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30년대 발매된 이애리수와 전옥의 유성기음반에 대한 연구이다. 이애리수와 전옥의 유성기음반을 통해 1930년대 음반을 둘러싼 문화양상과 이들의 음반활동의 특징과 의미를 밝... 본 연구는 1930년대 발매된 이애리수와 전옥의 유성기음반에 대한 연구이다. 이애리수와 전옥의 유성기음반을 통해 1930년대 음반을 둘러싼 문화양상과 이들의 음반활동의 특징과 의미를 밝혀보고자 했다. 이애리수와 전옥은 유성기음반 취입이전 여배우로 활동하였는데, 처음부터 가수가 아닌 여배우가 유성기음반을 취입하게 된 계기에는 당시 유성기음반제작이 흥행한 무성영화나 연극 또는 막간무대에서 히트한 노래를 취입하는 형태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음반을 취입하게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음반회사들에게 인지도와 무대경험이 있는 여배우들은 좋은 발굴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환경은 이애리수와 전옥이 배우 활동도 하면서 동시에 유성기음반을 통해 가수로서도 활약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했다. 이애리수와 전옥은 이러한 1930년대 문화적 흐름 속에서 배우와 가수로서 다면적인 활동을 펼친 선구적인 인물이라 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애리수는 4년이라는 시간동안 극음반 38장, 노래음반 67장으로 총 105장의 음반을 취입하며 짧지만 굵은 활동을 보여주었다. 노래음반을 보면 콜럼비아레코드에서는 번안곡을 주로 불렀고, 빅타레코드에서는 유행가를 중심으로 음반을 취입하는 차이를 보여주었다. 이는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레코드사들이 번안곡을 위주로 노래음반을 제작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애리수는 <황성의 적>을 통해 조선의 유행가의 시대를 열어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애리수는 그녀의 음반 중 <고요한 장안>에 일본어 가사를 붙인 번안곡 <덧없는 사랑(あだなさけ)>을 통해 조선인 가수로서 일본에 음반을 발매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전옥의 음반활동 특징으로는 노래음반의 비중이 훨씬 높지만 극음반과 노래음반에서의 역할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극음반에서는 주제가를 부르는 등의 노래를 부르는 비중보다는 연기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노래음반은 노래음반대로 가수로서의 역할을 부각시켜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배우로서 그리고 가수로서의 기량을 잘 나타냈다. 또 다른 특징으로 전옥의 노래음반에는 작곡과 편곡까지 음반제작에 있어서 일본인들의 참여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는 점과 음반에 참여한 조선인 작곡가와 작사가 중에서도 일본유학을 통해 일본과 연관된 이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콜럼비아레코드에서 발매된 음반의 경우 일본콜럼비아레코드본사의 전속작곡가들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었는데, 이는 한국인 문예부가 따로 설립되어 있다고 하지만 일본본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조선에서의 레코드 산업구조는 일본레코드 산업의 영향아래에 있었음을 전옥의 음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기존에 다루어 지지 않은 이애리수와 전옥의 구체적인 유성기음반 취입목록을 밝히고 이를 문화론적 연구를 통해 음반활동의 특징과 의미를 살펴보았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This study is the research on the SP records performed by Lee Arisoo and Jeon Ok in 1930’s. This study will be mainly focused on figuring out cultural aspect of the SP records in 1930’s and features and meaning in their records activities through ... This study is the research on the SP records performed by Lee Arisoo and Jeon Ok in 1930’s. This study will be mainly focused on figuring out cultural aspect of the SP records in 1930’s and features and meaning in their records activities through the SP records they recorded. They worked as an actress before recording SP, there is a reason that they can naturally record SP as not a singer but an actress, because SP record production tended to record songs that already gained popularity in a silent film and drama or an intermission stage. In addition, actresses with reputation and stage experience were regarded as a good outstanding individual by record companies. These atmospheres brought Lee Arisoo and Jeon Ok good opportunities to be able to act as an actress and start their singing career as a singer through SP record at the same time. Lee Arisoo showed a short but bold activity for 4years by recording 105albums in total (drama 38, song 67). Seeing song albums, she usually sang remake songs in Columbia Record Co. On the other hand, she mainly recorded popular songs in Victor Record Co. This fact indicates some situation that Record Companies tend to produce record focusing on the remake song in the early 1930’s. Lee Arisoo can be called as a person who opened a new era of the popular song through <Hwangsungui jeuk> in 1930’s. Besides, she left behind a remarkable achievement that released a remake song <Adanasake> in Japan. Jeon Ok recorded 164albums in total (drama 66, song 98) from 1933 to 1939. When it comes to some features of Records activities performed by Jeon Ok, they include clearly divided role in drama album and song album, even though the amount of song album was high. Another feature manifests that lots of Japanese people and Korean people related to Japan cooperated in producing albums of Jeon Ok with a various of range from composition to arrangement. This study has a great value in that this study shows a specific album list of Lee Arisoo and Jeon Ok in 1930’s and puts an emphasis on features and meaning in their records activities. ,免费韩语论文,韩语毕业论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