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디음악의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 (2)[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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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국내 대중음악시장은 댄스, 발라드, 포크, 트로트,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하던 시기였으며, 당시 대중들은 비교적 여러 장르의 음악을 향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서태...

80년대 국내 대중음악시장은 댄스, 발라드, 포크, 트로트, 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공존하던 시기였으며, 당시 대중들은 비교적 여러 장르의 음악을 향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국내 음악시장의 흐름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은 랩(Rap)이라는 생소한 스타일을 댄스라는 장르와 접목시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음반제작으로 거대한 이윤을 남기는 선례를 만들었다.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던 80년대 음반의 소비층은 자연스럽게 10대로 이동되었고, 이른바 틴 팝(Teen Pop) 스타일의 폭발적인 증가와 서태지와 아이들을 표방한 아이돌 그룹이 쏟아져 나왔다. 90년대 중·후반부터 중대형 메이저 기획사들은 음반제작에 많은 자본을 투자하며 스타제작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고, 반대로 홍대 거리에서는 소자본에 의해 제작되는 자생적인 인디음악이 태동하였다. 인디음악의 태동은 막강한 자본에 의해 제작되는 주류음악과 기존의 제작시스템에 반(反)하는 비주류음악의 본격적인 분리를 의미한다. 주류음악은 미디어(Media)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음악시장을 장악하였고, 비주류음악은 클럽 또는 길거리 공연을 통해 자유로운 음악에 관대한 소비층을 확보하였다. 인디음악은 주류음악의 제작 시스템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음악활동을 하는 대중음악 스타일중 하나이며, 소자본으로 독립된 음악을 제작·유통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초기의 인디음악이 활성화 될 수 있었던 원인에는 3가지 배경적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1996년 공연윤리위원회(`公演倫理委員會)의 영화 및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제도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헌법재판소 93헌가 13, 91헌바10, 94헌가6) 판결을 받았다. 당시 음반 사전심의제도의 폐지는 인디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다. 둘째, 1998년 공연법(대통령령 제15598호)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개정되면서 국내 공연예술시장이 약진하였고, 이와 더불어 인디음악이 설 수 있는 많은 공연 무대가 증가한 것이다. 셋째, 2인 이상 연주할 수 없었던 클럽공연이 1999년 식품위생법의 개정으로, 인디밴드들의 클럽 공연 합법화(매일경제 1991.12.31 8면)가 가능해졌다. 이렇게 인디음악이 발생한 초기 5년(1995년~1999년)은 3가지 원인으로 인하여 인디음악의 활성화가 가능해졌고,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인디음악은 커다란 장벽을 마주하게 된다. 거대자본력을 갖춘 음반 기획사의 주류음악이 미디어를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음악시장을 완전하게 장악한 것이다. 그리고 대중과 소통하는 주 매개체가 공연이었던 인디음악은 주류음악의 파도에 밀려 서서히 정체되기 시작한다. 2000년대 초반의 국내외 산업시장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봉착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IT시장의 발달로 인한 정보의 확산과 이를 저지하려는 규제의 충돌로 빚어진 사회적 혼돈이다. 이러한 산업시장의 변화로 인한 사회적 혼돈은 음악시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1999년 12월 에이앤엠 레코드(A&M Records)사가 냅스터(Napsteer)사를 고소한 사건(A&M Records, Inc. v. Napster, Inc. 114 F. Supp.2d 896 (N.D.Cal. 2000))과, 국내의 한국 음반 산업협회가 소리바다를 고소한 사건(서울지방법원 2001고단8336 외)은 그 당시 음악시장의 변화를 예고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사건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사건에 원인을 제공한 정보통신기술(Informa tion Technology)은 그때나 지금이나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논란의 대상이었던 P2P 서비스는 확산과 규제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오히려 주류음악을 더욱 빠르게 유행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비주류의 상징인 인디음악은 흘러가는 현상을 관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디음악은 이러한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아날로그 문화에서 디지털 문화로 편승하였고, 음반제작이 음원제작으로 변화함에 따라 제작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는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더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work Services)의 보편화로 마케팅 비용의 절감이라는 또 다른 출구를 찾은 인디음악은 서서히 시장의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사실 사회관계망서비스는 일반인이나 주류음악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 자연스럽게 비주류음악에 관심을 갖게 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었다. 특히 역량을 인정받은 인디뮤지션은 주류음악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에 의해 또는 음악 산업 관계자들의 추천으로 공중파 방송에 이름을 알리고 왕성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90년대 크라잉넛을 필두로 후발주자 노브레인, 그리고 2000년대 초·중반의 여러 밴드를 거쳐 후반기에 <장기하와 얼굴들>, 그리고 201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10cm, 장미여관, 혁오밴드 등의 지속적인 방송출연과 음원차트 1위는 사상 유래 없는 인디음악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인 변화에 맞물려 인디음악이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을 파헤쳐 보면 인디음악은 주류음악처럼 지속가능한 완전한 성공을 누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변화는 인디음악뿐만 아니라 주류음악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회변화로 인한 음악시장의 발전은 절대 다수가 지지하는 주류음악과 절대 소수가 지지하는 비주류음악으로 완벽한 양극화 현상을 만든 것이다. 알고 보면 인디음악의 발생 시기부터 지금까지 극히 소수의 인디 뮤지션만 성공가도를 달렸고, 인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과 새로운 인디 뮤지션의 부재가 현재 인디음악의 한계이며 풀어야 될 과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디음악은 결국 시장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연구는 인디음악으로서 이름을 알리고 주류음악에 편승한 몇몇의 밴드처럼, 고유의 인디 정신이나 제작 방식을 훼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디음악을 위한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여 인디음악이 발생한 취지와 그들의 근본적인 정신이 깃든 공연시장의 폭을 넓히고, 주류와 비주류의 상생과 공존을 유지하려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적인 취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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