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20세기 초반 근대 및 대중사회로의 변모양상에 따른 새로운 판소리문화의 형성모습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대중매체의 등장이 판소리 가수들의 활동양상에 끼친 영향을 고찰해 본... 본 논문은 20세기 초반 근대 및 대중사회로의 변모양상에 따른 새로운 판소리문화의 형성모습을 알아보고, 이를 통해 대중매체의 등장이 판소리 가수들의 활동양상에 끼친 영향을 고찰해 본다. 당시 대표적인 대중매체로는 라디오, 신문, 유성기음반을 꼽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판소리 변화양상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유성기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판소리 가수들, 그 중에서도 근대 5명창의 음악예술 활동에 따른 음반활동과 그 양상을 파악하는 것은 판소리음반을 통해 판소리의 변화양상을 알아보는데 큰 힌트를 제공한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한국음반시장의 형성과정을 도입기(1907~ 1927), 전성기(1928~1936), 그리고 쇠퇴기(1938이후)로 나누어 기초적인 고찰을 하였으며, 특히 대중매체의 성행 및 유성기음반의 전성기였던 1930년대에 출반된 판소리 전집음반의 등장이 이전의 판소리와는 어떠한 차이를 불러왔는지 이를 비교 및 분석하여 판소리 전집음반이 판소리사 안에서 가지고 있는 의의를 살펴보았다. 판소리는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새로운 변화를 경험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선 대중이라는 개념은 예술의 제약성을 해방시켜 주었기에 판소리는 대중예술로써 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거대 자본을 소유한 6대 음반회사(콜럼비아⋅빅타⋅시에론⋅오케⋅포리돌⋅태평)는 대중화에 발맞추어 한국 전통음악 및 대중가요의 취입을 활발히 진행하며 음반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판소리는 전집류음반을 취입하며 대중예술로써의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은 기존의 판소리가 겪어온 변화양상과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신민요와 대중가요가 유행함에 따라 판소리도 유행가의 특성에 맞추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안에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도막소리로써의 판소리가 활발히 취입되었다. 더불어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단가와 기악반주와 더불어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가야금병창의 취입으로 대중들의 입맛에 맞춰나갔다. 두 번째, 창자 및 반주의 변화이다. 대중들은 판소리의 즉흥성이나 거친 소리보다는 유행가와 같이 서정적이고 듣기 편한 소리를 추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중고제를 부르던 굵고 강직한 소리보다 서정적이고 애절한 서편제의 소리가 인기를 끌었으며 더불어 여성명창의 섬세한 소리를 추구했다. 또한 소리의 빈 공간을 채워주는 반주음악과 다양한 효과음의 등장으로 판소리 전집음반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세 번째, 이전의 판소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만 듣는 평면적인 소리였다면, 판소리 전집류음반의 등장을 통해 입체적이고 여러 소리를 각 배역에 맞추어 들을 수 있었다. 한 개의 음반에 여러 명창의 소리와 동편, 서편, 중고제의 소리를 구분 없이 한꺼번에 들을 수 있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 판소리와 창극에 근본이 되는 소리였다고도 할 수 있다. 유성기음반의 등장은 구비전승 되던 판소리를 한 곳에 모아 사승관계, 지역,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소리를 감상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근대사회로 넘어오며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판소리에도 위기가 있었지만 판소리 명창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판소리 예술 활동이 지금의 판소리를 있게 했다. 기존의 선행연구와 본 연구를 통해 유성기음반은 구비전승 되던 판소리의 새로운 변화양상을 보여주었고, 판소리사에서 이러한 변화양상이 갖는 의의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판소리 유성기음반, 특히나 판소리전집류 음반이 판소리사에서 갖는 의미와 가치를 본 연구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 및 고찰하며 유성기음반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I tend to analyze the appearance of the new Pansori culture based on the appearance of modern and modern society in the early 20th century as well as the effects of mass media on the appearance of Pansori-singers. The media, which represents radio, ne... I tend to analyze the appearance of the new Pansori culture based on the appearance of modern and modern society in the early 20th century as well as the effects of mass media on the appearance of Pansori-singers. The media, which represents radio, news, and record albums, is one of the biggest performers in the world, and the biggest portion of the Pansori-repertoire is the gramophone records. In this regard, it is a great clue to the Pansori recordings of Pansori albums, which are grounded on the musical records of Pansori artists, among others. When it comes to recognizing this, the introduction of the Korean music market was first introduced into the development(1907~1927), the peak (1928~1936), and the ebb(after the 1938) and flow of the use on, especially 1930s, when the heyday of the mass media and gramophone recordings, the records of the recording of a Pansori album were compared with the previous Pansori record that illustrated the significance of the Pansori publishing system. The Pansori has experienced a new variety of changes from the 18th to the 19th century. As the concept of the 20th century was liberated from the constraints of art, the Pansori was able to change as a pop art. The six albums owned by the nation`s largest music companies(Columbia, Victor, Chieron, Okeh, Polydor, and Taihei) began to release the recording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and pop music with the introduction of Korean traditional music. The Pansori did not spare its efforts to cement its position as a pop art. These efforts indicated a difference in the variation in the shape of the existing Pansori, which can be arranged in three ways. As the first and popular pop songs became trendy, Pansori began to change in accordance with the characteristics of the trend. As a simple song, Pansori was actively changed in a simple way to enjoy it briefly. In addition, the public has joined the public appetite of the Gayageum with a song of similar features and short-Pansori, which have a similar character and instrumental accompaniment. Speaking of changes in singers and changes of the instruments, the audience sought to hear more lyrical and melodious sounds rather than the improvisation and strong sounds of Pansori. Therefore, the lyric sounds of a lyrical and pathetic sound called the “Seopyeonje”, the traditional sounds like strong and thick called the “Junggoje”, became popular with detailed sounds with female Pansori-singers. Moreover, the introduction of music and various sounds to the accompaniment of sounds filled the recordings, which could make people appreciate more solidly. Third, if the former Pansori was formed with only one sound of one person, it was able to imitate the solid sounds and appearance of a each part through the appearance of a Pansori-series records. It has a matter of meanings that one record can have the sounds of various singers, such as “Dongpyeon”, “Seopyeon”, “Junggo”. These changes can be also a fundamental source of modern Pansori and Changgeuk. Concerning the arrival of the gramophone records helped to identify and affirm various sounds, regardless of the history of the Pansori, the relationship between regional and gender,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locals. Like modern society, there was a crisis in Pansori, but there were endless efforts of Pansori-singers and artistic activities that contributed to modern Pansori. Traditional studies and this study show that the new twist in the history of Pansori has handed down by mouth and it manifests the significance of this change in the history of the Pansori classic. In short, a new way of interpretating the history of Pansori, That is, Pansori series records, can be interpreted in another way. ,免费韩语论文,韩语论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