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치체제 변화와 김정은정권 군사쿠데타 가능성 연구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提示:本资料为网络收集免费论文,存在不完整性。建议下载本站其它完整的收费论文。使用可通过查重系统的论文,才是您毕业的保障。

이 논문의 목적은 2011년 12월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되면서 3대세습을 완성한 김정은정권의 통치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현재 북한정치체제를 규정해보고자 한다. 또 향후 북한의 정치...

이 논문의 목적은 2011년 12월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되면서 3대세습을 완성한 김정은정권의 통치 방식을 분석함으로써 현재 북한의 정치체제를 규정해보고자 한다. 또 향후 북한의 정치체제 변화 여부를 고찰해볼 때 김정은정권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빈번한 독재정권의 변동 유형인 군사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지를 전망해보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내세우고 ‘수령 중심의 당·국가 융합체제’인 유일지배체제를 고수하는 전형적인 전제정치체제로 규정할 수 있다. 김정은정권은 2013년 8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을 개정하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새롭게 주창했다. 이를 볼 때 당·국가 체제를 계속 유지시키면서 오히려 수령제를 더욱 강화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수령이라고 불리는 1인의 절대 권력자가 노동당을 통해 국가기구와 군대, 근로단체 등을 통제하는 정치체제로서 현재 북한은 공산주의 이론에서 봤을 때에도 레닌식 집단지도체제가 아니라 스탈린식 개인 절대권력체제라고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정권도 선대에 이어 북한을 전제정치로 통치하고 있으며, 고위간부들에 대한 처형과 숙청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수령제를 강화시켜나가는 것에 비추어볼 때 기존 정치체제를 바꿀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김정은은 취임 초기인 2013년 2월12일 3차 핵실험을 단행한 데 이어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6일 4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집권 5년차를 맞는 2016년 5월 36년만에 7차 당대회를 열기로 한 김정은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통치 스타일을 보여야 하는 시점에서 우호적 대외관계를 만드는 대신 ‘선대 따라하기’로 권력 공고화와 내부결집에 여전히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을 방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정권이 수령제를 강화시킬수록 향후 개혁개방에 나설 여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본격적인 개혁개방정책이 도입될 경우 외부정보가 걷잡을 수 없이 유입될 것이고, 주민들의 사상이 바뀌면서 지금과 같은 체제보존이 어려워질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의 통치원리인 ‘유일사상’도 동구권의 공산체제가 해체되던 시기 체제보존을 위해 탄생했다. 1990년대 소련 및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붕괴가 잇따르던 시기에 김정일은 주체사상에 ‘수령의 영도’ 대목을 포함시키고 김일성이 표방한 자주노선을 강화시켰다. 아울러 김정일은 공산권의 붕괴가 개혁개방에 따른 사상 변질과 군사력 약화에서 왔다고 보고 이때 선군사상을 선포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북한에서 1993년 발각돼 수포로 돌아간 인민무력부 소속 장교들이 주도한 쿠데타 시도가 있었다.
북한에서 소련 군사유학생 출신 인민무력부 간부들이 주축이 돼서 쿠데타를 도모한 일이 있었다. 1990년까지 소련에서 체류하면서 급변하는 주변 공산권 국가 정세를 체험하고 북한으로 돌아간 군부 엘리트들이 체제에 모순을 느끼고 불만을 품으면서 정변을 주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사 직전에 발각돼 소련유학생 출신 장교 200여명이 처형되고 그들의 가족 1000여명이 평양에서 숙청 추방되면서 사건은 종결됐다. 김정일은 이후 1997년 신년사를 통해 ‘선군사상’을 처음 선포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무력 확장에 더욱 골몰하면서 개혁개방을 철저히 배격했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배격해 체제 보존에는 성공했지만 경제기반 구축에는 실패했다. 북한 경제가 1990년대 대기근을 불러온 모순된 경제구조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이 최근에도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 등이 내놓은 ‘2014년 북한경제 평가와 2015년 전망’ 등 연구자료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북한의 농업생산과 산업생산 모두 침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북중관계가 경색된 여파로 북중무역도 크게 줄어들면서 대외교역도 침체에 빠졌다.
결국 북한의 개혁개방이나 경제구조 수준은 소련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토스트(개방)를 선언하고 ‘신 사고’에 따라 동서냉전 종식이 선언되던 1990년대에서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믿었던 우방국인 소련이 붕괴된 데다 그 여파로 내부에서 쿠데타가 시도되면서 북한 지도부가 큰 충격을 받고 지금의 유일지배체제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북한의 정치·경제·사회 구조는 1990년대에 머물러 있지만 북한에서는 시장이 급성장하고 신흥 자본가인 ‘돈주’가 등장해 당국의 비호 아래에서 각종 자본주의식 경영사업을 하는 기형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탈북단체가 USB 등에 담아서 들여보내는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남한 내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이 가능한 것은 북한에서 당국이 통제할 수 없는 현상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현재 김정은정권이 처한 현실은 안으로는 시장 확대로 사실상 북한주민들이 자본주의를 체험하고 있으며, 밖으로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정권교체를 압박하는 형국이 조성되고 있다. 2014년에 이어 2015년에도 유엔 총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고 북한의 인권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한 것은 북한에 대해 ‘정치적 자유’를 종용하는 것에 다름없다.
정치·인권 수준은 과거 프랑스혁명 이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시장의 활성화로 개인주의가 스며들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특히 무역과 외교가 전쟁을 대신하는 현대사회에서 아무런 경쟁력도 갖추지 못한 북한이 자구책으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만 가중시킬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은 노동당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군부와의 갈등을 고조시킬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은 취임 3개월만인 2012년 7월15일 리영호 총참모장을 숙청한 데 이어 2013년 12월12일 자신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국가전복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처형했으며, 2015년 4월30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했다. 이렇게 군부의 유력자들을 차례로 제거해나가면서 2016년 신년사에서 ‘당군’이라는 말을 사용해 ‘당의 군’에 대한 강력한 통제를 예고했다. 이는 김정일의 선군정치가 군부 엘리트들의 쿠데타 시도 이후 나온 점을 간과한 것이다. 이렇게 김정은 식 군부 다스리기가 압박과 통제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향후 군부파와 갈등을 키울 불씨 또한 커져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고든 털럭이 분석한 것처럼 역사적으로 독재자의 종말은 측근이 일으킨 정변으로 인해 앞당겨지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면 지금 김정은정권의 불안전성에 대해 군이 가장 큰 불만을 품고 동요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파괴력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지금 북한에 1990년대 소련유학생 출신 장교들의 쿠데타 시도 이후 두 번째 거사를 준비해온 세력이 있고, 이들이 가장 절묘한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경우 김정은정권의 남은 임기 중 정변은 언제라도 시도될 수 있다.

免费韩语论文韩语论文
免费论文题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