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홍수의 시대’ 혹은 ‘영상문화의 시대’라는 표어로 오늘의 문화는 자주 회자된다. 이론가 미첼은 1990년대 이후를 ‘이미지 전환의 시대(pictorial turn)’라고 부르며, 이미지의 편... ‘이미지 홍수의 시대’ 혹은 ‘영상문화의 시대’라는 표어로 오늘의 문화는 자주 회자된다. 이론가 미첼은 1990년대 이후를 ‘이미지 전환의 시대(pictorial turn)’라고 부르며, 이미지의 편재성에 대해 논한바 있다. 매체 발달로 인해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로가 점차 다양해지면서, 우리는 오늘날 일 년 동안 평균 1조에 달하는 사진을 생산하게 되었다. 소비하고 유통하는 사진의 수도 그만큼 급증했다. 이와 같은 사진의 편재성에는 사진에 대한 접근용이성과 표상의 도구로서 최적화된 사진의 변화된 위상이 배경에 있다. 그러나 이미지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텍스트에 의존적인 사진의 시대를 뜻하기도 한다. 사진이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문자언어인 텍스트이다. 사진 즉, 이미지는 텍스트와 만남으로써 의미를 획득한다. 그리고 이미지와 텍스트의 만남을 주선하는 기술적 행위가 그래픽디자인(아트디 렉팅)이다. 개별 존재로서 모호한 이미지는 텍스트 동원과 배치를 통해 비로소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때 그래픽디자인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배치되는 물리적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사진을 ‘메시지 있는 코드’로 변환시킨다. 우리가 접하는 인쇄물 중 대다수는 이러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물이며, 그래픽디자인 행위의 산물이다. 잡지를 만드는 이는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잡지 기조에 최적화된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방식을 구상한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통해 메시지가 만들어진다. 오늘의 시각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지와 텍스트에 대한 이중 언어 리터러시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본 논문은 1970년대 한국에서 발행된 문화교양지 뿌리깊은 나무(1976-1980)를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와 같은 연구 대상 설정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뿌리깊은 나무는 국내 최초로 잡지 아트디렉팅 시스템을 도입했다. 아트디렉팅 시스템은 잡지의 시각적 부분을 책임지는 것으로, 대개 ‘읽는 잡지’에서 ‘보는 잡지’로의 전환을 상징하기도 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미국의 합리주의적 출판 모델을 도입하여 그리드시스템, 타이포그래피, 광고 등이 한데 어우러진 시각적 체제를 완성했는데, 사진은 잡지의 시각적 정체성을 발현하는 주요 시각 요소 중 하나로 기능했다. 둘째, 대개 잡지는 한 시대의 시각문화 와 발행인의 비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매체이다. 특히, 잡지에서 사진은 한 시대의 사건과 풍경, 발행인의 비전을 압축시켜 드러낸다. 뿌리깊은 나무는 발행인 한창기의 사상이 집약되어 나타난 잡지였다. 그는 디자이너 이상철을 영입하여 잡지 특유의 시각적 수사를 통해 잡지의 비전을 시각화시켰다. 잡지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는 아트디렉팅 체제 속에서 밀도 있게 조율되었고, 이로 인해 효과적인 메시지 발신이 가능했다. 본 연구는 잡지의 이와 같은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잡지의 다섯 가지 섹션을 이미지와 테스트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76년 3월부터 1980년 8월까지 발행된 총 53권의 잡지를 다음 다섯 가지 섹션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표지, 원색화보, 삼색화보, 민중의 유산 , 볼 만한 꼴불견 . 분석 결과, 각 섹션은 특화된 사진편집과 사진디자인 그리고 텍스트(캡션, 에세이)를 통해 섹션의 주제를 드러냈다. 경우에 따라, 이미지 다루기에서는 암시와 은유의 수사가 활용되는가 하면, 원색화보와 같은 사진에세이에서는 시대에 대한 비평적 담론 생산이 주를 이뤘다. 각 섹션마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주선했던 아트디렉팅은 단순 기술 행위에 그치지 않고 발행인 한창기의 비전을 표상하는 도구로서 기능했다. 이와 같은 형식은 도식화된 이미지와 텍스트의 이분법적 분류를 극복하는 장치로 적합했다. 잡지는 1970년대 잡지계에 만연한 일본식 잡지 체제로부터 벗어나 미국식 출판 모델을 의식적으로 도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대에 대한 비평과 과거에 대한 재해석을 동력 삼아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다. 서구식 출판체제를 내면화하되 이를 1970년대 중후반 한국 문화와 사회에 대한 재성찰을 촉구하는데 활용함으로써, 한국 시각디자인사에서 보기 드문 디자인의 주체적 수용 사례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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