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의 하이쿠에 나타나는 농민성 : 『七番日記』를 중심으로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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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는 일본 근세시대 후기 문화를 대표하는 분카·분세이(文化·文政, 1804~1830) 시기에 활약했던 하이쿠 시인으로, 하이쿠의 전통적인 요소에 그만의 독특한 개...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는 일본 근세시대 후기 문화를 대표하는 분카·분세이(文化·文政, 1804~1830) 시기에 활약했던 하이쿠 시인으로, 하이쿠의 전통적인 요소에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미하여 하이쿠 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는 17세기 후반에 활약한 마쓰오 바쇼(松尾芭焦, 1644~1694), 18세기 후반에 활약한 요사 부손(與謝蕪村, 1716~1783)과 더불어 근세시대 3대 하이쿠 시인 중 한사람으로 일컬어질 만큼 근세시대, 이른바 일본 고전 하이쿠 문학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잇사가 하이쿠를 배우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하이쿠 시인으로서 활약하기 시작할 당시의 대부분의 하이쿠는 내용면에서 신선함이 떨어져 저속화 경향으로 흐르고 있었고, 대중화되어 사교수단이나 취미생활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잇사의 문학은 이러한 하이쿠 문단(俳壇) 상황 속에서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의 그의 작풍(作風)은 전통적인 미의식과 풍아관(風雅觀)에 대한 반발로 소박한 웃음과 개인적인 인생사를 바탕으로 한 생활과 사실을 자유스럽게 표출하고 있다. 잇사 조(一茶調)를 형성한 배경의 하나로 그의 특수한 가정 사정을 들 수 있는데, 눈(雪)이 많은 벽촌(僻村)인 시나노 지방(지금의 나가노 현) 가시와바라(柏原)에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유달리 불행한 삶을 살았다.
본 논문은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 세계와 표현 기법의 양상 등에 대해 살펴보고, 잇사의 삶과 그의 문학적 근간(根幹)을 이루는 풍토(風土)인 농민적 성격에 대해서 고찰한 것이다. 특히 양적인 면에서 가장 많은 하이쿠가 실려 있고, 내용 면에서도 잇사 조의 최전성기를 대표하는 충실한 작품 군(著作群)을 수록하고 있는『七番日記』[1810년(文化7) 1월부터 1818년(文化15·文政1) 12월까지 9년간에 걸친 하이쿠 일기]의 하이쿠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근세시대의 문학은 도시상인(町人)을 중심으로 한 문학이었고, 농민으로서 독자적인 문학세계를 표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특히 대도시 에도 사람들에게 ‘찌르레기’라고 놀림 당했던 시나노의 농촌 출신으로서 도시를 전전했던 잇사의 눈에 비치는 농촌과 농민, 그에 의해 하이쿠로 읊어졌던 농촌은 정겨우면서도 도시에 비해 볼품없고 가난한 곳이었다. 특히 18세기는 농민 대중의 봉기가 되풀이 되던 시대였던 만큼 상품경제가 발달하면서 전국시장에서 쌀값이 매우 유동적이었고, 연공미와 쌀의 매점으로 농민들의 생활은 굶주리고 불안정하였다.
잇사의 하이쿠 세계는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그자신의 처지와 그의 고향 농가에서의 생활이 어우러져 사회에 대한 저항감과 농민들에 대한 동정심이 작품 속에 자리 잡게 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농민 출신으로서 하이쿠를 창작하고 가르치는 하이카이시로서 삶을 유지하면서 농촌과의 유대를 꾀하는 한편 생활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인간미 넘치는 서정으로 승화시켜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학적 세계를 구축하였던 것이다.
특히 사투리나 속어 등, 단순하고 꾸밈없는 일상 언어를 사용하여 서민들의 애환을 잘 표현하였는데, 농가의 일상생활을 표출하는 하이쿠가 많아 작가 자신의 삶의 처지와 그 당시 농민들의 힘든 삶에 대한 연민이 잘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하이쿠 작품 속에서 엿볼 수 있는 방언에 애착에서 농촌 출신 하이쿠 시인인 그가 가슴에 품은 강한 옹고집 근성과 대도시 에도 말에 대한 반발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하이쿠 세계에서는 감성적인 미의식의 세련보다는 감동을 단순화시켜 산문화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小林一茶(1763~1827)は、日本近世時代の後期文化を代表する文化⋅文政(1804~1830)期に活躍した俳人として、俳句の伝統的な要素に自分なりの独特な個性を加えて、俳句文学に於...

小林一茶(1763~1827)は、日本近世時代の後期文化を代表する文化⋅文政(1804~1830)期に活躍した俳人として、俳句の伝統的な要素に自分なりの独特な個性を加えて、俳句文学に於ける新しい場を開拓した人物である。彼は17C後半に活躍した松尾芭蕉(1716~1783)、18C後半に活躍した與謝蕪村(1644~1694)と一緒に、近世時代の3代俳人の一人として言われるほど近世時代、いわゆる日本古典俳句文學の一軸を成している。
一茶が俳諧を習いはじめて本格的に俳人として活躍した當時の大部分の俳句は、内容面で斬新さが劣って低速化する傾向で流れていたし、大衆化されて社交手段とか趣味生活の一部となっていた。一茶の文学は、このような俳壇の狀況の下で成長したとみられが、当時の彼の作風は伝統的な美意識と風雅観に対する反発で、素朴な笑いと個人的な人生史に基づいた生活と事実を自由に表出している。一茶調を形成した背景の一つで彼の特殊な家庭事情が挙げられるが、雪の多い信濃国の柏原で農民の子として生まれた一茶は幼いごろから死の瞬間まで一際不幸な生を送った。
本論文ではこのような事實を基にして、小林一茶の俳句世界と表現技法の樣相などについて調べてみた。尚、農民の出身である一茶の生と彼の文学的な根幹を成す風土である農民性を考察したのである。特に量的な面で数多くの俳句が載せられていて、內容面に於ても一茶調の最全盛期を代表する充実な著作群を収録している『七番日記』[1810年(文化7)1月から1818年(文化15⋅文政1)12月まで9年間にわたった俳句日記]の俳句を中心に考察してみた。
近世時代の文學は、町人を中心にした文學であったし、農民として獨自的な文学世界を表現する場合は非常に稀なことだった。特に大都市である江戸の人々に'椋鳥'だとからかわれた信濃の農民出身で都を転々していた一茶の目に映る農村と農民、彼によって俳句で詠ざれた農村は情があふれながらも都市に比べて貧しい所だった。特に18Cは農民の一揆が繰り返された時代だったほど、商品經濟が発達しながら全國市場で米代が非常に流動的だった。その上、年功米と米の買いだめで農民たちの生活は飢えて不安定だったのである。
一茶の俳句の世界は、このような時代的な背景の中で波乱万丈に生きた彼の自身の境遇と彼の故郷での生活が一団となって、社會に対する抵抗感と農民たちに対する同情心が著作の中に位置づくようになったことをうかがうことができる。彼は農民の出身として俳句を創作し教える俳諧師として生きながら農村との紐帯をはかる一方、生活感情を率直に表現しながら人間味あふれる敍情で昇華させ自分だけの獨自的な文學世界を構築したのである。
特に方言や俗語など、単純で飾らない日常言語を使って庶民たちの哀歓をよく表現したが、農家の日常生活を表出する俳句が多くて作家自分の生の境遇とその当時の農民たちの大変な生に対する憐愍がよく描かれていることが特徴だと言える。又、彼の著作の中で見られる方言の愛着から農村出身の俳人である彼が胸に抱いた強情な根性と大都市に対する反発を同時にうかがうことができる。従って彼の俳句世界では感性的な美意識の洗練よりは感動を単純化させて散文化する傾向が表れる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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