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종삼(1921 -1984)은 1953년 『신세계』에 「園丁」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종삼이 활동을 시작했던 '戰後'라는 시기는 모든 질서의 파괴와 그에 따른 연속성의 부정으로 ...
시인 김종삼(1921 -1984)은 1953년 『신세계』에 「園丁」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종삼이 활동을 시작했던 '戰後'라는 시기는 모든 질서의 파괴와 그에 따른 연속성의 부정으로 인한 실존적 문제와 휴머니즘의 탐색이 강하게 대두되던 시기였다. 김종삼은 모더니즘 시를 통해 실존적 위기 속에 놓인 자신의 존재를 규명하고자 했으며 조화와 균형이 깨진 세계를 상상적 이미지의 세계로 끌어올려 새로운 언어 질서를 부여하고자 노력했다. 전후 모더니스트들은 정치 사회적 이기성에 의해 실존의 위기를 경험한 바 정치 사회적 요소의 배제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특색을 띠게 되었다.
김종삼은 절제된 언어와 고도로 압축된 시 형식을 구사하면서 독자적인 미학을 구현했다. 또 이국적인 언어의 활달한 구사, 다양한 예술 장르를 섭렵한 지적 편력 등으로 당대의 시인들과 다른 시세계를 구축하였다.
그 중 『詩人學校』에 묶인 작품들은 그가 지향하는 예술가들의 삶이 노정되어 있으며 그것들과의 끊임없는 동화를 통해 현실에서의 고단한 자신의 처지를 승화시키고자 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 의도적이거나 아니면 관습적으로 주요 시집의 전반에 걸쳐 구사하는 상징적 언어는 단순한 시인의 개인적 관심사의 영역에 머무는 문제라고 만은 할 수 없다. 즉 시인은 한 시대의 문화적 경향, 혹은 사회집단의 무의식의 창고에서 그 상징을 끌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징의 질료는 흔히 그 성분이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서로 무관한 듯한 시적 모티프들이 다채로운 혼합을 실행하면서 시언의 개성적인 시 세계가 창조된다. 이라한 측면에 주목하여 김종삼의 시세계를 텍스트의 의미 작용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본고는 김종삼의 『詩人學校』를 텍스트로, 시인이 구축한 기호체계의 특질을 살피고 나아가 그 텍스트가 생산한 전체적인 의미망을 조명해 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김종삼 시를 상징적 특성에 따라 항목별로 분류한 뒤 그것의 변별적 자질들이 어떤 내적인 동질성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규명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뿐만 아니라 김종삼 시에 빈번히 보이는 이질적 언어기호들이 내적으로 어떤 등가적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지 연구하였다.
첫째, 聖과 俗의 대립된 기호들의 충돌은 그의 시 세계를 풍부하게 해준다. 인간은 俗의 세계에서 대지를 반역하는 수직 기호로서 상방에 속하는 聖의 세계를 지향한다. 김종삼의 상상력은 낯선 이미지들을 서로 병치시키거나 자유롭게 조합하는 구성수법을 즐겨 사용하면서 聖과 俗의 대립을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승화시쳐 나간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인접성을 배제한 엄격한 언어의 절제, 다양한 외래어의 차용, 대상을 적시하지 않은 은유적 언어들의 유희 등이 聖과 俗의 세계를 승화시켜 나가는 주요 구성인자들이다.
둘째, 근원과 죽음의 의식에 관련된 기호들이 존재에 대한 부재의식을 환기시키며 나타냐는 점이다.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은 뿌리라는 식물적 관념을 통해 외부세계와의 연대를 꿈꾼다. 인간에게 있어서 뿌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라는 과거에 해당하는 시간적 존재자들과 그들이 낳은 현재적 존재인 나를 하나로 묶는 매개물이다. 냐는 어디에서 왔으며 내 존재의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과거와 미래의 시간에 대한 낭급증을 전제로 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문명과 시 창조의 상관성을 내포한 기호들이 많다는 점이다. 문명은 그 자체로서 항상 불안전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을 문명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부속품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개인이 자기 존재의 실존적 의미를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단순한 교환의 도구로 인간이 희생되는 물질 만능의 구조 아래서 개인의 창조적 상상력은 점차 고갈될 수밖에 없다. 절대 고독에 휩싸여 정신의 궁핍을 절감하면 할수록 시인은 문명적인 요소를 자연적인 요소로 치환하고 싶은 욕구를 느낄 것이다. 김종삼은 이런 불안한 징후를 누구보다도 민감하게 예감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역설적으로 그 욕구를 배고픔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에게 있어 문명을 상징하는 기호들 이를테면 우주선 · 크리스마스·헬리롭터·디젤 기관차·교회당·정신병원·연탄공장은 물론 심지어 공해까지 자연을 상징하는 기호들로 치환되고 있다.
김종삼은 문명의 이기를 초월적으로 극복, 자연과의 동화를 꿈꾸는 무채색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과 일정하게 유리된 느낌을 풍기기 위하여 차입된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고유명사의 나열이나 과도한 생략을 통한 시적 변형, 역설적인 직관과 자기 성찰, 혼돈을 가장한 무의식적인 언표 둥을 문면에 담담하게 서술하는 가교도 따지고 보면 이런 점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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