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대하소설은 대중소설의 양식 안에 대중과 소통하는 이병주만의 개성있는 서사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했다. 본고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병주의 대하소설 &... 이병주 대하소설은 대중소설의 양식 안에 대중과 소통하는 이병주만의 개성있는 서사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했다. 본고에서는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이병주의 대하소설 바람과 구름과 비(碑), 지리산, 행복어사전에 나타난 대중성을 연구하였다. 바람과 구름과 비에 나타난 대중성은 ‘향유’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1970년대 역사소설에 대한 대중의 기대지평은 재미있으면서도 계몽적인 것이었다. 이 소설은 태생적 측면에서 비범함을 지닌 영웅형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이 펼치는 무협, 의적, 여성편력 등의 활약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토포스적 형상화는 현실도피의 측면에서 대중적 향유의 요소가 되었다. 또한 이 소설은 대중소설의 서사관습을 활용하면서도 개성있는 성격을 부여하거나, 회당 분절되는 신문연재소설의 특성을 살린 서스펜스를 활용하여 소설적 재미를 배가시켰다. 이병주는 조선 멸망의 원인을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기대지평을 갖고 계몽적 서사전략을 활용했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한시(漢詩), 가야금, 판소리, 시조창에 대한 묘사는 대중들이 상상적으로나마 문화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역사 지식, 문화 ․ 예술과 같은 교양의 향유는 이병주 문학의 특징이기도 하면서, 70년대 대중의 교양에 대한 욕구와 맞물리며 대중성의 요인이 되었다. 지리산에 나타난 대중성은 ‘공감’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공감은 정신적이며 지적인 가치판단을 전제로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일제 식민지, 전쟁, 좌 ․ 우익의 대립, 분단 등의 역사적 비극은 독자들도 공유하는 역사적 트라우마이다. 소설을 통해 독자는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는 새로운 경험을 함으로써,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각자의 자기서사를 보충하고 통합하는 문학적 치유에 이르게 된다. 이 소설은 박태영과 이규의 성장서사로 구성되었는데, 성장서사는 성장주체들이 자아와 세계와의 대립에서 어떻게 투쟁하고 극복하고 주체적 삶의 의지를 확립하게 되는지를 제시함으로써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소설 속 공간인 지리산은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인 황폐한 비극의 현장이다. 그러나 인간이 소멸시킨 모든 생명체를 마법처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지리산으로 표상되는 자연, 결국 생명 그 자체라는 점에서 생명존중의 가치로 귀결된다. 이는 질서와 안정의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는 대중들의 기대지평을 반영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하는 요소가 되었다. 행복어사전에 나타난 대중성은 ‘정서구조’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정서구조는 특정 시기에 떠오른 문화에 대해 갖는 대중의 정서를 의미한다. 이 소설은 70년대 산업화로 인한 경제성장의 뒤편에 감추어졌던 각종 사회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한다. 주인공 서재필은 현실인식에 있어서는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지만, 현실 대응에 있어서는 소시민적인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 서재필의 이런 양가적 속성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어느 쪽을 택하던 큰 희생을 치러야 했던 대중들의 정서구조를 반영한다. 이 소설에서 서재필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여성들은 서로 질투하지 않고 서재필만을 갈망한다. 또한 서재필과 여성들의 관계는 친구, 부부, 플라토닉연애, 육체적 쾌락의 유형으로 나누어져, 각 유형에 속하는 여성들은 모두 그 역할에 딱 맞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특히 육체적 쾌락 관계에 있는 여성들은 모두 윤락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들 여성들의 만남에는 항상 우연성이 작용한다. 이렇듯 소설 속에서 서재필이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남성의 판타지적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 소설의 에로티즘은 70년대 한국 사회에서 대중들이 직면했던 각종 사회적 금기에 대한 정서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소설은 70년대 한국 사회의 문화 혼종화 현상에 대한 대중들의 혼란스러운 정서구조를 반영하고 있다. 서재필은 서양 문화를 한국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인식하고 모방함으로써 문화인이 되었다고 자부한다. 한편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하여 서양문화자체의 질이나 대중의 서양문화추수현상을 비판하고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소설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서재필은 문화 혼종의 역할을 담당하는 번역가일 뿐, 끝내 자신의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데, 이는 70년대 한국 사회의 문화 혼종이 주체적 전유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음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다양하게 구현되는 이병주 소설의 대중성은 당대의 독자와 소통하는 이병주만의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문학에서 역사성과 대중성을 함께 시도하고자 한 작가였다. 역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계몽적으로 흐르고, 대중성을 강조하다보면 통속적으로 흐르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시도가 성공적이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점차 고급과 통속의 경계가 무화되고 있는 현 시점의 문학적 경향을 고려해볼 때, 1970년대 이병주가 시도했던 문학의 대중성은 문학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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