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춘대(蕩春臺)는 창의문(彰義門) 밖 홍제천변의 세검정 가까이에 있는 낮은 봉우리이다. 북한산과 백악 사이의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이 지역은 조선 후기 이전까지 유희의 공간, 조지서가 ... 탕춘대(蕩春臺)는 창의문(彰義門) 밖 홍제천변의 세검정 가까이에 있는 낮은 봉우리이다. 북한산과 백악 사이의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이 지역은 조선 후기 이전까지 유희의 공간, 조지서가 위치한 곳, 세초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수도방어체제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숙종대부터 영조대 사이에 탕춘대성(蕩春臺城)이 축성되면서 공간 및 기능의 변화가 나타났다.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탕춘대성은 숙종대 북한산성의 배후창고가 탕춘대에 설치되면서 처음 축조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홍지문과 오간수문을 비롯하여 오간수문 북쪽부터 향로봉까지의 구간 중 일부를 쌓은 후 공역이 중단되었다. 영조대에 도성을 사수하는 것으로 수비체제가 변화하면서 탕춘대로 총융청이 출진하여 군사주둔지가 되었다. 이후 숙종대에 중단되었던 성역이 다시 시작되어 백악에서 향로봉까지 이어지는 탕춘대성이 완성되었다. 탕춘대성이 완성되자 영조는 지명을 ‘탕춘대’에서 ‘연융대(鍊戎臺)’로 바꾸었다. 유사시 인력을 동원하여 성을 수비하기 위해서 다양한 모민(募民) 정책을 시행해 민호(民戶)의 수를 늘리고 마을을 형성하였다. 성이 완성되자 연융대 공간에는 이전 시기에 비해 새로운 기능이 나타났다. 연융대에 총융청이 옮겨오면서 군사 훈련과 시취가 이루어지는 등 군사적 기능이 생겼다. 총융청을 중심으로 하는 기능은 연융대 공간이 도성 수비를 위한 배후기지의 역할을 하는 데 기여하였다. 연융대는 의례를 설행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특히 영조에 의해 친행례(親行禮)가 새로이 시행되면서 이에 대한 예제가 마련되어 의례적 성격이 증대되었다. 연융대는 임금의 친림과 행행이 이루어지게 되면서 이전과 다른 위상을 가지는 공간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창의문과 길목이 과거 인조반정의 경로였다는 점이 새삼스럽게 부각되었다. 연융대 공간은 탕춘대성을 쌓고, 그 내부 공간의 이름을 연융대로 바꾸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성을 경계로 내부 지역이 하나의 공간으로 묶였고, 도성과 직접 연결되는 도성의 배후기지적 성격이 짙은 공간이 되었다. 연융대 공간은 도성 밖 성저십리 구역들 가운데서도 실질적인 군사·경제적 기능과 더불어 의례적 기능을 가지며, 임금과의 관련성이 깊은 공간이라는 점에서 특성이 있다. 연융대 공간에 서려있는 역사를 통해 이러한 개성이 있음을 알아보는 것은 현재의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특히 연융대 일대가 탕춘대성으로 묶인 한 단위의 공간이며 도성의 배후기지였다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현재 연융대 공간에 남아있는 과거의 흔적들을 잘 관리하고 올바르게 안내해야 한다.
Tangchundae(蕩春臺) is a low peak where is near Saegumjeong(洗劍亭) at Hongjae stream side and Changiumun(彰義門). This area, which is placed between Bukhansan(北漢山) and Baekak(白岳), is the place where outdoor pastime happened, Josise... Tangchundae(蕩春臺) is a low peak where is near Saegumjeong(洗劍亭) at Hongjae stream side and Changiumun(彰義門). This area, which is placed between Bukhansan(北漢山) and Baekak(白岳), is the place where outdoor pastime happened, Josiseo was placed in, and Secho(洗草) was executed until late Joseon period. Between King Sukjong’s reign and Yeongjo’s reign, the area had undergone gradual changes in its space and function especially after Tangchundae Wall(蕩春臺城) had been constructed around the area. Linking Hanyang City Wall to Bukhan mountain fortress, Tangchundae Wall started to be constructed when the warehouse for the fortress was built in the reign of King Sukjong. The construction of the Wall was stopped after building its gate “Hongjimun”, sluice gate “Ogansumun”, and the fortress wall from Ogansumun to Hyangrobong. In the reign of King Yeongjo, Tangchundae(蕩春臺) became the military post of Chongyungcheong(摠戎廳) with an increased emphasis on defending the capital. It was the reign of Sukjong when the construction was restarted. At that time, Tangchundae Wall between Baekak and Hyangrobong was completed. The name Tangchundae was changed into Yeonyoongdae(鍊戎臺) in King Yeongjo’s reign. In order to defend the capital, King Yeongjo has moved commoners into the region and made it form a town. Yeonyoongdae had begun to perform a new function. It started to have the military function such as having military training or test to be a military officer in Yeonyoongdae as Chongyungcheong moved to it. Chongyungcheong enabled Yeonyoongdae to serve its purpose of a military post for defending the capital by virtue of Chongyungcheong. Yeonyoongdae also plays a role of place to hold national ceremonies. It had the more striking characteristic of rites Since King Yeongjo performed national rites in person and its detailed rituals were made. With King Yeongjo’s frequent visits to Yeonyoongdae, it came to have higher status than ever before. Yeonyoongdae underwent many changes such as extending the fortress walls and having the new name “Yeonyoongdae.” The separate spaces in the fortress walls became a district and a nearby base camp for defending the capital. Among Sungjeoshipri(城底十里) areas, Yeonyoongdae performed military, economic, ritual function. In addition, the space was bound up with Kings in Joseon. The history of the space offers us information on the spot and its nearby areas. The fact that the areas around Yeonyoongdae became a unit of the district where Tangchundae Wall is a center for is essential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spaces. For all reasons mentioned above, the cultural assets around Yeonyoondae should be well preserved. ,韩语论文范文,韩语论文题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