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 작가 아쿠타가와 류우노스케(芥川龍之介;1892~1927)와 한국의 이상(李箱;1910~1937)에 관해 ‘불안의식’이라는 주제를 접점으로 비교 고찰해 본 것이다.
일반적으로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작가의 개인적인 사건으로 보지 않고 지식인의 위기의식이 표면화된 하나의 사건으로 간주된다. 그것은 아쿠타가와가 자신의 유서형식의 글에서 자살의 이유에 대해 ‘막연한 불안’을 언급하면서 촉발되었다. 그로 인해 아쿠타가와에게 있어 ‘불안’이라는 주제는 끊임없이 제기 되었고, 그 ‘불안’이라고 하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여전히 그의 문학과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한편, 이상의 죽음도 시대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해석되는데, 그것은 불안한 사회조건이나 부당한 객관 정세에서 시작된 일제하 지식인들의 상황과 관계되는 수난의식으로서의 불안 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 문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안의 소산물’이며, 자의식의 위기가 근대문명 자체에 대한 위기적 인식과 교묘하게 얽혀있다. 그러므로 그 고민과 갈등의 요소들로 빚어진 그의 ‘불안’에 관한 심리적인 근거를 추출해 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이 두 작가에게 중요한 문제로서 언급되고 있는 ‘불안’ 모티프의 근원을 그들의 구체적인 작품을 통하여 비교 고찰하는 것은 나아가 한·일간의 1920~30년대라는 동시대적인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주제 연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상이 아쿠타가와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실증적인 영향관계도 두 작가에 관한 비교문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 연구의 방법으로서는 이상이 아쿠타가와에게 가정환경의 유사성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고 지적되고 있는 바, 두 작가의 내적 유사성을 살피는 작업으로서 심리분석적인 방법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안’이라는 모티프를 중심으로 비교 고찰하기 위해선 문학 작품의 모티프, 이미지나 상징 등의 의미 탐구를 중심으로 주제읽기를 과제로 삼는 연구 방법인 주제비교학적 연구의 필요성도 있다.
이와 같은 ‘불안’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두 작가의 작품에 나타난 불안의식에 대해 본론에서는 불안의식의 전개 양상과 불안의식의 서사 양식, 그리고 불안의식의 탈출 욕망에 관해 고찰해 보도록 한다. 우선, 제Ⅱ장 1절에서는 불안의식의 출발점으로서 첫째, 양자(養子)의식이라고 하는 심리적인 콤플렉스의 동질감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상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친부모가 아닌 백부의 집에서 양육되었다든지 성인이 되자 본가 및 양가의 생계를 도맡아 짊어지게 되는 가정 환경적인 요인이 아쿠타가와의 성장과정과 흡사한 점이 많다. 말하자면, 아쿠타가와의 정신적 외상(trauma)이 양자라는 의식과 친모에 대한 문제였듯이, 양부에게 정신을 저당 잡힌 채 동해(童孩)로서 자라난 이상의 성장 배경과 유사점이 있다. 이러한 환경은 그들 문학에 나타나는 ‘불안’의식과 관계가 깊다.
그리고 이상과 아쿠타가와의 문학으로의 출발이 현실적으로 무언가에 불안을 일으키는 결핍상태나 정신적인 욕구의 좌절상태에서 시작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현실 도피적 창작 태도’로서 살펴보았다. 아쿠타가와의 문학으로의 출발은 자아의 인식과정에 있어 일정한 자기 동일시를 이룰 수 없었던 자신의 개인사 문제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것을 도외시하고자 했던 점에서 불안의식이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은 이상 문학의 원천과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상은 일자무식한 친부모와 떨어져 양자로 자랐고, 고학했으며, 결핵환자였고, 식민지라는 20년대 조선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나약한 지식인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문제를 현실 도피적인 관점에서 관념의 세계로 접어드는 길이 문학하기의 출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시대사적인 의미와 함께 작가의 불안의식을 다루어 보았다. 1920~30년대의 한국과 일본은 개인주의적 세계관, 인간관의 패배, 그리고 세기말적 사상관과 무관하지 않은 시대였다. 일본에서는 아쿠타가와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되는 시대적 ‘불안’을 많은 작가들이 자신들의 ‘불안’으로 인식하며 점차 사회화되기에 이르는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불안문학의 계보로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는 이상의 문학도 이와 같은 시대의 위기의식과 함께 일본의 1935년을 전후로 하는 시점의 ‘불안문학’의 유행과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제2절에서는 이와 같은 불안의식을 배태할 수밖에 없었던 두 작가의 공통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불안의식의 표출 양상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우선, 이상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자아 분열의 문제는 인간의 불안 심리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고, ‘거울’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나’와 또 ‘다른 나’라는 현상 속에서 자아분열적인 주제로 나타나고 있으며, 대타적인 구도에서는 소외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여기에 아쿠타가와의 문학과 공통적인 주제의식이 있다. 두 작가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자아 분열’적인 이미지는 주인공의 존재감 상실로 이어지고 불안의식을 만들어 내는 기제이며, 동시에 그 결과가 되기도 한다. 불안이 미래에 대한 위기, 좌절, 파국 등에 대한 예측에서 생기는 근원적인 문제에 관련되는 것이라고 볼 때, 아쿠타가와와 이상의 작품에 나타나는 자아분열적인 현상은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온전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는 불안한 자아를 표현한 대표적인 양상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또한, 이상과 아쿠타가와 문학에는 운명적인 어떤 힘을 느낌으로서 불안의식에 사로잡히는 주인공의 모습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예기불안증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미래에 대한 단순한 불안의식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숙명과도 연결된 것이며, 죽음을 전제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보인다. 인간이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명제 앞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두 작가에게 나타난 운명의 힘은 각각의 병적 요인들인 결핵과 정신병이라는 숙명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불안의식의 표출 양상의 하나로 양가성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여기서 ‘양가성(Ambivalence)’이라는 것은 거의 같은 시각에 서로 상반되는 생각들이 같은 값어치로 떠오르는 심적 현상이다. 이것은 앞에서 두 작가의 불안의식의 출발점으로 고찰해 본 불안정한 ‘양자’로서의 양육환경과 무관하지 않으며, ‘불안’이라는 심리적인 현상의 소산일 수 있다. 따라서 아쿠타가와가 가진 ‘불안’심리는 심리학에서 언급하는 양가성의 논리를 낳고, 그 문학적 형상화 작업으로서 이항대립적인 언술구조를 생산해 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상문학에서 자주 나타나는 대칭점의 논리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제Ⅲ장에서는 작가의 불안의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있는 서사 방식으로서 ‘의식의 흐름’ 기법과 사소설적 경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상과 아쿠타가와 소설의 공통된 특징은 그 기법에 있어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구 이론을 모티브로 하여, 인간의 내면의식과 심층심리의 탐구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서사 기법은 두 작가의 소설이 ‘시적 소설’로 나타나게 했으며, 결국 서사가 약화되는 경향을 보여줌으로써 개인의 불안정한 자의식과, 주체가 서술의 대상으로서의 현실의 불투명성을 인식하고 있음을 잘 드러내주는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제2절에서는 아쿠타가와와 이상 소설에 나타나는 사소설적인 서사 방식이 두 작가에게 있어서는 생의 위기적 국면과 관계하고 있음을 고찰해 보았다. 이상이 그의 초기작품에서 이미 자기를 소설화하고, 그 과정에서 ‘결핵=죽음’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의 마지막 작품 「종생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포즈화 되는 것과 관계된다. 그리고 아쿠타가와에게 있어 사소설적인 경향의 작품들은 결국 ‘광인(狂人)’인 어머니를 떠올림으로서 나도 ‘광인으로 죽는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상과 아쿠타가와의 문학에 나타나는 사소설적인 경향은 그들의 ‘생의 위기의식’을 내포하는 불안정한 무의식적 자아의 표출이라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제Ⅳ장에서는 불안의식에서 벗어나려는 탈출 욕망으로서 두 작가가 몇 가지 공통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죽음(thanatos) 욕망이다. 아쿠타가와의 후기 작품에는 초기 작품들과는 다른 죽음 욕망이 나타난다. 예컨대 「톱니바퀴」에는 주인공의 불안한 일상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느끼는 공포는 산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한 공포라 할 수 있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상에게서도 나타난다. 그의 「종생기」는 말 그대로 생을 끝마치는 기록인데도, 그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말하고 있다. 기존의 그의 소설이 그러하듯 연인과의 만남이 있고,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오히려 산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나타나 있다. 결국, 아쿠타가와의 작품에 나타난 주인공들은 인간의 불안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방법으로 죽음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은 이상 작품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 자살 지향적인 모습과 중첩된다.
그리고 불안한 자의식을 소유한 주인공들은 그 불안한 의식들을 벗어 놓기 위해 일종의 방편으로서 나르시스적인 기질을 보여주게 된다. 어떤 면에서 자아도취는 자기소외나 자기폐쇄의 경향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서 아쿠타가와의 작품들에 나타난 인물들은 타인에게 이해 받지 못하는 ‘고독지옥’에 떨어진 소외된 자아상을 보여주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이상의 문학에서도 다르지 않다. 이상 작품의 대부분은 사회에서 소외된 ‘절름발이식’ 인물들이 대부분이며, 그들은 사회와 가족 등 타인들로부터 단절된 인물들로 나타난다. 이러한 인물들의 특징은 실패한 인텔리겐차이면서도 동시에 자아에 몰입하고 있는 자아도취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나르시시즘이 근본적으로 배태하고 있는 이러한 이율배반의 문제가 두 작가의 작품의 저변에 흐르게 되는 사상이라 볼 수 있다.
또 이와 같은 탈출의 이미지를 가진 것으로 ‘날개’ 모티프가 있다. 기존의 연구에서 이상이 아쿠타가와의 ‘날개’ 이미지를 패러디하고 있다는 언급이 있는데, 아쿠타가와에게 있어 ‘날개’는 그의 상승지향적인 예술혼의 상징물이다. 그러나 불안한 현실로부터의 탈출 욕구는 결국 ‘날개’는 있지만 더 이상 날 수 없었던 아쿠타가와의 ‘박제가 된 천재’라는 자의식과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아쿠타가와의 ‘인공의 날개’에는 예술혼으로 상징되는 과거회상의 의미가 있고, 이상에게는 하강지향적인 삶에서 벗어나려는 현실로의 귀환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점은 이상에게는 「날개」를 창작하면서도 새로운 삶을 목표로 하는 동경행이 남겨져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에 비해 아쿠타가와의 ‘인공의 날개’는 자살을 앞둔 시점에서 ‘광기와 자살’만이 남아있는 절망적인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본고에서 논의한 ‘불안의식’이라는 주제는 인간이 가진 존재의 불확실성, 즉 자아 해체의 자각이라는 측면에서는 이후 한일문학에 대두되는 신시대의 문학에 큰 반향이 된다. 그리고 아쿠타가와와 이상은 개인의 고뇌를 넘어서 근대정신의 해체를 새로운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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