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은 구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라는 문화 세속화 경향을 배경으로 18세기 중엽 독일의 합리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에게서 학문으로서의 이름을 얻었다. 한국에서의 미학 유입은 일제강...
미학은 구체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라는 문화 세속화 경향을 배경으로 18세기 중엽 독일의 합리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에게서 학문으로서의 이름을 얻었다. 한국에서의 미학 유입은 일제강점기 일제 문화정책의 하나로 일본의 학제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서구를 철저히 학습함으로써 근대국가를 이루려던 일본의 미학 경향을 답습했다.
광복 이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비롯하여 각 대학과 대학원에서 본격적인 미학 교육이 시작되었고, 한국미학회 한국미학예술학회 한국민족미학회를 중심으로 학회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특히 서양의 선진 미학이론을 국내에 널리 소개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의 미학’은 분명한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미학’을 정립하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이 같은 연구 성과를 이어받아 미학과 관련하여 가장 논의가 활발했던 논쟁적이고 문제적인 논점을 중심으로 한국미학의 이론 체계화를 시도했다. 한국미학의 다섯 주요 쟁점인 ‘미학의 착종’, ‘한국미론’, ‘멋론’, ‘한국적 미의식’, ‘한국예술학의 양상’을 차례로 고찰함으로써 ‘한국미학의 정립과 이론 체계’를 모색했다.
한국미학의 정립은 한국미학 이론 체계의 구축에 다름 아니다. 한국미학은 한국미학에 관한 역사적 연구인 한국미학사와 한국미학에 관한 이론적 연구인 한국미학이론을 통해 학적 체계를 갖춘다.
한국미학사는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고유한 미학사상과 미의식, 미적 특성을 시대별로 살피는 것으로 연구 범위를 설정할 수 있다. 한국미학이론은 감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미와 예술을 연구하는 미학의 학문적 성격으로 볼 때 한국미론, 한국예술론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미학의 주요 쟁점’에서 다룬 ‘한국미론’, ‘멋론’, ‘한국적 미의식’이 한국미론에 해당한다면, ‘한국예술학의 양상’은 한국예술론에 해당한다.
본고에서는 한국미학의 주요 쟁점들의 연장선에서 로컬미학론을 제시했다. 먼저 로컬에 적용할 수 있는 미의 유형으로 자연미, 예술미, 인간미, 도시미, 생활미를 설정하고, 개념 규정에 나섰다. 로컬리티가 가장 잘 드러나는 로컬미는 로컬의 자연미, 예술미, 인간미, 도시미, 생활미라는 다섯 가지 미의 유형을 바탕으로 추출할 수 있으며, 로컬미는 한정된 미적 범주보다는 미적 질 혹은 미적 개념으로 나타난다는 전제 아래 가설적 - 시론적 성격의 로컬미학론을 전개했다.
로컬인의 미적 삶의 문제를 연구하는 로컬미학은 로컬인의 미학사상과 미적 특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로컬미학사와 이론적 연구인 로컬미학이론을 통해 학적 체계를 갖춘다. 로컬미학이론은 로컬미론과 로컬예술론으로 나뉜다.
로컬미학론은 부산에 구체적으로 적용돼 부산미학이라는 모습을 드러냈다. 부산미학은 1876년 개항으로부터 광복까지 70년, 광복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또 다른 70주년, 그리하여 모두 140년의 세월에 주목했다. 이 기간을 중심에 놓고 부산의 자연미, 예술미, 인간미, 도시미, 생활미를 각각 살폈다.
모든 것이 화(化)하고 통(通)하는 부산에서는 화통(化通)이 부산미의 정점이자 벼리의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폭풍이 불고 성난 바다가 있는 변방의 땅끝 부산의 자연과 그곳을 살아가는 야성의 부산인에게서 발견되는 화통은 부산의 대표적 미의식이자, 부산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산미다. 화통은 숭고미, 대인의식, 변방의식(혹은 땅끝 의식), 야성 등의 미적 질 혹은 미적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
화통의 부산미는 부산의 미적 특성인 ‘혼종성’, ‘역동성’, ‘저항성’, ‘단발성’을 낳는 모태가 된다. 혼종성은 부산의 ‘잡것들의 문화’에서 비롯되어 ‘한솥밥(melting pot)’ 정신을 길렀다. 역동성은 ‘우리가 남이가’를 거쳐 ‘다이내믹 부산’으로 분출됐다. 저항성은 야도의 뿌리가 되었고, 단발성은 마침내 소멸하고 마는 슬픈 정조의 바탕이 되었다.
화통의 부산미에서 첫 번째로 혼종성이 미적 성질로 떠오른 것은 오래된 부산의 ‘잡것들의 문화’로부터 비롯되었다. 글로컬 시대를 맞아 유연한 포용성과 다양성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혼종성은 이중성, 착종성, 왜색성, 잡연성, 이질감, 낯설게 하기, 개방성, 포용성, 유동성, 다양성, 다문화 등의 미적 질 혹은 미적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
화통의 부산미에서 두 번째로 역동성이 미적 성질로 떠오른 것은 이질적인 것을 한데 녹이는 부산의 열정에 힘입었다. 나아가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미래를 부산이 꿈꾸는 데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역동성은 ‘우리가 남이가’, 의리, 다이내믹, 진취성, 휘몰이 정신, ‘화끈하다’, 실질성, ‘떠도는’, 자유정신, 모험성, 진보성, 선구자 정신 등의 미적 질 혹은 미적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
화통의 부산미에서 세 번째로 저항성이 미적 성질로 떠오른 것은 화통과 같은 뿌리를 갖는 상반된 미감이기 때문이다. 저항성은 ‘저항적이다’, ‘거칠다’, ‘터프하다’, ‘시끄럽다’, 변방성, 민중성,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록, 인디 음악, 청년문화 등과 같은 다양한 미적 질 혹은 미적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
화통의 부산미에서 네 번째로 단발성이 미적 성질로 떠오른 것은 혼종성, 역동성, 저항성과 함께 화통의 부산미를 구성하면서 이들 미적 특성이 순환하는 고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멸을 전제로 한 단발성은 부산인에게 있어 슬픈 정조의 바탕이 된다. 하지만 슬픔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감, 애상, 엘레지 등과는 변별점을 가진다. 슬픔을 딛고 툴툴 일어서는 성숙한 감성을 보인다.
혼종성, 역동성, 저항성, 단발성을 아우르는 화통의 부산미는 그동안 한국미학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던 미적 특성이라는 점에서 한국미학이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한국 제2의 도시인 부산의 미적 특성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한국미학은 온전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국미학의 정초를 위한 새로운 연구가 요망된다. 마찬가지 이유로 부산을 제외한 다른 로컬의 로컬미까지 제대로 반영될 때 한국미의 규명은 물론이고 한국미학 또한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미학은 한국인의 미적 삶의 문제, 로컬미학은 로컬인의 미적 삶의 문제를 연구 대상으로 하면서 미학은 구체성을 띤 학문이 된다. 특히 ‘지금, 여기’를 강조하는 로컬의 미학은 자신이 터 잡고 살아가는 삶의 현장 미학이라는 점에서 특수하고 구체적이며 생동감 있는 학문이 된다.
나아가 로컬이 관계적 개념이라는 데 주목한다면 로컬미학은 다양한 층위를 지닌다. 근대의 산물인 국가라는 체제 안에 여러 지방이나 지역을 로컬이라 한다면, 동아시아와 같은 세계 속의 여러 지역이나 한국이나 한민족 같은 개별 국가와 민족도 로컬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컬미학은 지방이나 지역의 틀을 넘어 국가나 민족, 나아가 세계를 구성하는 지역 단위로까지 점차 영역을 확대하면서 ‘지금, 여기’의 미학을 설명하는 하나의 틀이 될 수 있다.
로컬미학론은 미학 이론의 체계적인 그물망을 잡아당겨 오므렸다 폈다 하는 벼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지금, 여기’의 여러 층위에 걸친 미적 삶의 문제를 철학적·과학적으로 사유하고 연구하며 응용하는 데 있어 일목요연한 잣대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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