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센서스 지도화를 통한 지역의 이해 [韩语论文]

资料分类免费韩语论文 责任编辑:金一助教更新时间: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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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구조는 사회경제적인 과정과 자연적인 과정의 결과물이자 그 과정이 전개되는 장소로서, 생산과 재생산의 매체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공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인구를 배제...

공간구조는 사회경제적인 과정과 자연적인 과정의 결과물이자 그 과정이 전개되는 장소로서, 생산과 재생산의 매체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공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인구를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으며, 더욱이 다양한 공간변화를 가져오는 요소로서 인구를 포함한 각종 센서스자료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공간구조 이해의 기초가 된다.
그러나 센서스에 대한 접근이 주로 해방이후 남한지역을 중심으로 데이터베이스화되고, 분석․이용되고 있어 일제시대 센서스자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또한 일제시대 사회현상의 공간구조와 분포에 관한 접근이 부족한 실정이다. 실제로 일제시대에 일어난 여러 변화는 지역성의 변화를 가져오거나, 공간구조의 재편성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삶에 다양한 형태로 잔존하고 있기 때문에 일제시대의 지역이해는 오늘날 사회․경제 등 공간구조 이해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일제시대의 사회․경제적 변화가 한반도 전체의 공간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공간구조를 조망하고 지역을 이해함에 있어 센서스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연구는 주로 일제의 식민 정책이 우리의 공간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특정자료 혹은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일제시대 센서스의 시기별 조사항목의 변화를 통해 일제시대를 거시적 이해하고, 센서스 지도화를 통해 공간패턴을 비교, 변수 간 상관관계파악하고, 지역혼합지수를 산출, 지역화하여 지역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즉, 당시 지역의 복합적인 지표인 일제시대 센서스자료를 가지고 분석 및 지도화를 통해 지역화 하고자 하는 것이다.
연구를 위해 첫째, 일제시대에 간행된 통계연보를 기준으로 센서스항목의 시계열적 추이를 파악하여 한반도에 나타난 거시적 흐름의 변화를 찾아보고, 둘째 일제시대 센서스자료의 지도화를 통해 지역별 공간분포양상과 분포의 패턴을 비교, 센서스 항목 간 상관관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끝으로, 센서스자료 가운데 우리나라 전체를 상세한 공간적 단위로 조사한 1930년 국세조사자료 가운데 문자해독수준 등 사회․문화적 변수를 중심으로 지역혼합지수를 산출하여 지도화, 지역화 하였다.
연구지역의 시간적 범위는 국권피탈에서 해방까지의 일제시대이며, 공간적 범위는 한반도 전체로 하였다. 항목연구는 해당년도 총독부통계연보를, 지도화․지역화연구는 1930년 국세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1927년 [조선전도]를 기본 지도로 이용하면서 행정구역을 수정하여 총 233개 시․군을 연구하였다.
일제시대 센서스 조사항목의 시기별 변화연구와 지도화, 상관관계, 지역화 과정을 통한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센서스 항목 연구에 따른 특징과 변화를 보면 연도별 목차의 항목 수와 소항목수는 1920년대를 기준으로 증가하다가 감소하였는데 이는 일제의 식민정책 기본 틀의 진행단계와 관계있는 것이다. 소항목수와 조사항목의 공간적 단위는 항목의 중요도를 말해주는 요소로 중요 항목은 호구, 농업, 교육, 재정이었다. 이를 통해 일제시대는 농업중심의 1차 산업이 중시되었던 사회이며, 차별적인 교육정책은 식민정책의 중요 요소였으며, 조선총독부는 당시 한국의 최대기업체로 세금과 전매사업을 주관하면서 재정을 중시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공업 항목은 독립목차로 존재하지 못하고 상업이나 광업과 함께 다루어졌다.
조사항목 연구를 통해 일제시대 사회변화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1910년대는 식민지지배를 위한 기초 작업이 수행되었던 시기로 타시기에 비해 호구와 토지조사 분야가 자세하게 진행되었고, 반면에 1920년대는 식민지배의 지속적 정착을 위한 사회 기간시설의 확충을 바탕으로 토목 및 축항 항목이 등장 하였고, 항목의 일관성 있는 조사가 다른 시기와 구분되는 특징이었다. 1930년대 이후는 황국식민화정책과 전쟁 재정확보와 관련하여 전매항목의 비약적 증가와 ‘종교’항목에 포함되었던 ‘신사’의 ‘교육’항목으로의 이동을 들 수 있다.
둘째, 항목별 센서스 지도화로 분포를 비교하여 보면 지역적 차이가 나타나는데 농업, 수산업, 광업의 경우 자연조건의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지역별 불균등한 분포는 당연하다. 그러나 문자해독수준이나 상업, 교통업, 공무자유업 등에서 나타난 심한 지역격차는 일제 식민 정책의 영향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영향은 전국에 모두 동일하게 미치거나, 변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해안을 중심으로 일본의 영향이 크게 나타났는데, 서해안의 경우 개항장과 철도를 중심으로, 남해안은 부산을 기점으로, 동해안은 1930년 이후 어업, 광업, 공업 및 교통업의 발달을 통해 관북지역의 변화가 급속히 나타났다.
개항장은 1876년 부산을 시작으로 원산(1880), 인천(1883), 목포, 진남포(1897), 군산, 성진(1899), 용암포(1906), 청진(1908), 신의주(1910), 웅기(1921)로 지역변화의 구심적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내륙과 산지로 갈수록 일본에 의한 근대화의 폭이 작게 나타나는데 북부지방보다 남부지방의 산간내륙지역에서 변화의 폭이 더욱 작다. 그것은 북부지방은 산간내륙지역이라도 국경지역으로서 군사요충지로, 공업, 광업 중심지, 발전소 댐건설지역, 벌목지로 개발되면서 철도가 부설되고, 일본인의 진출, 일본 자본의 침투가 중부 이남의 산간지역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부 이남의 산간지역, 특히 경상남북도의 내륙산간지역은 문자해독수준을 비롯하여 모든 분야에서 저조한 상태로 여전히 농업위주의 1차 산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항목간의 상관관계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독서수준1과 일본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독서수준2에 따라 2, 3차 산업이 특화되는 양상이 나타나는데 특히 3차 산업인 상업(0.8-0.9), 공무자유업(0.8), 교통업(0.6-0.8)과의 관련이 높게 나타났다.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주요 지역은 경성부와 개항장, 북부국경지대, 전통적인 행정중심지로 이는 일본의 식민정책에 따른 철도교통과 항만의 발달, 북부지역의 군대와 공업정책과 맞물린 일본인의 대거 이주 및 한국 내 경제활동인구의 선택적 이동과 관련이 있다. 공업과 광업의 상관관계는 유의미한 값이 산출되지 못했고, 오히려 공업과 상업에 있어 0.474의 약한 상관관계가 성립되었는데 이는 광업이 채광을 중심으로 개발되어 한국의 산업발달 보다는 일본으로 반출되었기 때문에 유기적 관련이 적었다.
셋째, 지역혼합지수 산출과 지역화에 따른 결과는 다음과 같다. 5분위 지역화를 통해 한반도 전체를 양분하면 북부의 우세지역과 남부의 미비지역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러한 불균등한 공간분포는 일본의 전략적 정책에 의한 북부지역의 중요성이 1930년대에 이르러 경제적 정책과 결부되면서 북부지역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체에 해안과 철도를 따라 점의 형태로 나타나는 탁월지역을 중심으로 우세-보통-저조-미비지역으로 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중부 이남의 내륙 산간지역으로 묶이는 미비지역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교통로(철도, 도로, 항만)와 연관이 있는데 교통로를 중심으로 식민정책에 의한 지역의 변화가 가장 강하게 나타나고 멀어질수록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중부이남 내륙지역이 1930년 당시 매우 낙후된 지역으로 나타났고, 북부지방이 남부지방보다 우세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탁월지역은 독서수준1과 2의 비율이 높은 곳으로 일본인의 분포가 많고, 농업보다는 광업, 공업, 상업, 공무자유업 등 2, 3차 산업비중이 높은 도시지역이었다. 내륙보다는 해안지역에서, 주요 항구와 지방행정도시, 주요 철도역에 속하는 곳으로 군산부, 인천부, 통천군, 신의주부, 진남포부, 목포부, 고성군(강원), 고양군, 청진부, 원산부, 평양부, 봉산군, 경흥군 등 이다. 내륙지역이지만 대구는 경부선 연선의 도시로 상업과 농산물의 집산 거점으로 공업도시, 교통중심지로 성장하였고, 안동, 영양, 예천 등을 비롯한 경북 북부 내륙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발전의 축에는 철도와 항만을 바탕으로 한 교통체계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다.
우세지역은 황해도와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지역의 밭농사지역과 호남선 연선 지역, 남해안 지역, 강원도와 관북지역의 광업, 공업지역으로, 철도와 간선도로 상에 입지한 군중심지로 탁월지역 근처에 나타났으며 반면에 저조지역은 미비지역 근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비지역은 인구의 80% 이상이 한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문맹률이 높은 곳으로 1차 산업의 비중이 높고, 3차 산업의 발달은 매우 미약한 곳으로 수산업, 광업, 상업, 교통업, 공무자유업, 가사사용인, 기타유업자의 비율이 전체 평균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경상남도, 경상북도 지역과 함께 보은과 단양을 포함한 충청북도 산지 지역 역시 근대화의 부침이 거셌던 충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해도와 평안남도와 평안북도 지역은 전체적으로 보통 이상의 지역으로 나타났고, 경성부, 평양부, 부산부, 군산부, 원산부를 정점으로 주변지역으로 갈수록 지역혼합지수가 낮게 나타나는 분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런 패턴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부산으로 1443년 이후 倭館이 존재하면서 남동 지역의 관문으로 계속해서 외래문화의 수용이 있어왔고, 일제시대 경부선의 종착역이자 항구로 더욱 발전한 반면, 종래의 영남 내륙으로의 교통로 발달이 미약하고, 낙동강의 역할이 쇠퇴하면서 부산은 주변지역에 비해 더욱 집중되었던 것이다.
일제시대 이전부터 자연환경과 정치적 이해관계 및 외교환경에 의해 있어왔던 불균등한 지역구조는 일제시대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항만과 철도 등 전략적 요충지를 중심으로 급격한 인문지리공간의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산업화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지역구조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역동적인 지역구조의 변화 속에서의 일제시대의 지역구조 분석을 위해 센서스 지도화와 지역혼합지수에 의한 지역화를 통해 이해하고자 했으나 기술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지역이해의 측면과 지역구분의 방법론의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가지며, 5개의 지역화에 대한 지리적 공간분석은 앞으로 더 고찰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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