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巖日錄’을 통해 본 19세기 후반 서당의 교육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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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紫巖日錄’을 통해 본 19세기 후반 서당의 교육 경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초등사회과교육전공 정 찬 호 근대 교육이 시작되고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의 구성이나 학교...

국문초록 ‘紫巖日錄’을 통해 본 19세기 후반 서당의 교육 경인교육대학교 교육전문대학원 초등사회과교육전공 정 찬 호 근대 교육이 시작되고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의 구성이나 학교의 체계를 살펴보면 모두 서양의 교육 철학과 방식을 그대로 들여와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현대 교육에 있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문화와 교육방법이 있는 것이다. 이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지 않고 다른 나라의 방법이나 역사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없이 방법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조선시대의 서당은 7~8세에 입학하여 다니는 교육기관이었다. 이는 오늘날의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시기와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연구자는 조선시대 말에 서당에서의 일지를 기록한 자암일록(紫巖日錄)을 분석하여 조선시대에 서당에서 이루어졌던 교육과정과 훈육방법 등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시대 서당에서 이루어진 초등교육의 모습을 자세하게 알아보고자 하였다. 자암일록(紫巖日錄)을 분석하여 연구한 결과를 요약하면 첫 번째로는 자암서당에서 이루어진 교육과정은 오늘날 학교의 교육과정과 비슷한 점들이 있고 체계적이었다는 것이다. 자암서당에서는 서당일지를 기록하는 직일이 많은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일일반장과 비슷한 역할이었다. 떠드는 학생들 꾸짖기도 하고 부족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또래교수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자암서당에서는 수준별 학습이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학업 진도에 따라 세 등급으로 나누어 교육을 받았다. 초급단계인 몽재부터 중급단계인 하재, 그리고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상재로 올렸다. 또한 학업을 ‘통’,‘약’,‘조’,‘불’의 4단계로 평가를 하였다. 두 번째로는 자암일록(紫巖日錄)을 통해 자암서당에서 이루어진 생활지도는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 실시됐다는 것이다. 자암서당에서는 소눌 노상직이 직접 작성한 훈몽첩(訓蒙帖)이라는 일종의 학급규칙이 있었다. 훈몽첩(訓蒙帖)의 춘첩(春帖)의 경우는 일종의 교훈에 해당하는 것으로 학생들의 숙소에 붙여두고,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게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선악적(善惡籍)이라는 장부를 만들어 학생들의 선행과 악행을 직일로 하여금 기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매달 일정 시기마다 상벌의 조치를 하였다. 이는 오늘날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상벌제와 유사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자암일록(紫巖日錄)을 통해 교육자로서 가져야할 품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사의 권위가 많이 떨어져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눌 노상직의 경우는 자신의 위치를 낮춰 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춰주면서 학생들에게 권위적이지 않았다. 또한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학생들 한명 한명에게 애정을 가지고 하직하는 제자에게 시를 지어주기도 하고, 제자의 죽음에 몹시 슬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소눌 노상직이 77세의 삶을 끝내고 장례를 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모여들고, 소눌 노상직의 학풍을 이어받은 제자들이 여기저기서 학풍을 떨친 모습을 보면 오늘날 교사로서 가져야할 품성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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