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는 놀이가 지닌 서로 다른 측면에 주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철학적 사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공통된 의견을 개진한다. ‘놀이’가 자신의 다양성, 역동...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는 놀이가 지닌 서로 다른 측면에 주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철학적 사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공통된 의견을 개진한다. ‘놀이’가 자신의 다양성, 역동성, 자율성 속에서 언제나 새롭게 수행되는 것처럼, 언어, 예술, 기호, 세계 등은 그 자체의 내적 규칙을 따라 끊임없이 자기를 실현할 뿐 다른 외적 실재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순수하고 완결된 이론적 체계로 모든 지식을 근거 짓고자 한 근대적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된다. 첫째로, 본고는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가 어떻게 놀이 개념을 통해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지 설명할 것이다(Ⅱ). 둘째로, 본고는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에 의해 비판받는 근대적 형이상학의 특징을 ‘토대주의’, ‘표상주의’, ‘주관주의’로 요약할 것이다(Ⅲ). 셋째로, 본고는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의 놀이 개념을 각각 ‘놀이의 다양성’(Ⅳ), ‘놀이의 역동성’(Ⅴ), ‘놀이의 자율성’(Ⅵ)이라는 관점에서 논의할 것이다. 넷째로, 본고는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의 논의를 바탕으로 ‘토대주의’에 반대하여 ‘정합주의’를, ‘표상적 진리’에 반대하여 ‘해석학적 진리’를, ‘주관성’에 반대하여 ‘상호주관성’을 주장할 것이다(Ⅶ). Ⅱ.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는 모두 놀이 개념을 통해 오늘날의 철학을 쇄신하고자 한다. 이들은 언어, 예술, 기호, 세계 등이 마치 ‘놀이’처럼 자신의 내적 규칙을 매번 새롭게 수행함으로써 어떠한 실재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자기를 자유롭게 전개한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맥락으로부터 등장한 각각의 논의를 함께 비교하기 위해서는 놀이 개념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호이징아가 문화사의 영역에서 성취한 고전적인 연구는 이러한 문제를 만족시켜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하다. 첫째로, 우리는 호이징아가 놀이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제시한 논의를 개략적으로 살펴볼 것이다(Ⅱ. 1.). 둘째로, 우리는 호이징아가 놀이 개념을 설명하며 ‘놀이/진지함’, ‘탈일상/일상’, ‘허구/현실’, ‘무용성/유용성’의 이분법적 구별을 거부한다는 점에 주목할 것이다(Ⅱ. 2.). 셋째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 역시 놀이 개념에 근거하여 ‘언어/세계’, ‘창착자/향유자’, ‘기표/기의’, ‘주체/객체’의 이분법적 구별을 문제 삼는다는 점을 지적할 것이다(Ⅱ. 3.). Ⅲ.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코기토’ 명제를 제시한 이후로 인간은 세계를 규정하는 자로서 철학의 역사 가운데 등장한다. ‘의식철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는 근대적 형이상학의 사유는 일련의 전제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주관의 자기반성을 강조하는 철학은 의식의 직접적 소여를 다른 모든 지식을 떠받치는 인식론적 토대로서 여긴다. 우리는 직접적 소여의 토대 위에 학문의 체계를 성립시킴으로써 세계를 표상한다. 표상의 ‘참’과 ‘거짓’을 평가하는 기준은 주관의 확실성이다. 이러한 논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근대적 형이상학은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자명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의식철학의 한계에 속박되고 만다. 첫째로, 우리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표자인 데카르트와 로크가 주체와 객체의 관계를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 채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Ⅲ. 1.). 둘째로, 우리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 조건에 대해 탐구한 칸트 역시 여전히 의식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할 것이다(Ⅲ. 2.). 셋째로, 우리는 주체와 객체의 간격을 메우고자 하는 근대적 형이상학의 시도가 ‘토대주의’, ‘표상주의’, ‘주관주의’라는 인식론적 구도 위에서 전개된다고 지적할 것이다(Ⅲ. 3.). Ⅳ.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세계’의 이분법에 반대하여 놀이의 ‘다양성’에 주목한다. 그는 언어를 단일한 논리적 형식으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비판하기 위해 ‘언어 놀이’ 개념을 제시한다. 언어는 마치 놀이처럼 저마다의 고유한 내적 규칙을 바탕으로 무수한 형태로 자신을 전개한다. 일상 언어의 문법을 더 근본적인 논리로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모든 놀이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질서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는 문장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조건에 대해 탐구한 ‘언어그림 이론’을 요약적으로 살펴볼 것이다(Ⅳ. 1.). 둘째로, 우리는 ‘언어그림 이론’이 언어의 다양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언어놀이 이론’을 통해 비판할 것이다(Ⅳ. 2.). 셋째로, 우리는 ‘언어놀이 이론’이 어떠한 점에서 ‘언어/세계’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는지 논의할 것이다(Ⅳ. 3.). Ⅴ. 가다머는 ‘창작자/향유자’의 이분법에 반대하여 놀이의 ‘역동성’에 주목한다. 그는 예술을 창작자나 향유자에게 귀속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비판하기 위해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으로서 놀이’ 개념을 제시한다. 예술은 마치 놀이처럼 매번 새롭게 반복되는 자기표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실현한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한 순간의 주관적 체험을 통해 완벽하게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가능하지 않다. 놀이에서 이루어지는 왕복운동은 놀이하는 사람에 의해 지배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는 창작자나 향유자의 미적 체험에 근거하여 예술 작품을 이해한 기존 ‘천재 미학’과 ‘체험 예술’을 요약적으로 살펴볼 것이다(Ⅴ. 1.). 둘째로, 우리는 ‘천재 미학’과 ‘체험 예술’이 놀이의 역동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으로서 놀이’ 개념을 통해 비판할 것이다(Ⅴ. 2.). 셋째로, 우리는 ‘예술작품의 존재방식으로서 놀이’ 개념이 어떠한 점에서 ‘창작자/향유자’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는지 논의할 것이다(Ⅴ. 3.). Ⅵ. 데리다는 ‘기표/기의’의 이분법에 반대하여 놀이의 ‘자율성’에 주목한다. 그는 기호를 자기촉발적 목소리의 구조로서 해명하고자 하는 시도를 비판하기 위해 ‘기의 없는 기표의 놀이’를 제시한다. 기호는 마치 놀이처럼 다른 어떠한 실재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대리 보충이 만들어내는 기표의 무한한 연쇄를 기의의 생생한 현전으로 끝내고자 하는 시도는 허구에 불과하다. 놀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토대란 놀이 밖에 놓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는 기의와 기표의 관계를 문자와 목소리의 관계에 비유한 기존 ‘로고스중심주의’를 요약적으로 살펴볼 것이다(Ⅵ. 1.). 둘째로, 우리는 ‘로고스중심주의’가 놀이의 자율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기의 없는 기표의 놀이’ 개념을 통해 비판할 것이다(Ⅵ. 2.). 셋째로, 우리는 ‘기의 없는 기표의 놀이’ 개념이 어떠한 점에서 ‘기표/기의’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새로운 사유를 제시하는지 논의할 것이다(Ⅵ. 3.). Ⅶ.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데리다는 각각 놀이의 ‘다양성’, ‘역동성’, ‘자율성’에 주목한다. 놀이는 고유한 내적 규칙에 근거하여 자신을 매번 새롭게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즐거움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활동이다. 언어, 예술, 기호, 세계는 마치 놀이처럼 자기 정당성을 바탕으로 늘 끊임없이 형성됨으로써 그 어떠한 실재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유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장 근본적인 토대로부터 의식 속에 완벽하게 표상해내어 확실성에 이르고자 한 근대적 형이상학의 기획을 비판한다. 우리는 놀이 개념을 통해 ‘토대주의’, ‘표상주의’, ‘주관주의’라는 인식론적 구도를 벗어나 언어, 예술, 기호, 세계를 새롭게 이해해볼 수 있다. 첫째로, 우리는 ‘토대주의’에 반대하여 ‘정합주의’를 주장할 것이다(Ⅶ. 1.). 둘째로, 우리는 ‘표상적 진리’에 반대하여 ‘해석학적 진리’를 주장할 것이다(Ⅶ. 2.). 셋째로, 우리는 ‘주관성’에 반대하여 ‘상호주관성’을 주장할 것이다(Ⅶ. 3.). 참고문헌 (Refer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