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무용가 정금란 선생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무용사적 의의를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금란 선생은 한영숙 선생에게 승무와 살풀이춤을, 김진걸 선생에게 산조를 사사 받았다... 본 연구는 무용가 정금란 선생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무용사적 의의를 조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금란 선생은 한영숙 선생에게 승무와 살풀이춤을, 김진걸 선생에게 산조를 사사 받았다. 또한 무용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중요 무형문화재 제 5호(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이다. 정금란 선생의 무용의 역사는 성남시와 맥을 같이 하며 성남 무용계의 대모로서 추앙받고 있다. 무용가 정금란 선생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그의 예술세계 면면에는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바탕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미 타계한 선생의 생애를 시간의 연속적 흐름을 통하여 파악하였다. 선생의 생애와 무용에 대한 역사는 성남시사편찬위원회에서 2004년, 2014년에 발행한 『성남시사』와 정금란 선생의 부군인 김성태가 개인 블로그와 SNS를 통해 기록해 놓은 자료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의 제자나 지인인 무용가 김근희, 이명자, 조흥동 선생과 부군 김성태, 남동생 정호정의 구술 채록을 통해 선생의 춤과 삶에 대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선생은 오랜 역사를 이어온 한국의 전통 예술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된다고 여겼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선생은 무용, 판소리, 가야금, 민요, 서예 등 한국의 전통 예술을 두루 섭렵하였다. 선생은 무용가로서 춤에 대한 열정을 갖고 춤을 추었고 안무가로서 다수의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교육자로서 제자를 양성하였다. 선생은 제자들에게 기본을 가르치는데 있어서 매우 엄격하였고 승무, 살풀이춤과 산조를 춤의 기본으로 여기고 철저히 지도하였다. 이는 선생이 한국의 전통 예술의 보존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생이 안무한 다수의 창작 작품은 전통예술의 보존과 전승을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선생은 <즉흥무>, <선열>, <추모의 정>, <산성풀이>, <환희>, <고목>, <학의 노래>, <구원>, <문>, <여명>, <예맥>, <잉여인간>, <무릉도원>, <무녀도>, <빛과 소리>, <풍속도> 등 예술성을 인정받은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춤 명인 정금란 선생이 남겨놓은 다수의 작품은 한국전통의 대표적 정서인 한과 삶의 애환을 초월적 의미로 승화시켜 신명나게 담아내고 있다. 정 선생 작품의 특징은 예술성, 지역성, 전통의 계승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특징으로 예술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선생은 민속무용의 정수(精髓)라고 인정받은 작품으로 승무를 통해 농도 짙은 예술성을 선보였다. 예로부터 승무만 완전히 터득하면 다른 춤은 저절로 출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선생의 승무는 흐르는 멋과 내면의 인격이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아름다운 자태를 구사하였다. 더불어 선생은 작품 곳곳에 승무가 가지고 있는 형태적 상징성과 미를 구사하며 창작 작품을 안무하기도 했다. 또한 선생은 승무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실력을 인정받았다. 두 번째 특징은 지역성을 들 수 있다. 성남은 시로 승격한 1973년 한국 초유의 인공도시였고 문화 불모지이다. 이곳에서 성남에서 정금란 선생으로 인해 성남 무용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성남시는 20여년간 눈부신 활약을 한 정금란 선생을 향토무용가로 추앙하였다. 열악한 빈민지역의 철거민이 모여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루게 된 것은 선생의 업적에 기인한 것이다. 선생은 초대 (사)<한국무용협회> 성남시 지부장과 (사)<한국무용협회> 경기도 지회장을 지내며 성남과 경기도 무용의 발전을 위해서 초석을 다졌다. 이에 성남시는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가 성남의 예술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인정하여 매년 성남시의 지원으로 <정금란 무용제>를 15회째 이어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정금란 선생의 춤의 세 번째 특징은 전통의 계승이다. 선생은 전통의 전승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문하생들에게 살풀이와 승무 그리고 산조를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또한 선생은 전통을 그대로 지키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창작 작품을 창조해내는 데에도 끊임없는 노력을 하였다. 이처럼 춤 명인 정금란 선생의 춤에 대한 연구는 현재를 살아가는 무용인들에게 전통의 현대화 작업이나 창작의 방향에 조그만 이정표가 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정금란 선생은 1994년 6월에 53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선생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춤을 향한 예술정신과 작품은 역사 속에 길이 자리 잡을 것이다. 정금란 선생의 이러한 공연활동은 관객들의 삶과 사유를 풍요롭게 하였고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끝으로 본 연구가 선생의 생애와 예술작품을 역사 속에 복원하여 현 시대의 무용가들에게 하나의 예술적인 사례로 남게 되길 바란다. ,韩语论文,韩语论文题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