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 사회의 '太歲' 관념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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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고대 한국에서 태세 관념이 어떻게 수용되고 활용되었는가를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태세/간지'의 기년방식에는 다만 기년을 위한 방편뿐만 아니라 점성 및 신지의 관념이 그대로 ...

본고는 고대 한국에서 태세 관념이 어떻게 수용되고 활용되었는가를 분석한 것이다. 그 결과 '태세/간지'의 기년방식에는 다만 기년을 위한 방편뿐만 아니라 점성 및 신지의 관념이 그대로 녹아있다는 것을 밝혔다. 고고발굴에 의하면 고구려와 백제에서 태세를 활용한 단편적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이와 같은 태세 관련 실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문헌 사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발굴된 명문들에는 종종 ‘태세/간지’의 기년방식이 표기되어 있다. 춘추전국시기부터 태세는 점성ㆍ기년ㆍ신앙의 요소로 활용되었으므로, 이를 토대로 고대 한국 사회의 ‘태세/간지’ 표기방식이 지닌 당시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삼국의 태세 관념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동시에 이것은 삼국을 통해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태세는 최종적으로는 기년 표기 방식으로 발전되어 동아시아의 보편적 시간질서의 한 패턴 형성에 공헌했다. 아울러 고대 삼국에서 쓰인 태세 표기 양식에는 고대 중국의 태세 관념까지 흡수되어 있었음을 실증할 수 있었다. 태세는 춘추전국시기 이래로 그것의 방위를 관측하여 농업과 관련된 가뭄이나 장마 및 출병 여부 등을 점치는 점성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漢代에 와서는 태세를 빌미로 점치는 현상이 과도하게 유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택을 짓거나 이사나 婚娶 등을 포함해 여러 방면에서 모두 태세의 방위를 염두에 두고, 해당 방향을 피해야 한다는 설들이 범람했다. 또한 태세는 12진의 운행 방향에 착안한 기년법으로 발전하였다. 곧, 태세의 방위는 10간과 12지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조합되어 태세기년법으로 이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세는 외경의 대상 가운데 하나가 되어 신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중국 고대의 태세 관념은 고대 삼국에도 순차적으로 수용 및 활용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고구려는 주로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한 이후 그 지역들을 지배하고 경영하는 가운데 중국으로부터 한자 문화의 보급과 함께 태세 관념이 전해졌다고 본다. 백제가 태세를 수용한 것은 중국 남조와의 활발한 교류에서 비롯되었다. 아울러 낙랑군이나 대방군 지역과의 교류 측면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신라의 태세 사용은 고구려나 백제와의 교섭에서 비롯했으나, 뒷날 唐과의 접촉이 깊어질수록 신라의 태세 운용은 특히 역일 분야에서 두드러졌던 것으로 보인다. 9세기 산동의 신라원에서 사용되었던 역일을 일본이 적어간 것은 그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즉 신라는 삼국을 병합한 후 당과의 활발한 교류 하에 본격적으로 曆日에 태세 관련 사항을 담아냈다고 생각된다. 고구려와 백제에서 발굴된 유물의 태세 관련 명문은 모두 ‘태세/간지’ 표기로 활용되었는데, 발굴된 장소로 보아 최소한 당시 왕실ㆍ귀족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관념이 유포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은 擇吉과 관련된 것으로, 지상의 행사가 태세의 운행의 영향을 받는다고 믿었던 것이며, 재앙을 불러오지 않도록 태세의 방위를 관측하여 점을 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무덤을 조영할 때 쓰이는 벽돌이나 와당에 태세가 활용되었다. 즉 땅을 파서 공사를 진행할 때나 건조물을 만들 때 태세의 방위를 살펴 정했다. 재앙을 해소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태세 관련 명문을 통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백제의 태세 활용에 대한 검토는 구체적으로 능산리 사원의 준공과 창왕명사리감 공양을 함께 아울러서 살펴보았다. 능산리 사원은 성왕시대부터 사용된 건축이며, 위덕왕대에는 이를 증축하거나 수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증축 공사가 완공될 즈음에 解土하는 행위로서 사리 공양 제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昌王銘石造舍利龕에 새겨진 “百濟昌王十三季太歲在丁亥 妹兄公主供養舍利”라는 명문을 주목한다. 백제 昌王 13년 태세가 丁亥에 있다는 의미이므로 이 해는 丁亥年이다. 이때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 필자는 이 명문에 나타난 태세는 능산리 사원의 토목공사 준공[解土]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땅을 파서 공사를 일으키면 세월의 침해를 받는데, 그것은 태세의 방위와 연관되어 있다. 고대인들은 침해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解除法 즉 해소하여 제거하는 방법 또는 술수를 믿고 있었다. 그들은 해제법을 쓰면 흉을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해제법의 첫 번째 儀式(禮)은 바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토목공사 때 동원된 해제법은, 공사를 끝내고서 토지에 대해 잘못을 빌고 제사를 지내 재앙을 해소하는 解土術이다. 이 때문에 그들은 의식을 통해 흉을 제거하고 神煞에 답례하였던 것이다. 즉 창왕명사리감의 태세 사용은 기년 표기와 함께 능산리 사원 공사에 대한 解除法의 의도까지 함께 담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解除法은 여러 면에서 사용되었겠지만, 산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이나 죽은 자가 묻히는 무덤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었다. 다시 말하면, 흙을 파서 공사를 일으키는 경우에는 해제법을 써서 趨吉避凶했던 것이다. 이처럼 고구려나 백제는 태세의 방위를 관측해 흉을 제거하고 길을 택하는 태세 관념이 존재했다. 이러한 것들은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천문과 역법의 발달과 함께 연동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와 함께 태세 관련 술수도 결부되어 있었음을 추측케 한다. 唐代에 들어서면, 태세가 曆日의 체계에 내재되어 시간 질서에 편성된다. 신라의 태세 활용은 당 역일의 영향을 받았다. 역일에서 태세는 한 해의 年神方位뿐만 아니라, 九宮圖와 함께 그려져 있다. 이는 태세가 구궁도와 함께 신라를 이은 고려뿐만 아니라 조선의 역일에 계승되어 사용되었던 증좌이다. 동아시아 전통 역일에 이와 같은 형식은 거의 동일하였다. 따라서 曆의 관점에서 동아시아는 같은 범주에서 시간 질서를 인식했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삼국의 '태세/간지'의 표기 내막은 오랜 기간 신성시되었던 태세 관념이 잠재되어 있다가 차츰 양식화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곧, 점성ㆍ신지의 성격을 지녔던 태세는 주기성[60甲子]와 맞물려 기년 형식으로 압축되어 시간 질서를 이끌었다. '태세/간지'의 표기에는 당연히 고대의 태세 관념이 잠재되어 있었던 것이며, 통일기 신라의 역일에도 그대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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