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택과 김수장의 시조 비교 연구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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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에서는 김천택과 김수장의 문학 활동에 대해 살펴본 후 김천택과 김수장의 시조를 세 가지 비교 기준에 따라 비교 연구하고 시조 문학사적 의의를 찾아보았다. 이는 우리 시가 문학...

본 연구에서는 김천택과 김수장의 문학 활동에 대해 살펴본 후 김천택과 김수장의 시조를 세 가지 비교 기준에 따라 비교 연구하고 시조 문학사적 의의를 찾아보았다. 이는 우리 시가 문학사상 중요한 업적을 세운 두 인물을 비교함으로써 우리 시가의 중요성과 가치를 다시금 인식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
김천택과 김수장은 동시대에 태어나 평행선과 같이 나란히 같은 길을 걸어왔다. 두 사람은 평민 출신으로서 시조를 짓는 시인으로, 또 노래하는 가객으로, 가객들을 모아 가단을 형성하기도 하였으며 전문 시조인의 면모를 보이며 기존의 산발적이던 작품들을 한 데 모아 책으로 엮어낸 가집 편찬자로서도 활동했다. 그러나 이들은 비슷하나 다른 모습의 사상과 자연관 그리고 현실인식을 하여 작품의 행보는 달리 했음을 살펴볼 수 있다.
김천택은 포교 출신의 시조 작가로서 김수장보다 앞선 평민 시조 작가의 선두의 입장에 있었다. 선대의 시조 문학은 양반 위주의 시조 문학이 주된 입지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양반과 본인이 속한 평민의 신분 격차 속에서 김천택은 기존의 양반 문학의 전통을 잇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평민으로서의 시조 문학의 가치를 드러내려는 중간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집 『청구영언』을 통해 곡조별, 시대별, 작가별로 작품을 분류하며 고려 말부터 당대까지의 시조들을 정리하게 되었다. 지배계층의 작품을 많이 실었으나 여항육인이라는 작가 분류를 따로 두어 본인을 포함한 당대의 평민 계층의 문학의 우수성을 드러내려 하였다. 그런가 하면 중간자적 위치에 있었기에 겪는 괴리도 존재했다. 그는 신분상승과 입신양명을 꿈꾸며 유교적 가치를 추앙하는 시조를 지었으나 그 꿈이 좌절되자 자연 속에서 위로를 받으려 했고 도교적 가치를 노래하기도 했다. 현실 속 좌절을 자연 속에 은둔함으로써 풀어내려 한 것이다.
김수장 또한 신분은 평민 계층으로서 서리라는 관직을 잠시 지내다 시조에 몰두한 인물이라 볼 수 있다. 김수장은 김천택과 같은 길을 걸었으나 아무런 토대가 없던 김천택에 비해 김천택이 쌓아둔 기반 위에서 더욱 활발히 문학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김천택의 『청구영언』에 이어 『해동가요』를 편찬하였는데 『청구영언』의 기존 체제를 유지하되 당대의 왕성한 활동을 하던 작가와 작품들을 더 발굴하고 끊임없이 개정의 과정을 거쳤으며, 김천택과 달리 사설시조라는 장르를 인정하고 본인이 다작의 작가로서 많은 사설시조들을 수록하기도 하여 발전된 면모를 보였다. 김천택은 자신의 신분에 대한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로 힘들어했지만 김수장은 본래 자신의 신분에 대해 만족하며 살아갔다. 시조를 향유하는 계층으로서 전해 내려오던 양반 계층의 유교사상을 수용하여 시조를 짓기도 했지만 동시에 도교 사상의 신선, 풍류, 술, 즐김, 허무에 대해 다루기도 했고, 자연 속에서도 자연 그대로가 유흥의 대상이 되어 즐겼으며 따라서 현실 인식에 대한 만족을 드러내는 시조를 많이 지었다.
본 연구를 통해 김천택과 김수장의 문학 활동인 시가관, 가단형성과 교유인물 그리고 가집의 체계와 사설시조의 위상에 대해 살펴보고, 둘을 비교하고 김천택과 김수장 시조의 문학사적 의의를 찾아보았다. 이를 통해 18C를 대표하는 김천택과 김수장, 두 평민 시조 문학가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연구의 지평을 넓혀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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