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 후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거문고 연주법의 시대별 변천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전통음악 창작원리의 시각에서 시대적 배경과 음악적 변화양상간의 상관관계를 고찰하였다. 이...
본 논문은 조선 후기 이후부터 현재까지 거문고 연주법의 시대별 변천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전통음악 창작원리의 시각에서 시대적 배경과 음악적 변화양상간의 상관관계를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16세기부터 현재까지의 금보(琴譜) 중 만·중·삭대엽을 선택하여 각 악보에 나타나는 연주 기법을 시대별, 악곡별 측면에서 비교, 분석하였다.
16세기에서 20세기까지의 시대별 대표적인 금보에는 7종의 개방현주법과 31종의 왼손 기법을 합쳐 총 39종의 기법이 수록되어 있다. 16세기에는 14종의 연주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후 17~18세기에는 새로 등장한 기법만 무려 25종으로 이전부터 사용되던 기법과 합치면 총 34종에 이르러 이 시기가 거문고 연주법의 전성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19~20세기에는 15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시대별 연주 기법을 만·중·삭대엽을 통해 살펴본 결과, 중대엽이 나타기 전, 즉 만대엽이 주로 연주되던 16세기의 악곡은 느리고 단순한 선율에 개방현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왼손 기법이 다양하지 않았다.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이 공존하던 17~18세기에는 16세기에 비하여 만대엽과 중대엽의 선율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중대엽에서 선율과 왼손 기법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개방현의 출현 빈도는 낮아졌다. 삭대엽의 경우, 왼손 기법의 변화는 중대엽보다 현저히 적고 선율 중심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이는 느린 중대엽에 비해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른 삭대엽에서 왼손 기법의 활용성이 줄어든 것이라 여겨진다.
17~18세기에는 현재의 정악에 비해 훨씬 적극적으로 농현을 사용하였다. 농현의 종류도 16~17세기에는 2~3종이던 것이 18세기 악보부터 여러 종류의 농현들이 등장, 『한금신보』와 『신작금보』에 이르러서는 농현의 종류가 14종에 이르고, 이와 함께 우렛소리와 농현을 합친 왼손 기법들, 다양한 퇴성이나 추성, 전성 등의 기법들이 다양하게 쓰였다.
역안법(力按法)과 왼손 기법의 발달로 인해 개방현의 활용빈도가 달라졌다. 16~18세기 금보의 만대엽과 중대엽에서 후대로 갈수록 출현음수는 많아지는데 개방현의 빈도는 낮아짐을 알 수 있었다. 경안법(輕按法)에서는 현을 운용하는 다양한 왼손 주법이 용이하지 않으므로 개방현을 많이 사용하여 음악을 장식하던 것이, 역안법이 자리 잡고 다양한 농현, 요성들로 선율을 장식하게 되면서 개방현은 현재와 같이 주선율인 선율현의 연주를 도와 강약 조절, 시작과 종지 및 음향을 풍성하게 하는 데 쓰이게 되었을 것이다.
악구의 종지에 쓰이는 개방현이 시대마다 다르게 변하였다. 문현(文絃)을 사용한 주법으로 선율을 시작하는 것은 시대별로 동일하지만 종지는 다르게 변화한다. 만대엽이 성행하던 16세기는 개청법(皆淸法)이 악구의 종지역할을 하였으나 이후 만대엽, 중대엽, 삭대엽이 공존하던 시기인 17~18세기에는 개청법과, 문현이 혼용되어 종지에 쓰였다. 또한 중대엽에서 삭대엽으로 넘어가는 19세기에는 개청법은 사라지고 악구의 시작에는 문현이, 종지는 청(淸)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시대별로 동일 악곡의 선율이 늘어나는 과정을 살펴 본 결과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변주되고 있었다. 하나는 같은 음을 2회~4회 반복하는 동음반복이고 또 하나는 한 음 위· 한음 아래 음을 순차적으로 추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이 대엽류 음악에만 해당하는 것인지 아니면 금보 내 전체 악곡에 해당하는가 하는 문제는 별도의 확인이 필요한 과제이다.
이상과 같이 조선후기 거문고 연주법의 변화양상을 살펴본 결과 17~18세기의 변화양상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었다. 이렇듯 17~18세기에 음악 내적인 변화로 인해 악곡이 화려해진 이유는 역안법의 정착과, 삭대엽이 성행하기 시작한 것, 사회 전반적인 경제력의 향상 및 예술 향유층과 후원자들의 등장으로 인한 문화예술의 융성기였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기 중대엽은 인격도야를 위한 예도적 음악을 추구하여 느린 가운데 왼손 여음의 운용을 중심으로 연주하였고, 다양한 조의 중대엽이 생겨나 선율이 더욱 복잡해지면서 선율을 장식하는 왼손기법이 다양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추정된다. 같은 시기 성행한 삭대엽은 중인들의 풍류방 음악 참여가 활발해 지고 시장경제논리에 의거하여 예도적 음악이 아닌 즐기는 음악으로 변화되면서, 왼손 운용 중심의 느린 음악이 아닌 빠르고 단순한 선율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삭대엽이라는 새로운 경향의 곡이 나타나 성행함과 동시에 중대엽이 서서히 사라졌고 17~18세기에 쓰였던 중대엽의 다양한 연주법도 전승되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거문고 음악의 전성기인 18세기에 악곡의 종류가 늘어난 것에만 주목해 왔는데 농·낙·편 등이 늘어나는 18세기 말 이전에는 연주법의 다변화를 통해 고도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세련된 음악으로 발전시켰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후 파생곡이 생기면서 만·중·삭대엽에 쓰인 복잡 미묘한 수법을 활용한 연주보다는 새로운 악곡들을 연주하는 경향을 띠면서 수법은 점차 쇠퇴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18세기에는 새로운 악곡을 연주하는 방식보다는 기존 악곡의 선율을 세련되게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시대적 풍류의 수요에 대응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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