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의 목적은 최세진(崔世珍)이 편찬한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중심으로 최세진의 이중언어(二重言語) 교육을 고찰하는 일이다.
최세진은 조선 전기 국어학자이며 중국어학자이다. ...
본 연구의 목적은 최세진(崔世珍)이 편찬한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중심으로 최세진의 이중언어(二重言語) 교육을 고찰하는 일이다.
최세진은 조선 전기 국어학자이며 중국어학자이다. 최세진은 중국어학에 능통하고 중국어 연구와 교육에 평생을 바쳐온 학자로 그가 50대 만년에 지은 「훈몽자회」는 국어·중국어와 별개의 저서일 수 없다. 「훈몽자회」 주석(註釋)에는 812개의 당시 중국어 구어 어휘와 국문 명칭을 수록하고 있다. 자석(字釋)에 있어서도 당시 구어의 어휘 의미로 풀이한 것이 있어, 이 책은 국어학·중국어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로 볼 때 최세진은 중국어에 능통했으며 국어와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이중언어학자였다.
본 연구는 이중언어학자였던 최세진이 1527년에 아동들을 위해 제작한 「훈몽자회」가 이중언어 교육을 위한 학습서였음을 밝히는 글이다.
먼저 제Ⅰ장은 서론으로 연구의 목적, 선행 연구 개관, 연구의 방법 및 논문의 구성을 기술하였다.
제Ⅱ장은 조선시대 이중언어 교육에 관해 살펴보았다. 이중언어 사용이란,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언어를 알고 구사하는 일 또는 그러한 능력을 가리킨다. 심리언어학적 연구에 의하면 초기 이중언어 사용자(early bilingual)를 만드는 가장 좋은 나이는 4-5세이다. 그러나 이보다 빠른 것이 좋다는 학설과 늦을수록 좋다는 학설도 있으나 전자가 우세하다. 신경학자들에 의하면 이중언어 사용자는 대뇌의 양반구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다른 대뇌의 우열현상을 나타낸다고 한다. 확실한 것은 이중언어 사용자(bilingual)들은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오른쪽 반구가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조선 초기에도 주변국과의 외교를 위해서 사역원(司譯院)과 승문원(承文院)을 설치하여 중국어 통역관을 양성했다. 이는 이중언어 사용자 양성 기관이었고 성종 임금의 경우는 직접 중국어를 공부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추세를 감안해 볼 때, 조선시대에도 외국어 교육의 열기가 있었고, 최세진은 이미 이중언어 교육의 가치를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자는 몇 천 년 동안 우리 문화의 수단이었다. 국어어휘의 70%가 한자어(中國語)로 되어 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당시 국제경쟁에서 낙후되지 않기 위해서는 중국 문자인 한자를 교육하고 학습하는 것이 시대에 맞는 일임을 그는 파악하고 있었다. 필자는 조선 초기에 추구한 이중언어의 학습과 특징 그리고 이중언어의 바람직한 학습 방법을 고찰했다.
제Ⅲ장에서는 조선 시대의 주요한 아동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서당의 교육을 중심으로, 서당에서는 어떠한 교재로 우리 국어와 한자어(中國語)를 어떻게 지도했는지를 살펴보았다. 조선조의 초등교육기관에 해당하는 것은 서당이다. 서당에서 사용했던 교재 중 인륜만을 강조하는 책보다「훈몽자회」와 같이 우주, 역사, 수양법, 교육, 자연, 실생활 등과 관련된 교재를 선택했다. 아울러 아동교육 교재의 내용은 서당의 많은 교재 중 한자와 국문이 동시에 기록된 교재를 대상으로 하여 부지불식간에 국문을 깨치게 한 면에 주목했다.
제Ⅳ장에서는 최세진의 이중언어 교육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훈몽자회」에 수록된 근대중국어 어휘를 살펴보았다. 중국어학에 입문하는 데는 백화 어휘(白話語彙)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이 때문에 「훈몽자회」의 편찬 목적은 이 요구를 수용하고자 한자(文言)와 함께 백화 어휘를 부기하였다. 퇴계의 예에서 보듯 당시는 백화 어휘에 대해 초보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훈몽자회」는 백화 어휘의 필요성을 수용하여 주(註) 속에 속(俗)이라는 표지로 중국어 어휘를 수록하였다. 최세진은 속(俗)으로 대표되는 중국어 어휘 812개를 제시했다. 이는 한자를 공부하면서 당시의 백화 어휘까지 소화시키려고 한 배려였다. 이러한 최세진의 의도는 명백히 이중언어 교육의 실상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울러 본고에서는 이 백화 어휘를 가르친 것이 최세진 당시 조정과 언중들의 관심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제Ⅴ장은 「훈몽자회」의 체제와 목록 체계를 고찰하는 장이다. 「천자문」은 고사(故事) 중심으로 되어 있어 아동의 수준이 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웠다. 「유합」도 한자를 유별(類別)로 분류하고 있으나 실자(實字)가 적어 사물의 형상과 이름의 실제를 익히기 어려웠다. 이에 최세진은 한자 학습을 쉽게 하기 위해 「유합」의 내용을 보완하여 「유합」과 같은 형식인 유별(類別) 분류 체계로 구성된 「훈몽자회」를 편찬하였다. 각 분야별로 상권 16개 부류, 중권 16개 부류, 하권 1개 부류, 총 33개 부류로 정리했다. 「훈몽자회」는 우리 나라와 중국에서 쓰는 말들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이중언어 교육적인 측면이다.
제Ⅵ장에서는, 「훈몽자회」에서 제시한 3,360자의 품사를 살펴보았다. 본고에서는 하권의 1개 부류, 곧 잡어로 처리하고 있는 것을 김진규(1993)의 분류에 따라 14부류로 나누었다. 「훈몽자회」에 정리된 글자들은 생활중심의 어휘였다.「훈몽자회」<범례 2조>에 ‘한 물건의 이름에 글자가 둘, 셋 또는 그 속칭 및 별명이 둘, 셋이 있는 경우 어떤 한 글자 밑에 모아 싣지 않고 그 글자들 밑에 나누어 싣는다.’고 했는데 이는 유의어(類義語)에 해당된다. 「훈몽자회」의 유의어는 어휘의 양이 풍부했던 최세진의 언어생활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유의어를 품사별로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Ⅶ장에서는 「훈몽자회」를 통한 이중언어 교수법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최세진의 언어교육의 이상은 문자와 사물이 둘이 아닌 하나로 합치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최세진의 언어관을, 국어학습과 중국어학습을 시도한 「훈몽자회」를 통해 살펴보았다. 「훈몽자회」<범례 9조>에서 보듯 한글을 익힌 뒤에 중국어를 익히도록 한, 최세진의 이중언어 교수법을 고찰하였다. 최세진의 국어 교육관에서는 「훈몽자회」가 조선 전기 국어 연구의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점과 ‘언문자모’를 통해 국어를 정리한 내용을 분석했다. 「훈몽자회」의 ‘언문자모’에서 자음과 모음의 음가를 최초로 지정했으며, 자모 배열의 전통을 확립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한글을 가르치기 위한 국어학자로서의 태도였다. 그리고 최세진의 중국어 교육 방법을 고찰했다. 최세진의 중국어 교육 방법은 (1)언어학습 원리에 입각하였고, (2)중국어의 특성에 따른 교육을 실시했으며, (3)우리말과 대조에 의한 교육을 실시했다.
본문과 부록의 표에 있는 ‘순서’라는 용어는 「훈몽자회」에 실린 3,360자의 차례이며, 쪽의 ‘상·중·하’는 각각 상권·중권·하권을 의미한다. 앞쪽과 뒤쪽은 각각 영문 a와 b로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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