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루쉰 수용과 현대중국의 상상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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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한국 루쉰 수용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에서 루쉰이 의미화되는 과정을 밝힘으로써 한국의 근대성을 가늠해 보는 작업이다. 한국의 루쉰 수용자들은 루쉰과 중국이 대면했...

본 논문은 한국 루쉰 수용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에서 루쉰이 의미화되는 과정을 밝힘으로써 한국의 근대성을 가늠해 보는 작업이다. 한국의 루쉰 수용자들은 루쉰과 중국이 대면했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한국의 정치적· 역사적 조건을 반추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루쉰의 사상적· 문학적 위상에 대한 관심은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수평적 참조 체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루쉰에 대해 일관된 연구의 흐름이 형성될 수 없었다. 한국의 정치적· 역사적 조건이 루쉰의 전면적인 수용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특히 냉전의 영향은 한국이 루쉰 수용의 폭과 양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성에도 불구하고, 루쉰은 편린의 형태로나마 ‘현대중국’의 상징으로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수용된다. 비록 루쉰이 한국에서 전면적으로 사유되지 못했다 해도 한국에서 루쉰과 현대 중국이 갖는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루쉰에 대한 단편적 논평들 속에 현대 중국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한국 지식인들의 관심과 지지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점에서 본다면 한국 루쉰수용의 계보 탐구는 한국 근대성에 있어 ‘현대중국’이 갖는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본 논문은 식민-해방기, 냉전기, 탈냉전기로 나누어 루쉰 수용을 재맥락화했다. 먼저 식민-해방기는 한국 루쉰 수용의 원점에 해당한다. 식민지 시기 한국의 지식인들은 5·4 운동과 사회주의와 관련해서 루쉰의 위상을 문제화한다. 정내동이나 김태준, 가라시마 다케시, 이육사등 식민지 시기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은 ‘루쉰전변’을 축으로 루쉰의 사상과 문학의 본질을 논했다. 이들은 1930년 전후의 중국 사회의 분기를 ‘계몽’과 ‘혁명’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동시에, 이에 기반 해 현대중국에서 루쉰의 위상을 다룬다. 이때 ‘루쉰상(魯迅像)’은 혁명과 계몽, 그리고 비판을 축으로 구성된다. 해방기 한국 사회에서는 ‘중국혁명’에 대한 중층적 관심이 생겨난다. 동시에 루쉰에 대한 이해 역시 다각화된다. 그리고 해방 직후 좌우 연대와 합작이라는 이념지형 속에서 중국과 루쉰에 대한 공통의 탐구 가능성이 열린다. 정치적·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신문화운동과 사회주의 혁명을 한국 현대사의 현장으로 불러들여 새로운 현실감각을 획득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냉전의 대립 구도의 강화 속에서 ‘혁명좌파 루쉰’의 형상은 은폐되고 자연주의적 휴머니스트 루쉰의 형상만이 언표 가능해 진다. 둘째 냉전 시기의 경우 ‘중국에 대한 상상’이 루쉰에 대한 금기와 허용을 결정했다. 반공 체제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은 루쉰을 사회주의에서 분리시켜 냉전의 통념 속에서 수용한다. ‘중공’을 전체주의 국가이자 근대의 이탈로, ‘자유중국’을 ‘자유진영’의 수호자이자 근대화의 모범으로 상상하는 조건 속에서 루쉰을 ‘중공’에 적대적 사상가· 문학가로 계열화한다. 루쉰을 ‘자유’와 ‘순수문학’의 계보 속에서 ‘자유중국’의 일원으로 계열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냉전체제의 완화와 함께 공적 담론 체계에서 은폐되었던 ‘붉은 루쉰’이 재등장한다. 리영희의 경우 냉전 세계 체제의 변화를 인식하고 루쉰과 현대중국의 재인식을 통해 이 변화에 대응하고자 한다. 그는 루쉰을 사유의 지반으로 삼고 현대중국에 ‘내재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폐쇄성을 해체하고자 했다. 셋째 냉전 해체기에서는 ‘현대중국’에 대한 지적 관심이 재고된다. 그리고 루쉰과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관련성이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한다. 물론 1980년대 중반까지도 한국의 지배권력은 여전히 냉전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다. ‘중국혁명’에 대한 지적 관심은 이런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과 ‘중국혁명’을 한국 사회의 변화의 동력으로 번역하려는 흐름과 결합한다. 중국혁명에 대한 직접적 소개가 제한된 상황에서 의식화된 지식인들은 루쉰과 ‘현대중국’을 이를 위한 우회적 통로로 활용하고자 한다. 1980년대 후반 냉전해체와 동아시아 지역간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지역’이 지닌 비판성이 의제화된다. 한국 사회의 변화가 ‘지역’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의식 속에서 ‘동아시아론’이 부각되었다. 중국은 직접적인 소통으로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호명된다. 중국의 위상 변화 속에서 루쉰은 동아시아 근대를 상징하는 인물로 수용된다. 즉 루쉰은 보편적인 지식인이 아니라 비서구적 지식인 혹은 동아시아 지식인으로 형상화된다. 말하자면 7,80년대의 민주화담론과 좌익담론에 대한 내부적 반성과 90년대 아시아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지적 모색 속에서 루쉰이 수용되었던 것이다. 요컨대 한국에서의 루쉰 수용의 폭과 형태는 한국의 중국에 대한 이해와 결합되어 결정되었다. 즉 한국에서는 루쉰을 ‘현대중국’의 상징으로 수용했다. 현대중국은 지속적인 체제 전환의 과정 속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현대중국을 한국 사회에 접목시키는 사상 자원이 루쉰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루쉰은 중국 사회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포괄적인 통로였다고 할 수 있다. 반봉건(反封建)과 반제(反帝)의 휴머니스트이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주체적 자각의 상징에 이르기까지 루쉰은 복합적 형상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현대중국’을 한국 사회에 포섭하려는 역사적· 정치적 조건 속에서 루쉰의 면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본 논문에서 한국의 루쉰 수용이 현대중국의 사상과 문학의 수용만이 아니라, 현대중국을 한국의 사상자원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었음을 밝혔다. 루쉰이 지닌 상징성을 규명하는 것은 현대중국이 한국 지성계에 가졌던 비판적 의의를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서구-일본이라는 제국의 창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비서구와의 소통을 통해 당대 한국의 근대성과 전망을 문제화하고자 했다. 한국에 있어 현대중국과 루쉰의 수용은 비서구와의 연대 혹은 교통을 의미했다. 이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서 비판적 담론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루쉰 수용의 역사성과 현장성을 밝히는 것은 루쉰을 둘러싼 인식론적 틀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이는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루쉰을 연구하는 것과 연동된다.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루쉰을 바라본다는 것은 각 지역과 시대의 루쉰 연구가 지역, 시대의 어떤 요구와 맞물려 전개되었는지에 주목하여 루쉰을 재맥락화하는 작업이다. 루쉰을 경유할 때, ‘동아시아’는 공통성의 공간이 아니라 차이의 공간이다. 루쉰의 수용사를 통해 동아시아의 개별 공간 사이의 균열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균열의 근거를 사고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개별 국가들은 루쉰을 거의 동시적으로 수용했지만, 그 수용 양상은 상이했다. 그러나 동시에 루쉰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둘러싸고 이들 사이의 다양한 균열점들이 교차한다. 이런 의미에서 동아시아에서 루쉰은 논쟁적 작가였으며, 앞으로도 논쟁적 작가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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