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전라남도 강진군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병영상인의 상인정신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국내 기업들이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는데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오... 본 논문은 전라남도 강진군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병영상인의 상인정신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함으로써 오늘날 국내 기업들이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는데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대내외 여건 악화로 인해 한국 기업들이 당면한 문제는 매우 심각하며, 전통적 성장모델의 효율성이 한계에 부딪쳐 있는 현실에서 연구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써 수많은 역사적 수난을 겪었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상인정신에서 안내자적 역할을 찾기로 했다. 이를 위해 1천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병영상인의 상인정신을 연구하였다. 병영상인들이 수많은 시련 속에서 독특한 상인정신을 바탕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부활했던 교훈이 우리기업들이 당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경영활동을 해야 할지 답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본 연구는 문헌 고찰과 사례연구, 인터뷰를 통해 병상(兵商)의 탄생 및 역사적 발달과정, 활동 현황을 살펴보고, 병영상인 상인정신의 형성과정을 체계적으로 규명하며, 병영상인 상인정신이 현대 기업가의 경영사상이나 경영철학으로 어떻게 승계 발달되어 왔는지를 경영사적 연구방법을 통해 조명함으로써 오늘날 한국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우선 연구에서는 병상(兵商)이 탄생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병영상인이 탄생한 배경은 강진군의 지리적 조건과 관련이 있다. 강진군은 한반도 서남해안 끝에 위치해 서해안과 남해안이 만나고 중국과 일본의 중간지점의 항로에 위치해 오래전부터 국제무역의 중심지에 있었다. 이 같은 지리적 조건에 따라 삼국시대 이전부터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각종 문헌과 문화재 발굴 등을 통해 확인되고 있으며, 특히 828년 통일신라시대 장보고가 군사시설인 청해진을 설치하고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삼각 국제무역을 벌이면서 병영상인이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병영상인은 청해진 폐쇄로 일시적으로 위기를 겪었으나 고려시대 들어 고려청자 생산을 계기로 빠르게 부활했다. 공납(貢納)을 위해 강진에서 개경으로 청자를 실어 나르는 뱃길이 있었으며 제주도에 청자를 팔러 다니는 일반 상인이 존재했다. 또 청자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과 연관 산업들이 필요해 고려시대 강진은 오늘날 국가산업단지 기능에 버금가는 산업 기반이 존재했다. 병영상인들은 14세기 들어 청자의 쇠퇴와 함께 조선왕조의 설립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변혁기를 겪으며 또 한 번 수난을 겪었지만 조선전기 전라병영이 강진군 고군면(지금의 병영면)에 설치되면서 부흥하였다. 석성을 쌓는 막대한 토목공사가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공출되었고, 그들에게 필요한 자재와 식량을 공급하는 상인들이 필요했다. 성이 축조된 후에는 성내에서 소비되는 군수물품이나 각종 세금을 수송하거나 관리하는 상인들이 필요했으며, 성 주변에 거대한 주거단지가 형성되면서 상인들은 병영성 필요물품 취급과 함께 독자적인 상업을 확장하면서 발전해 갔다. 병영상인은 1894년 전라병영이 폐영 될 때까지 인근 지역은 물론 부산, 한양, 평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상권을 형성하며 활동하다가 병영성의 폐영과 함께 침체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병영상인들은 타 지역으로 활동무대를 옮겨 기업을 키우는 한편 지역 내에서 다시 장사를 하면서 화려하게 피어났다. 한말에서부터 한일합방시기까지 활동한 병영 박약국의 경우 부산과 서울, 제주도등 전국적인 유통망을 통해 약재를 구입 및 수송해 왔다. 해방 후까지 활동했던 김충식의 경우 해운회사와 증권회사, 택시회사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병영상인 정신을 발휘했다. 또 아남그룹을 창업한 김향수의 경우 서울에서 구멍가게에서부터 시작해 아남그룹이라는 거대 기업을 일궈냈으며, 대선제분 창업주 박세정은 강진과 장흥에서 어릴 적부터 부친과 행상을 하면서 상업을 배워 중견기업을 키워냈다. 병상(兵商)의 정신을 계승하면서 경영일선에 있는 동원그룹 창업주 김재철 회장은 수산대학 졸업 전에 원양어업 실습선에 올라 10여년을 선원과 선장생활을 한 후 동원산업을 창업, 지금은 동원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웠다. 중소 병영상인들도 전국에서 상권을 형성했다. 연구에서는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활동 중인 병영상인 20여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상업 활동 과정을 파악한 결과 병영상인 정신이라는 공통의 철학과 사상을 승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병영상인에 대한 문헌연구와 각종 자료 분석, 인터뷰 등을 통해 확인된 병영상인 상인정신은 ①도전정신(Challenge) ②신용제일주의(Credibility) ③상생주의(Win-Win) ④근검절약과 겸손(Saving & Humility) 4가지로 요약됐다. 첫째, 병상(兵商)의 무기는 도전정신이었다. 병상은 상업을 시작할 때 밑바닥 생활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직 장사의 기본을 배운다는 신념으로 상업을 시작했다. 창업에 두려움이 없었던 셈이다. 이 같은 장사 입문 방식은 훗날 사업을 키우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무기가 됐다. 병상(兵商)은 나이와 시기에 상관없이 일정한 판단이 서면 새로운 사업에 적극 뛰어 들었다. 57세의 나이에 반도체사업에 진출하는 것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고, 1. 2차 오일쇼크 때 사업을 확장한 것도 망설임이 없었다. 사업을 시작할 때 두려움 없이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것도 병상(兵商)의 특징이었다. 병상(兵商)은 늘 정면 승부를 택했다. 둘째, 병상(兵商)의 생명은 신용이었다. 상인이 신용을 잃으면 목숨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용을 지켜야 할 일이 있으면 목숨을 걸었다. 대외적인 신용뿐 아니라 내부적인 신용도 중시해 신뢰경영이 가능했다. 병상들은 한번 맺은 인연은 끝까지 갔다. 신용도 자본이라는 확신도 분명했다. 병상의 신뢰관계는 후대에 승계되는 모습도 뚜렷했다. 셋째, 병상(兵商)의 상식은 상생이었다. 장사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다. 자신이 잘 되려면 상대방도 성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 속 깊이 알고 있었다. 상생은 함께 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회사 인력이 다른 곳으로 스카우트 돼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함부로 근로자를 정리해고하지 않았다. 공유가치경영도 일찌감치 선보였다. 지방거래처에 직접 투자해서 안정적인 경영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지방거래처가 본사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길도 터주었다. 상생을 위해서는 인재육성이 중요하다고 보고 육영사업에 적극 나선 것도 병상(兵商)의 상인정신이었다 넷째, 병상(兵商)의 기본은 근검절약과 겸손함이었다. 근검절약은 생활 속에서 이뤄졌다. 병상(兵商)은 ‘재물을 모으는 것은 절약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까지 자기 땅만 밟고 갔다는 부자도 장손의 버스비조차 함부로 주지 않았다. 병상(兵商)은 부모님으로 물려받은 근검절약 정신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병상(兵商)은 주변 관리를 잘 했다. 자식교육도 철저히 시켰다. 병상(兵商)은 상업을 하면서 밑바닥에서부터 고생을 했기 때문에 늘 겸손했다. 상대방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알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았다. 연구의 학문적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경영사학적 접근방법을 통해 병영상인의 상인정신을 도출하고 이를 현대의 기업경영에 응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둘째,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던 병상(兵商)의 상인정신을 문헌고찰과 실존 상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분석함으로서 병상의 역사와 상인정신이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확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셋째, 병상(兵商)의 역사적 재조명을 통해 병상(兵商)이 松商(개성상인), 灣商(의주상인), 京商(경강상인), 萊商(동래상인)과 함께 우리나라의 5대 전통상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였다. 연구의 실무적인 의의는 한국 기업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전통상인 병상(兵商)의 상인정신을 통해 한국적 문제해결 방식을 찾아보았다는데 의미가 있다. 1천년 역사 속에서 교훈을 축적해 온 병상(兵商)의 상인정신은 오늘날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기업들에게 ‘이렇게 하면 살 수 있다’는 강력한 경영술을 제시하고 있다. ,韩语论文题目,韩语毕业论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