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본 연구자는 성찬의 의미와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신약성서부터 현대예배까지의 성찬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보고, 또한 웨슬리의 성찬에 대한 입장도 분석해 보았다. ...
지금까지 본 연구자는 성찬의 의미와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신약성서부터 현대예배까지의 성찬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보고, 또한 웨슬리의 성찬에 대한 입장도 분석해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성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초대교회에서는 성찬이 매일 그리고 가능한 한 자주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또한 그들의 모임은 처음에는 순수한 사랑의 식사와 교제와 감사의 만남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성찬의 본래의 모습과 의미는 사라지고 교회 안에 빈부의 격차가 눈에 보이도록 벌어지고 성찬의 참 의미는 퇴색되고 말았다. 이것은 하나 됨이 아닌 개개인의 행동으로 인하여 벌어진 분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아닌 '나'만 위하는 '나'만을 사랑하는 행위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예전은 처음에 좋고 순수한 의미로 시작되었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식화되어 버리고 변질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를 외치고 초대교회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고린도교회와 같이 본질을 잃어버리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중세시대에 들어와서 성찬은 극진한 대우를 받게 된다. 중세교회의 성찬식은 집례자와 회중들과의 관계는 수직적인 관계로 진행되었다. 회중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로 진행된 예배는 회중들과의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하고 아무런 의미 없이 자리에 참여하는 자들로 만덜어버렸다. 이러한 예배의 형식은 회중의 신앙생활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성찬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성도가 많아지기 위한 길은 성찬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없고 형식적인 교리문답식의 교육만 이루어지는 현대교회에서 중세교회와 마찬가지로 예식은 한국어로 진행되지만 일방적으로 행하여지는 성찬이 될 수밖에 없다.
성찬식의 횟수에 관하여는 웨슬리의 주장대로 주일마다 성찬식을 거행하는 것에 대하여 찬성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바와 마찬가지로 성찬식이 거행되는 횟수만큼 성찬에 대한 교육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찬식을 자주 드림으로 인해 성찬의 의미가 훼손된다는 일부의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 이유는 웨슬리가 말한 대로 성찬이 '하나님의 은총의 수단'임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성찬식을 자주 드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찬을 얼마나 의미 있게 드리는 것이냐.'는 것이다. 성찬식이 형식적인 예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집례자 뿐만이 아니라 수찬자도 성찬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성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짐으로 성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개선되고 중세교회의 문제점만이 부각되는 성찬식이 아닌 초대교회의 순수한 신앙의 열정이 회복되고 곧 오실 주님을 기대하는 성찬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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