
일본근대문학에서 비교적 우리나라에 알려진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일 것이다. 川端문학의 특징은 일본여성의 표현을 통해서 일본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다. 작품 속에 그려진 여성이 서양 여성의 삶 일부와 통하는 부분도 있으면서 서양인이 좋아하는 동양풍이었다는 점이 서양에서 받아들여진 요소라고 생각된다.
또한, 직접적인 여성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자연풍경 속에 놓여 있는 간접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통해, 또 다른 아름다움을 川端는 문학작품을 통해 표현했다.「伊豆」의 자연 속에 놓여 있는 젊음에 넘치는 무희의 아름다움 등은 그 전형일 것이다. 또한『雪国』의「터널을 빠져나오면 거기는 설국이었다.」라는 유명한 문장은 그 표현만으로 영상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터널로 표현된 검은 이미지와 눈으로 표현된 흰색 이미지의 대비와 선명함, 한편 터널 속을 달리는 주인공은 기차를 타고 있기 때문에 앉아있는 정적인 상태이다. 풍경의 동적임과 그것을 지켜보는 주인공의 정적인 상태의 대비,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노벨문학상을 받기에 충분한 요소를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한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는 川端의 뒤를 이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는 것은 국내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것보다 그를 유명하게 한 것은 자위대 기지에서 할복 한 우익작가로 더 알려졌을 것이다. 필자 역시 같은 느낌으로 三島를 파악했다. 우익사상의 문학가, 그의 문학도 우익사상을 재현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의 저서인『金閣寺』를 과거에 일독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잘 이해가 안 된다」라는 것이 실질적인 감상이었다. 처음부터『金閣寺』가 三島의 작품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三島가 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는지, 三島가 그리고 있는 일본의 아름다움이 川端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일본의 아름다움이라는 점. 川端가 자연 풍경 속에 여성을 둔 것처럼 三島는 사회 풍경 속에 남성을 두었다. 川端에 비해 三島의 경우는 남성의 아름다움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표현은 대조적이기는 하지만 두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일본의 아름다움일 것이다.
보통은 보기 흉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과연 정말 추한 것인지, 사실 그것은 정반대로 아름다운 것은 아닌지, 한편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것이 과연 정말 아름다운 것인지 사실 추한 것은 아닌지, 그런 도착(倒錯)을 통해 보이는 것이「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을 표현한 것이 三島라고 생각한다.
할복으로 상징되는 三島의 우익적인 사상이 왜 일본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三島가 표현하려고 한 아름다움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란 것이 나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본 번역을 통해 그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의 문학만이 아닌 그 평론을 통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2) 번역의 의의
소설『金閣寺』는 실제로 있었던 방화범이 주인공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반사회적인 것을 권장하기 쉬운 작품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표면적인 감상이 되기 쉬운 작품으로,「무슨 뜻인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내용일 것이다.
단순한 범죄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작품의 평론을 통해 어느 부분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그 해설을 통해 이 작품이 어떻게 읽히고 있는지, 해설과 평론을 통해 작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필자의 이해가 깊어지는 것뿐만이 아니라 한국어를 통해 한국인이 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며, 또한 일본문화에 대한 이해를 한 단계 심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것은 결코 표면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일본문화에서 하나의 문화로서 생각되는「아름다움」에 대한 언급은 일본인이 인식하고 있는「아름다움」 대해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요소라고 본다.
『金閣寺』의 작품세계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 그것은 번역이라는 작업의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2. 평론『金閣寺』의 선정이유
『金閣寺』著作論集는 소설『金閣寺』에 대한 평론 걸작의 모음집이다.
평론 전문을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번역 목적의 하나인『金閣寺』라는 작품의 직접적인 이해의 심화, 즉「이해가 잘 안 된다」라는 것을「이해할 수 있겠다」라는 상태로 하고 싶다. 나아가서 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게 하고 싶다는 점을 고려해서 평론을 그 방향으로 선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 배덕의 윤리 ─『金閣寺』三島由紀夫
Ⅰ∼Ⅲ까지『金閣寺』가 쓰이기까지의 상황이 설명되어있으며, 본편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는 것이 Ⅳ이다. 이 평론에서는, 원문 일부를 인용하며 그에 대한 설명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 이해와 감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 미의 변질 ─『金閣寺』론 서설
저자인 다나카 미요코(田中美代子)의 의견과 감상을 코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의 단어, 작가인 三島由紀夫의 단어,『金閣寺』를 방화 한 실제범인의 말을 빌려 범죄를 통해 그려지는 현실사회의 인식과 반사회적이기 때문에 더욱 드러나게 되는 사회적인 것에 대한 의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본 평론에서는『金閣寺』의 주인공은 방화범과 동일인물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다.「서설」이란 제목처럼『金閣寺』라는 작품을 전체로 바라본 형태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파악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3)『金閣寺』론
소설『金閣寺』가 가지고 있는 다중구조를 인용하면서 해설하고 있다. 이 평론이 쓰여 진 것은 三島가 할복자살을 한 이후이며, 三島의 죽음을 소설『金閣寺』와 이어지는 부분을 이 평론에서 언급하고 있다.
田中美代子의 평론이 작품 전체를 바라본 형태라고 한다면, 엔도 신지(遠藤伸治)의 평론은 거기에서 더 깊이 들어가는 형식이다. 이 점에서 작품내용의 이해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4)『金閣寺』의 일인칭 고백체
田中美代子의 미의 변질의 이론을 받아들이며, 그중에서 본 작품의 중요한 특징인「일인칭 고백체」에 대해 언급하고 해설하고 있다.
단어의 특색으로서 일인칭으로 특화한 표현은 그대로 일본어의 특성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말의 실례로서「일인칭」을 지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일본어라는 표현 속에서 일본문화의 본질적인 것을 의식하고 그 의미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기는 쉽지 않다.
즉 본질적인 의미, 일본사회 속에서 단어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늘리기 위해『金閣寺』에 대한 이해를 본 평론의 번역은 의미가 있다.
5)「미 (이미지)」의 논리─三島由紀夫『金閣寺』─
田中美代子, 遠藤伸治와 마찬가지로 작품 일부분을 인용하면서 해설하고 있지만, 거기에 야마자키 요시미츠(山崎義光)의 시점으로서 작품에서 표현되는「미」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물론 그것은, 山崎가 생각하는「美」가 아닌, 三島가 생각하는「美」에 대한 것이다. 본 평론은『金閣寺』의 설계도를 해설한 것이지『金閣寺』의 문학적 가치를 해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평론가의 주관적 의견은 배제되어 있다.
이러한 평론을 통해서 독자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거론된「美」의 감상은 독자의 판단에 맡겨질 것이고, 이것은 작품을 통해서 일본의「美」를 이해한다고 하는 목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金閣寺』에 대한「이해가 잘 안 된다」라는 감각을「이해할 수 있겠다」라는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지표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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