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종교공동체와 미디어의 관계 및 양자의 상호작용을 한국 초기 개신교 신문을 자료로 삼아 탐구했다. 먼저 한국 초기 개신교 신문이 자리 잡고 있는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 해당 신...
본 논문은 종교공동체와 미디어의 관계 및 양자의 상호작용을 한국 초기 개신교 신문을 자료로 삼아 탐구했다. 먼저 한국 초기 개신교 신문이 자리 잡고 있는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 해당 신문들이 독자들과 어떤 과정을 거쳐 상호작용을 했는지 에 대한 사례연구를 거친 후, 해당 상호작용을 분석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하는 순서로 논의를 전개했다. 대상 자료는 19세기 말 발행된 한국 최초의 개신교 신문이자 종교계 신문인 [죠선(대한)크리스도인회보(The Christian Advocate)]와 [그리스도신문(The Christian News)]이었다.
19세기 말 한국의 개신교 공동체는 북미에서 온 개신교 선교사라는 외부 세력에 의해 주간 신문을 비롯한 인쇄 매체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당대 한국 사회에서, 전국적 단위의 주간 정기간행물은 소개된 지 채 10여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매체였다. 개신교 공동체는 이러한 새로운 매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공동체의 결속과 고유의 상징체계를 다져 나갔다. 초기 한국 개신교 공동체가 이용한 신문 매체는 단순 정보의 전달 통로를 넘어, 정기적으로 신문을 읽고 여기에 참여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종교적 상징체계 유지 및 강화에 기여하는 종교적 실천의 장이기도 했다. 이 명제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한 틀로써, 버거(Peter Berger) 등이 종교를 상징체계의 망으로 보았던 관점과, 커뮤니케이션이 단지 정보의 전파가 아니라 의례적 측면 역시 지님을 주장했던 캐리(James Carey)의 의견을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
이러한 고찰을 토대로 하여, 본 논문은 어떠한 배경과 경로를 거쳐 초기 개신교 신문이 한국 초기 개신교 공동체의 종교적 실천의 장으로서 역할을 했는지 밝혔다. 지금까지 한국 초기 개신교 공동체의 생활상과 사상을 ‘반영한다’고만 해석되어온 자료를, 미디어 수용 및 종교적 실천이라는 견지에서 재조명한다는 데에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이 작업을 위해서 먼저 한국 초기 개신교 신문의 발행 배경 및 기획 의도,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탐구했다(Ⅱ장). 이 과정에서, 한국 초기 개신교 신문은 18세기 이후 영미권의 개신교의 문서선교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한국에 파견된 북미 선교사들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더불어 영미권의 개신교 문서선교에서 7일 주기의 정기간행물은 안식일 주기와 겹쳐지고, 종교적 상징체계를 강화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이러한 7일 단위의 개신교 정기간행물이 한국에서 등장했을 때, 한국의 역사적이고 지역적인 변수들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당대 한국은 불안정한 지배 권력과 외세의 침탈 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국권을 보호하고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한 엘리트 계층의 개화사상이 성행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 때 서양인 선교사들은 개신교를 선진국의 개화된 종교로서 홍보하고, 한국인들을 ‘계몽’하기 위해 순 한글로 된 개신교 주간신문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한편 한국인들은 서양인 선교사들의 신문 발행과 선교 활동에 대해서 다양하고 능동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위와 같은 배경에서 배포된 초기 개신교 신문은 정기적으로 공동체의 상징체계를 유지 및 강화하는 데 역할을 했다. 따라서 역사적 배경에 대한 개괄 후, 본 논문에서는 공동체가 신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상징체계를 공유하고 유지해 나갔는지 정리하였다(Ⅲ장). 한국의 초기 개신교 신문 지면에서는 개신교적 교리 및 행위양식 규정을 통해 한국의 다른 집단과 구분되는 상징체계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며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한국 초기 개신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개신교의 기본적인 교리부터 구체적인 행동 양식, 그리고 모범적인 개신교 공동체의 예를 신문을 통해 접했다. 그 가운데 죽음과 영혼에 대한 인식, 금주 및 금연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었다. 한편 타 공동체와 개신교 공동체의 관계를 서술한 내러티브들이 신문에 실려 읽는 이들에게 개신교 공동체의 외연과 내연을 이해하고 정체성을 확고히 하도록 하기 위한 재료로서 제시되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이 단지 정보를 전파하는 기능만 지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게 해 주고 공동체의 결속에 기여하는 사회적 기능을 한다는 의례적 측면을 통해서 위 내용들을 분석할 수 있다. 즉, 반복적으로 초기 개신교 신문의 내용들이 개신교 공동체에게 개신교적 가치관에 대한 확신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Ⅳ장에서는 앞서 집중적으로 밝힌 개신교 신문의 역할을 염두에 두면서, 신문을 이용한 독자들의 참여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커뮤니케이션의 의례적 측면이 공동체의 상징체계를 구성원들에게 확인시키고 유지한다는 것이 기존의 논의를 충실히 따른 분석이었다면, 본 논문에서는 더 나아가 신문의 유통과 독서가 신문이라는 의사소통의 장에 참여하고자 동기화된 참여 주체 역시 생산하게 된다는 추가적인 분석을 시도했다. 신문을 읽은 독자들은 신문의 공동체의 상징체계는 물론 미디어 체계를 이해하고 습득하여 참여 가능성을 지닌 주체가 된다. 물론 신문을 읽은 모든 독자가 신문 체계에 다시 참여 가능한 주체로서 탈바꿈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부 독자들의 투고 및 모금행위가 신문지면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초기 개신교 신문과 관련된 독자들의 실천은 신문을 읽는 행동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신문에 대한 직접적 참여도 포함한다.
개신교 신문을 이용한 독자들의 실천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첫째는 신문을 집단적으로 독서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공 독서’이며, 둘째는 독자들의 흔적이 직접적으로 신문 속에서 드러나는 모금운동 혹은 독자 투고를 통해 일어나는 ‘직접적 참여’이다. ‘공공 독서’는 주기적 신문 읽기 자체에 의미를 둔 실천으로, 개인의 묵독 혹은 집단적인 독서를 통해 이루어졌다. 캐리의 커뮤니케이션의 의례 모델은 바로 이 ‘공공 독서’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 한편 독자들의 ‘직접적 참여’는 ‘공공 독서’를 통해 충분히 미디어 체계의 작동 방식을 습득한 이들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이 때는 신문과 독자 사이의 순환과정이 성립하는데, 특히 독자 투고 현상의 경우 신문에서 드러난 상징체계를 내면화하고 다시 문자매체를 통해 신문에 투고하여 수록함으로써 같은 상징체계 구성 및 유지에 참여하는 순환과정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는 Ⅲ장에서 예시로 든 개신교 공동체의 상징체계를 보여 주는 기사들 상당수가 독자의 투고(投稿)문 이라는 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 초기 개신교 신문에서는 ‘공공 독서’와 독자 투고로 대표되는 ‘직접적 참여’ 현상이 관찰된다.
신문이라는 새로운 매체는 효과적인 종교적 상징체계 전파의 도구였던 동시에, 개신교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종교적 실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본 논문은 초기 개신교 신문 속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종교적 실천들의 흔적을 종교학적 견지에서 분석함으로써, 미디어를 이용한 실천을 통해 종교적인 상징체계를 강화 및 유지하는 공동체의 구체적인 모습에 주목하고자 하였다. 근대적 매체의 초기단계인 신문과 개신교 공동체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해 본 논문이 제시한 기본적 구도는, 1910년대 이후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전개된 다양한 종교공동체의 미디어 이용을 분석할 수 있는 참고적인 틀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특히 본 구도는 미디어와 종교공동체의 상호작용이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종교적 실천에 지속적으로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개신교계 신문이라는 자료가 단지 분석의 대상이 되는 수많은 내용들의 나열이 아니라, 당대 개신교 공동체 구성원들의 실천의 일부로서 기능했던 물질적 매체라는 점을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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