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관의 문화정치학적 특성과 실천행위로서 전시의 역할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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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미술관은 주로 미학적으로 선택된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신성한 곳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며, 사회구조 속에서 보여...

오랫동안 미술관은 주로 미학적으로 선택된 예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신성한 곳으로 이야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기존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며, 사회구조 속에서 보여지는 공공미술관의 특성과 전시의 역할에 대해 연구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공공미술관은 '오인'에 의해 성립된 '상징권력'을 기반으로 사회 구조 속에서 일종의 문화 권력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를 가시적이고 공적인 실천 형태인 '전시'를 통해 정당화하고 있는 곳임을 살펴보았다. 이때 '오인'과 '상징권력'은 문화를 통한 권력의 재생산을 통찰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문화 이론의 주요 개념으로, 공공 미술관이 문화정치학적 특성을 보이고 있으며, 전시가 실천 행위로서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에 대한 분석의 토대로 작용하였다. 이를 중심으로 살펴 본 미술관은 정치, 경제 등 사회적 구조의 중층적인 관계망으로 형성된 교차 공간으로 존재하며, 예술 작품을 다양한 전시의 형식을 통해 사회적, 문화적 맥락으로 재해석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공유하고 소토하는 장소였다. 즉, 미술관은 문화제도 기관으로서 문화장에서 생산된 동시대 미술작품에 인정(recognition)을 부여함으로써, 한 사회의 지배 권력과 자본, 조직들을 미술 양식이라는 사회적 상징물들로 가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전시의 형식을 통해 공중(公衆)들에게 선보임으로써, 자연스럽게 감상을 통한 '취향'을 제공하며 이를 다시 사회로 구조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때 큐레이터는 특정한 이미지에 분류방식의 우선권(priority)을 주는 '선택'을 통해 미술관의 '상징권력'을 강화시킨 행위자들이다. 동시에, 이들은 예술장의 자율성을 반영하여 이를 제도적으로 중재하여 사회에 수용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도 함께하고 있다. 이 중에서도 공공 미술관은 사회 구조 속에서 제공되는 공적 재원을 토대로 일종의 대표화 된 코드체계를 생성함으로 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이는 공공 미술관이 다른 미술관보다 더 높은 '상징권력'의 획득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공중'에게 이를 평등하게 배분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도 함께 부여 받고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은 국가 행정 주도 아래 건립되어, 각 정권의 문화 정책의 맥락에서 전시를 진행함으로써, 그 구체적인 사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즉, 국가라는 강제를 기반으로 한 공공영역의 문화제도 기관으로서, 강력한 공식화와 제도화의 서열을 통해 가장 높은 문화 권력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즉 각 정권들은 국립미술관을 통해 "문화를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정책 아래, 실제로는 그들의 정치적 지향점을 '전시'라는 형태를 통해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지시켜왔던 것이다. 그 첫 번째는 1957년 경복궁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신(前身)]에서 개최된 <인간가족 The Family of Man> 전(1957)이다. 이 전시는 뉴욕 현대 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에서 기획된 세계 순회전으로, 당시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이 보편적 휴머니즘 사진으로 구성된 작품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모마가 미 정보국(USIA)과 함께 미국 냉전의 의제들을 전시를 통해 확산시킨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 전시가 한국에 보여준 문화 권력의 강력한 영향력 중 하나는 당시 예술 사진과 리얼리즘 사진으로 양분되어 있던 한국 사진계에 생활주의 리얼리즘이 지배적 미학으로 자리 잡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에 있다. 이는 강력한 미국의 정치, 경제 자본과 공공미술관인 모마의 상징권력이 한국의 국립미술관과의 공모를 통해 국민들의 시각 인지체계에 인준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19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1993)과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 전략에 관련된 것이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1993년도에 성립된 '문민정부'의 국제화 정책의 일환으로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의 제 67회 <휘트니 비엔날레 Whitney Biennale>전을 국내에 유치한 것이었다. 이러한 대규모 국제전을 유치함으로써, 문민정부는 문화정책을 홍보하고, 또 이러한 관계를 활용하여 한국미술을 해외에 선보이자는 취지로 진행되었다. 당시 휘트니 미술관도 미국의 클린턴 정권의 '문화적 다양성' 등을 적극 수용하며, 미술계의 '타자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제 67회 비엔날레를 <경계선 Boderlines>(1993)이란 제목 아래 여러 인종, 문화, 성(性), 지역으로 확장된 주제를 채택하여 전시로 재현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매체도 퍼포먼스, 미디어, 영화, 설치 등이 주축을 이루는 실험적인 전시로 기획되었다. 뉴욕 전시 종료 직후, 한국 국립현대미술관에서 61명 작가의 107점으로 개막된 이 전시는 그 동안 한국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정치, 인종 등의 주제뿐만 아니라, 대단히 실험적인 매체의 작품들로 인해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또 휘트니미술관의 큐레이터 팀과 실시간 협력으로 진행되었던 이 전시를 계기로 한국 측은 행정 주도의 조직 체계 때문에 소홀했던 큐레이터 십의 중요성이 부각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는 양 국가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주로 미학적인 비평이 주를 이루었던 것에 반해, 한국은 전시 비용(curator fee), 검열 등과 관련한 국가 기관으로서 위상과 역할에 대한 지적이 더 많았다.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가 국가를 문화적으로 표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 전시로 인해 문민정부의 자국 내 문화 정책 홍보에는 성공하였지만, 미국 측에 제안했던 한국 작품에 대한 기획(안)들이 거부되면서 한국미술의 국제화 논리에는 실패하였다. 한편 한국 미술계는 이 전시를 통해 많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우선 국립현대미술관은 보다 실험적이고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수용할 수 있는 전시 공간으로 성격을 확정되었다. 특히 눈여겨 볼 변화는 이 전시를 통해 미술관은 당시 한국에서는 거부해 왔던 정치, 사회적 영역 까지 전시의 주제를 확장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듬해 민중미술 전시로 이어졋다. 아울러 젊은 작가들의 설치, 미디어 작품 등도 활발히 등장하였다. 전시 제목에도 '경계'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특히 1995년도 한국의 첫 국제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가 <경계를 넘어 Beyond the Borderlines>라는 제목으로 개막되었고, 이때 전문 인력들은 대부분 국립현대미술관의 '휘트니 비엔날레'를 진행한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1993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전은 미국의 휘트니 미술관의 '상징권력'과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의 공모로 인해 한 사회의 '취향'의 문제, 즉 한국 현대미술의 '양식'에 대한 개념에 영향을 주고, 이를 확장한 것이기도 하였다. 세 번째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문화권력 기관으롯, 당시 비 제도권 미술이었던 '민중미술'을 <민중미술 15년 : 1980-1994> 전(1994)를 통해 동시대 미술 양식으로 공인한 사례이다. 이를 위해 민중미술의 대표 조직인 '민족미술협의회'와 미술관은 협력체제를 이루었다. 후반부에 양 기관의 작품 선정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여, 큐레이터 심에 대한 이해 부족이 노출되기도 하였지만, 결국 총 3백 18명 작가와 6백 여점이 출품된 대규모 전시가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그동안 정치권력의 탄압을 받아왔던 민중미술이 국가 미술제도 기관으로부터 공인되었다는 것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민중과의 소통을 중요시 했던 목적에 부합하여 많은 관람객들이 미술관을 방문하고 감상하였으며, 대표 작가들은 작품이 소장 되었다. 반면, 전시 구성 및 작품 선정과 관련하여 명확한 기획의도에 대한 비판과 함께 '민중미술의 장안평'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 전시로 인해, 그동안 사회적으로 탄압받고, 금기시 되어 왔던 민중미술은 마침내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 등에서 다루어질 수 있는 문화 컨텐츠가 되었다. 한편, 결과적으로 이 전시는 민중미술이 국가 미술기관이라는 '상징권력'을 통해 미술사의 한 양식으로 '공인' 되는 동시에, '민중미술의 장례식'이라 스스로 인정할 만큼 미술 운동으로서의 역할을 마감하였음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예술적 실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공공 미술관은 사회구조 속에서 '오인'으로 성립된 '상징권력'을 통해 문화 권력을 형성하고, 전시의 실천 형식을 통해 이를 분배하고 재구조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권력은 공공 미술관을 찾아 온 관람객이라는 '공중'을 위하여 미술 작품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취향'을 형성시키는 형식을 통해 이를 재생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공 미술관은 오히려 이러한 특성에 의한 사회와 공중에 대한 영향력 때문에, 공공성과 영향력에 대한 책임도 동시에 요구 받고 있다. 즉, 상대적 자율성을 추구하고 있는 당대의 예술을 다양한 전시의 형태를 통해 올바르게 선보이는 역할을 수행해야하는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국립 현대미술관처럼 국가의 통치성을 바탕으로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가의 공공서비스라는 임무를 위하여 공적 재원을 전시 형식을 통해 재분배하는 국가 미술관의 역할은 훨씬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들이 공공 미술관이 지향해야 하는 문화정치학적 특성의 방향이며, 실천 행위로서 전시의 올바른 역할이기도 한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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