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한국 현대시론의 형성 과정 연구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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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한국 현대시론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 비평사적 고찰이다. 한국문학사에서 근대적인 시론의 등장은 1910년대, 나아가서는 그 이전까지로 소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한국 현대시론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 비평사적 고찰이다. 한국문학사에서 근대적인 시론의 등장은 1910년대, 나아가서는 그 이전까지로 소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는 해방을 기준으로 하여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역사학계의 일반적 관점을 채택하여 시대를 구분하고 그 가운데서도 해방기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이루어진 시에 관한 담론을 한국 현대시론의 ‘형성’과 관련하여 중점적으로 고찰했다. 이 시기의 시론이 한국 현대시론의 ‘형성’에서 독자적인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담론의 형성과 변환이라는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곧 해방과 남한 단정 수립, 한국전쟁, 4월 혁명이라는 연속되는 역사적 격변 속에서 시에 관한 담론 역시 끊임없이 부침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기에 좌우익 문인들 사이에 펼쳐진 치열한 문학논쟁을 필두로 하여 문학의 전통을 수립하기 위한 이론적 노력과 계파적 활동, 전쟁기의 선전문학과 순수문학의 갈등, 전쟁의 혼란 속에서 대두된 모더니즘론과 전후 원조경제의 후광을 입고 수입된 분석비평의 조류, 양차대전의 참상 속에서 진전된 실존주의문학 등이 혼류를 이룬 것이 이 시기 문학인들이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의 시론이 시대상과 결부된 혼돈만을 빚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좌우의 문학논쟁 속에서도 문학의 본질을 탐색하여 전통을 수립하고자 하는 이론비평과 실천비평이 지속되고 있었고, 전쟁기에도 순수문학의 의의를 보전하고자 하는 모색이 있었으며, 구미의 문학사조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조류의 혼입 속에서도 시적 담론을 체계화하고 심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경주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각 시기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데 일차적인 의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대응은 점차 문학 본연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차원으로 확대되어 나아갔다. 문학의 정전들을 확보하고 문학교육의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며, 작품을 좀 더 면밀히 살피기 위한 수단이 다방면으로 강구되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양상은 문학의 자율적 기능에 말미암은 것만은 아니었다. 전쟁으로부터 일상으로 복귀한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문학에 대한 자연스러운 기대가 여러 차원에서 다각적으로 작용하여 내는 응집된 힘의 효과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4월 혁명은 하나의 시대를 획하는 의미가 있다. 혁명을 전후로 하여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문학작품들은 그 동안 문학 속에서 내연하고 있던 여러 사회적 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해방기부터 분석비평이 시적 담론의 주류로 자리 잡은 1950년대 후반까지를 한국 현대시론이 형성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에 말미암는다. 4월 혁명 이후의 시론은 분석비평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포착한 한국 현대시론 형성의 과정을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세부적으로 고찰했다. 첫째 해방기의 시론은 시문학파, 청록파로 이어지는 순수문학의 전통을 한국문학의 정통으로 확립하고자 하는 시도로 점철된다. 이 시기의 시론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할 사항은 조지훈의 「시의 본질」이 저술되었다는 점이다. 「시의 본질」은 저자가 그 동안 발표했던 평론들을 손보아 엮은 것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다른 시론과 확연히 다른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글 제목에 나타난 것처럼 시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고찰한 이론에 속할 뿐 아니라 한국문학의 전통을 수립하기 위한 모색을 나타내고 있다. 저자가 뒷날에 이 글을 좀 더 발전시킨 새로운 저작을 내면서 거기에 ��시의 원리��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책이 보편성을 지닌 이론임을 표방하는 일에 해당한다. 곧 보편적 이론이면서 한국문학의 전통에 입각한 저작임을 주장하는 셈인데, 그것이 ‘전통에 입각’한다는 사실은 ��시의 원리��가 동양 전통의 유기체 시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조지훈은 자신의 저작에 의해 시문학파로 대표되는 순수시를 옹호할 뿐만 아니라 순수시론을 일종의 정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조지훈의 시론에 상응하는 역할을 실제비평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람은 서정주이다. 서정주의 시론은 정지용, 김소월, 김영랑 등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면서 언어적 민족주의와 한국적 입상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곧 김소월, 이상화의 시가 조선적 언어에 대한 자각이라는 측면에서 정지용, 김영랑의 시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정지용과 김영랑의 시를 감각과 정서의 차이로 구분하여 김영랑의 시가 한국적 입상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활동과 함께 서정주는 전통의 수립이라는 관점에서 시의 정전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서정주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시점에서 정전의 확정 문제가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음을 인지하고, 정전의 가치와 의미를 구현하기 위해 시선집 등을 편찬한다. 또한 신인 추천에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함으로써 전통의 수립에 기여하고자 한다. 둘째로, 전쟁기의 시론이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시론은 발표 기회 자체가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문학인들은 제각기 살길을 찾아 흩어졌고 발표 지면 또한 거의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시론의 명맥을 유지해 나아간 것은 종군문인의 활동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종군문인에게 공적으로 요구된 것은 선전선동문학이었다. 이 요구는 순수문학의 지향과 대척되는 지점에 놓인다.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문인들이 선전선동문학을 수행해야 하는 모순 속에서 공군 종군문인단에 속했던 박목월, 조지훈은 전쟁 이듬해 ��시문학�� 속간호를 낸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순수문학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조지훈의 경우 전쟁 시기의 감성에 맞게끔 비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포에지를 형상화해야 한다는 관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문학인들의 활동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던 전쟁기의 특이한 현상은 외국문학의 유입이 지속되고 확대되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 주둔한 미군 부대에서 유출된 도서가 그 원천이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한국에 대한 문화적 기획을 강화한 미국의 외교정책도 일조를 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해서 주목할 점은 다양한 형태의 모더니즘론이 대두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서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엘리엇의 ��황무지��는 제목이 시사하는 상징적인 내용과 작품 자체의 기법이 지닌 신선함으로 인해 가장 주목을 끌었고, 2차 대전 전후의 상황을 배경으로 서구에서 각광을 받았던 실존주의 또한 유사한 체험을 현실에서 겪고 있는 한국인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전쟁기에 대두된 모더니즘론이 전통 부정과 긴밀히 연결되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이 착근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성찰에서 모더니즘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현대성에 대한 막연한 동경, 과거를 부정하는 정신, 계몽을 통한 저항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셋째로 휴전협상의 조인으로 한국사회가 정전체제가 된 1954년 이후의 시론이다. 전쟁이 중단된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었다. 문학에서도 서울에 중앙문단이 체제를 갖추고 각종 문예지의 창간으로 발표 지면이 마련된 뒤에야 시에 대한 담론이 하나둘씩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제일 먼저 문학인 공통의 화제가 된 사안은 현대성의 지각문제였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와 새롭게 들어오는 외래문물을 마주치게 된 문학인들은 현대성에 대한 다양한 태도를 갖게 된다. 그렇지만 낯선 세계에 대해서 전통의 단절을 말하는 것이나 기존의 서정시와 모더니즘시를 구분하여 보는 관점은 겉모양만 다를 뿐 내면적으로는 다 같이 현대성에 대한 지각과 관련되는 사항이었다. 여기에 겹친 것이 신세대의 등장이다. 일종의 타자라고 할 수 있는 신세대의 등장은 문학에서 전통과 현대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세밀히 들여다보게끔 이끌었고 문단의 구성을 다채롭게 만들었다. 곧 지성을 강조하면서 모더니즘 시를 추구하는 세대와 전통시의 순수서정을 옹호하는 세대 사이에 어색한 공존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이와 같은 상태는 자연히 시적 담론의 방법에 대한 관심을 야기했다. 동일한 작품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상태를 지양하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담론을 펼쳐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 무렵 예술로서의 비평이나 과학적 비평 방법이 운위된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평방법에 대한 관심은 한국문학의 영토 속에서 자생한 것이라기보다 원조물자와 함께 물을 건너온 박래품이라는 성격이 더 강하다. 미국의 신비평이 이미 문단 일각에서 소개되고 있었고 리듬, 이미지, 은유 등에 대한 세밀한 논의가 문학 장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비평방법의 새로운 도입은 문학인들 사이에서만 교환되는 사치품이 아니었다. 문학에 대한 교육 속에 은밀히 숨어들었고, 시인론, 작품론 등에서 두루 용도를 지닌 것이 되었다. 해방기에 문학의 전통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수공업적인 것이었다면 신비평은 문학에 대한 기본 관점에서부터 시인과 작품의 미세한 사항의 이해에까지 광범한 영향을 미치는 대량생산품으로서 제도화되었다. 이상에서 살핀 세 시기의 시론은 한국 현대시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는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한국문학의 전통을 수립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시도되었던 이론적 비평적 노력이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혼란의 틈바귀에서 싹튼 모더니즘론이 분석비평과 함께 한국문학에 온전히 정착하기까지 어떤 도정을 거쳤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형성기의 시론은 그 이후 한국 시론의 전개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문학 담론과 사회제도 속에 유력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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