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예술관의 낭만주의적 성격 연구 : 민예적 전환의 계기를 중심으로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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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예술에 대해 주목했던 사상가이자 민예운동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예술관을 낭만주의란 프레임을 통해 검토한 것이다. 그의 예술관은 다이쇼 시기, ...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예술에 대해 주목했던 사상가이자 민예운동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예술관을 낭만주의란 프레임을 통해 검토한 것이다. 그의 예술관은 다이쇼 시기, 다이쇼-쇼와 이행기, 쇼와 초기에 걸쳐 표면적으로는 대립적인 변화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각 시기에, 미적근대성의 의제화, 미적근대성과 반(反)근대성의 교착, 반근대성의 강조로 드러나며 그 과정마다 주목하는 대상의 변화를 동시에 수반했다. 이는 서구인상파 미술, 조선예술, 공예에 대한 관심으로의 이행과정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야나기의 사상적 스펙트럼은 일견 극에서 극으로의 변화처럼 보이기도 하며 이에 따라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 또한 상반된 입장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이 논문에서는 낭만주의가 내포한 이중적 성격, 즉, 아날로지(반(反)근대성)와 아이러니(미적근대성)란 상반돼 보이는 두 속성을 동시에 내포한 것을 낭만주의의 특징으로 간주했다. 이를 통해 야나기 예술관의 변모가 시대의 변화에 따른 낭만주의의 두 속성의 한 측면에서 다른 한 측면으로의 강조점의 변화과정임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러한 변화는 다이쇼 시기에 영국의 낭만주의 예술가 윌리엄 블레이크를 수용하면서 주로 근대적 미디어인 잡지 『시라카바(白樺)』를 통해 후기 인상파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 소개란 모습으로 가시화되었다. 이는 미적근대성의 의제화를 통한 일종의 계몽활동이었는데, 이를 통해 야나기는 메이지 1세대의 문명 중심의 서구 수용 태도를 상대화하면서 개인, 주체, 상상력, 천재 등과 같은 미적근대성의 핵심 주제들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야나기는 다이쇼-쇼와 이행기 조선에서 일어났던 1919년 3·1독립운동을 계기로 조선예술에 대한 옹호와 함께 조선의 식민지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언설들을 생산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조선에서의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야나기의 관심은 아내인 야나기 가네코의 공연, 전시회의 개최, 조선민족미술관의 설립을 위한 제반 노력 등과 같은 조선에서의 미적근대성의 확산을 위한 계몽적 활동과 반(反)근대적인 조선예술의 옹호라는 일견 상반돼 보이는 두 영역에 걸쳐있었다. 이와 같은 교착 내지 혼종 상태는 다이쇼-쇼와 이행기의 독특한 모습이기도 했다. 야나기는 쇼와 시기에 접어들면서 미적근대성을 강조했던 입장에서 벗어나 동양의 전통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야나기는 개인, 주체, 상상력, 천재 등의 문제들을 서구 개인주의의 한계로 바라보면서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공예로 대변되는 동양의 전통에서 찾고자 했다. 공예는 실제 쓰임에 근거한 실용성을 바탕으로 한데다 작업의 성격상 개인보다 협업이 강조되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자기부정의 태도는 미적근대성에서 반근대성으로의 이행과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이행에는 조선예술의 발견과 러스킨과 모리스의 사상이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러스킨과 모리스 역시 한때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로 이들의 중세주의적인 감수성은 야나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쇼와 초기에 야나기는 공예에 대한 사색을 집약하여 민예론이란 독자적인 예술관을 정립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야나기 사상의 궤적은 미적근대성에서 반근대성으로의 이행과정으로 드러나는데, 이 과정은 결국 낭만주의가 내포한 두 가지 속성의 한 측면에서 다른 측면을 강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즉, 야나기의 사상적 궤적을 통해 그의 정신에 삼투돼 있는 낭만주의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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