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교육에 관한 통시적 접근은, 언어를 교육한 사실에 관한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넘어서 일정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행해진 교육의 목적, 교육주체, 교육내용의 변화 및 언어 정책 ... 한국어교육에 관한 통시적 접근은, 언어를 교육한 사실에 관한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넘어서 일정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행해진 교육의 목적, 교육주체, 교육내용의 변화 및 언어 정책 등 여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교재의 내용만을 고찰 대상으로 하거나 교육기관의 존재 여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해당 시기의 언어교육의 필요성, 목적, 가치 등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어교육의 역사를 논의할 때에는 표기법, 문법, 어휘 등이 규범화된 과정 및 교육에 도입된 시점 등을 확인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규범이 없는 상태의 언어는 공적인 언어교육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한국어교육사의 시대구분의 관점을 제시할 목적으로 언어적 근대화가 완성되기 이전의 식민지 시기에 정책적으로 실행되었던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조선어교육'에 관해 고찰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서, 식민지 시기의 ‘조선어’는 ‘언어적 근대화’의 과정에 있었던 즉, 규범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민족어(national language)의 지위에는 이르지 못한 언어였음을 근거로 식민지 시기의 조선어교육은 현대 한국어교육과 동일 맥락에서 다룰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개화기를 거쳐 식민지 시기의 주요한 조선어 글말의 문체로 정착한 ‘국한문혼용체’가 조선어교육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였고 당시의 총독부의 표기법 규범화 과정을 통해 ‘조선어교육’에 쓰인 표기법 규범의 등장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 및 일본 제국의 식민지 토착어에 대한 정책에 관한 논의를 바탕으로, 언어학습을 통한 이문화 이해 등을 목적으로 하는 ‘외국어로서의 조선어교육’과는 다른, 피지배민의 통치를 목적으로 하는 ‘지역토착어로서의 조선어교육’으로 ‘식민지 시기 조선어교육’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내렸다. 또 구체적인 식민지 시기의 ‘조선어교육’에 대한 고찰을 통해 ‘조선어 장려 정책’이라는 정책이 식민지 시기의 조선어교육을 시기적으로 세분화하는 분기점이 됨을 밝혀 이 정책의 전후 시기의 조선어교육의 양상을 비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조선어 장려 정책'이 나타난 배경에는 식민지 통치 정책의 변화가 있었음을 지적하였고, '조선어 장려 정책'의 영향으로 등장한 ‘경성 조선어연구회’의 정체와 중심인물 등을 새로이 밝혔고 이러한 논의를 통해 식민지 시기의 ‘조선어교육’의 주체가 궁극적으로는 총독부였음이 드러났다. 이 정책이 활발히 추진된 시기가 식민지 시기의 조선어교육의 전성기였으나, 총독부의 예산상의 문제 등으로 ‘조선어 장려 정책’의 시험 정책과 수당 정책이 바뀜에 따라 ‘조선어교육’이 몰락하여 가는 과정도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1920년대에 중심적 역할을 한 ‘경성 조선어연구회’의 교육활동과 교육내용에 대해서도 출판물 및 관련 자료의 분석을 통해 ‘조선어교육’의 제도적, 내용적 발전이 있었음을 새로이 규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어교육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총독부의 정책적 변화, 즉 ‘조선어 장려 정책’의 변화 및 ‘언문철자법’의 변화에 의해 ‘경성 조선어연구회’의 교육활동은 중도에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음을 밝힌 것도 새로이 규명된 부분이다. 이러한 논증으로부터, 이 단체는 조선어교육의 주체가 아닌 ‘조선어 장려 정책’의 수행자에 지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교육주체, 교육목적, 교육방법, 교육내용을 비롯하여 정책과 제도 등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배경으로 한 고찰’이라는 한국어교육의 통시적 연구를 위한 관점을 새로이 제시할 수 있었고, ‘한국어교육사’의 전사(前史)로 이 시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하였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한국어교육의 통시적 연구’는 1957년 언어적 근대화가 완성된 이후로 한정하여 고찰되어야 함을 주장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韩语论文,韩语论文题目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