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한인문학은 이민자의 대다수가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점, 그들이 선택한 국가가 서구식 근대와 자본주의 질서가 국가체제로 형성된 초강대국 미국이라는 점, 소수...
재미한인문학은 이민자의 대다수가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점, 그들이 선택한 국가가 서구식 근대와 자본주의 질서가 국가체제로 형성된 초강대국 미국이라는 점, 소수민족의 언어인 한국어와 세계 공용어의 수준의 영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아래 작품을 창작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두 개의 언어를 각기 택했을 때 발생하는 국가문학의 범주와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상태에서 발생한 문학이다.
자본주의적인 근대 체제를 이미 갖추고 있는 미국에, 비록 자발적인 의지에 따른 이산이지만 무수히 많은 인종이 뒤섞여 있는 미국 사회에서 편입되었다는 사실은, 여타 디아스포라문학이 갖는 일반적 특징과는 차이점을 야기한다.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반대로 언제든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모국으로 귀환할 수 있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어버린 모국의 자손으로 상정할 수는 없는 일이며 주류 질서와의 갈등을 정치적인 수준으로까지 상승시키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때문에 재미한인문학을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서양이 동양을 타자로 상정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인식의 틀이 얼마나 유효한 것인지 측정할 수 있는 주요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 또한 재미한인문학에 면면히 흐르는 한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고려한다면 오리엔탈리즘으로 대표되는 식민주의를 내파시킬 수 있는 탈식민주의적 동력이 얼마나 작동할 수 있는지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강용흘은 『초당』에서 한국 전통 문화와 대한제국이 붕괴되고 있음을 민족주의적인 정서와 식민주의적 정서가 착종된 상태로 바라본다. 이는 강용흘의 작가의식이나 민족의식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당시 서구 열강의 압도적인 힘과 세계적인 조류를 고려해봤을 때는 불가피한 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강용흘은 『동양선비 서양에 가시다』를 통해 자신이 갈망하던 서구와 근대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이었는지, 서구와 근대의 체제가 특히 미국 내 소수민족 이민자들에 얼마나 폭력적으로 작동하는지 드러낸다. 이때 강용흘은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식민적인 이중의식을 극복해내면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미국과 근대를 비판한다.
김은국은 『순교자』에서는 전쟁이라는 정치적으로 매우 특수한 상황을 깊게 고려하지 않고 북한군을 일방적인 악의 무리로 설정했다는 점, 신목사의 이율배반적인 행위를 곧바로 인류 보편적인 구원의 행위로 형상화시킨 점 등은 탈식민주의에서 일차적으로 요구하는 민족주의적 관점을 적절히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심판자』에서 드러나는 영웅주의와 선악의 단순한 구분 등도 비판받을 여지가 적지 않다. 하지만 『잃어버린 이름』에서 잃어버린 역사성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객관성을 확보하여 올바른 진리나 정의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민족지적 관점의 문학이라는 비판을 이겨내려고 한다.
이창래의 경우는 탈식민주의의 핵심적인 개념인 양가성과 혼종성을 적극 구현한 작품을 연이어 창작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작가이다. 『영원한 이방인』에서는 완벽한 영어에서 소외된 인물의 내면이 자기 긍정의 과정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으며, 『제스처 라이프』에서는 한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일본인 가정에서 성장한 뒤 일본군으로 입대해 한국인 종군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 혼종성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곧 자존의 확립이라는 사실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생존자』에서는 한국전쟁을 겪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힘든 여생을 살아온 주인공이 친아버지를 찾아 먼 길을 떠난 아들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구성적 정체성이 단지 이민자 혹은 이산자만의 것이 아님을 형상화하고 있다.
세 명의 작가들은 재미한인문학의 세대별 특징을 적절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탈식민주의에서 요구되는 이중의식과 모방의 문제, 그리고 백인 주류 질서 혹은 식민 체제와 마주섬에 있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동적이며 구성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하는 양가성과 혼종성을 적절히 형상화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세 작가의 문학적 성취는 단지 재미한인문학이라는 특수한 범주를 넘어서 ‘타자의 문학’ 동시에 ‘생명의 문학’을 추동시키고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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