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Emperor Julian at Antioch : Focusing on Misopogon Bae, Yu-Yeon Julian the Apostate sought to revive paganism standing against the accelerated Christianization of the Roman Empire which began under the reign of Emperor Constantin... <Abstract> Emperor Julian at Antioch : Focusing on Misopogon Bae, Yu-Yeon Julian the Apostate sought to revive paganism standing against the accelerated Christianization of the Roman Empire which began under the reign of Emperor Constantine. The resistance of paganism to Christianity contained interesting problems associated with specific social reality. Julian's apostasy should be treated in depth as a political practice to fundamentally restore the declining Roman empire. Julian constantly thought about the ideals and roles of a ruler regardless of harsh environments. His hostility to Christianity was a result of being conscious of the side effects of centralized bureaucratization, which his predecessors pursued. He also practiced his beliefs through rational means such as establishing and publishing pagan doctrines as well as promoting restoration of tradition. However, his efforts to split Christian communities, suppress hedonistic and opportunistic culture of the metropolis, and his naive approach to the food crisis conceived hatred among Antiochians. In reality, his approach was no more than an effort to revive the form of obsolete social structures that have already been replaced. This was due to Julian’s abstract perception on the decline of the Empire and the measures he took remained in theoretical level.
안티오키아의 율리아누스 황제: <턱수염을 혐오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배유연 율리아누스(Julianus)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래 가속화된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의 흐름을 거슬러 이교 ... 안티오키아의 율리아누스 황제: <턱수염을 혐오하는 자들>을 중심으로 배유연 율리아누스(Julianus)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래 가속화된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의 흐름을 거슬러 이교 부흥을 꾀한 황제이다. 이에 오랫동안 ‘배교자(apostate)’ 혹은 이교의 영웅으로 양극단의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기독교화와 이에 대한 이교의 저항은 단순한 종교이념 간의 대결이 아니며, 구체적인 사회현실과 결부된 더욱 흥미로운 문제들을 내포한다. 율리아누스의 배교 또한 쇠락하는 로마를 근본적으로 회복시키려는 정치적 실천으로서 입체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율리아누스는 일반적으로 알려졌듯 신비주의적 광신에 빠져 기독교를 배신한 일탈적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가혹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통치자의 이상과 역할을 고민했고 그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적의는 전임자들이 추진한 중앙집권적 관료제화의 부작용을 의식한 것이었다. 그 신념의 실천도 이교 교리를 정립해 반포하고 전통의 복원을 장려하는 비폭력적인 수단에 의해 행해졌다. 그러나 이교의 형식 복원에 치중하면서 기독교 공동체들을 분열시키고, 대도시의 쾌락주의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문화를 억압하고, 식량난에는 시혜적으로만 접근한 그의 행보는 안티오키아에서 격렬한 반발을 야기했다. 현실에서 그의 접근은 이미 기능이 대체된 옛 사회구조들의 형식을 되살리려는 노력 이상이 되지 못했다. 이는 제국의 쇠락에 대한 율리아누스의 인식이 지나치게 추상적이었고 대책마련도 원론적 차원에 머무른 결과였다. ,免费韩语论文,韩语论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