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의 적합한 형태는 담화 환경이나 언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ST에서 사용한 언어 표현이, TT에서는 언어 환경에서 사용되기에 부자...
언어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의 적합한 형태는 담화 환경이나 언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ST에서 사용한 언어 표현이, TT에서는 언어 환경에서 사용되기에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본고에서는 영어의 대명사 표현이 한국어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를 한국어의 생략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영어의 대명사는 담화환경에서 구정보로 설정된 항목을 언어표현으로 표시하는 기능을 하는데, 한국어에서는 이와 같은 기능을 하는 표현으로 대명사와 생략이 있다. 영어의 대명사 기능이 한국어에서는 대명사와 생략으로 분화되어 나타나므로 이 둘의 기능은 서로 다르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본고의 물음은 ST에서 동일한 항목을 지시하는 대명사가 반복적으로 사용될 때, TT에서 ST의 대명사가 선별적으로 생략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 물음에 답함으로써 한국어의 생략 규범과 이를 통한 자연스러운 대명사 번역을 살펴보는 것을 본고의 목적으로 하였다.
이 이유를 찾기 위해 먼저 한국어의 생략 현상을 ‘연속주제생략’의 관점으로 살핀 이론을 살펴보았다. 이 이론은 한국어 등 담화중심언어가 뒤이은 문장들이 같은 주제를 이야기 한다는 점을 표시하기 위해 연속 주제를 생략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번역 현상에 적용해 보았을 때, 실제로 ST에서 연속 주제로 등장한 대명사 표현은 TT에서는 생략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어는 비주제 항목이 생략이 되는 경우도 있어, ST 대명사의 생략을 모두 설명해주지 못했다.
TT의 생략이 비주제, 연속 주제가 아닌 항목에서도 나타난다는 점에서, 한국어의 생략을 문장내의 기능이 아닌 청자와 화자가 공유하는 항목의 생략으로 가정하였다. 한국어에서 한 번 소개된 항목은 뒤이어 반복될 때 주제 여부에 상관없이 생략이 가능하다는 가정은 활성화 지시체 목록(Salient referent list)이론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이론은 일본어의 다발적인 생략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담화가 일어나는 시점에서 중요한 항목은 청자의 머릿속에 저장되어있으며 쉽게 복구가 가능하므로 모두 생략된다는 것이었다. 이를 영한번역에 적용하였을 때 이 이론은 주제 표현 이외 대명사 생략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점을 지닌다. 이미 담화 내에서 소개된 대명사 항목이 생략된 이후에도 텍스트 내용이 발전하면 다시 대명사나 명사구로 실현되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본고에서는 구정보의 생략이 일어나는 범주를 설정했다. 즉 청자의 인지에 활성적이라해도, 구정보가 출현하는 서술의 관점이나, 공간, 시간 등의 변화가 일어나면 ST의 대명사가 생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 공간, 시간 등은 하나의 ‘무대’를 설정하는데 이 무대가 전환되는 지점을 구정보가 다시 대명사나 명사 표현으로 전환되는 곳으로 가정하였다. ST와 TT를 비교해보았을 때 서술의 관점이 바뀌고, 새로운 맥락이 나타나는 등 무대가 전환될 때 TT에서 생략이 되고 있던 ST의 대명사가 다시 언어 표현으로 나타나며, 무대를 공유하는 문장 내에서 한 번 소개된 구정보는 생략되지 않으면 어색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무대가 바뀌더라도, 접속사나 어휘적 표층결속성 공유하는 소주제(subtopic)가 같다면 생략이 가능했다. 즉 한국어의 생략은 영어의 대명사와는 달리, 구정보 이외에도 텍스트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었는지, 관점이 무엇인지, 서술이 일어나는 시간이 언제인지 등의 영향을 받으며 생략이 일어나지 않는 지점은 무대가 전환되었음을 표시해준다.
이 같은 영어 대명사와 한국어 생략의 기능 차이는 텍스트를 연결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음을 증명한다. 이 두 언어표현의 기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영어의 대명사를 한국어에서 그대로 번역하는 것은 그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잘못 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영어에서 대명사가 외부적인 연결망인 표층결속성으로 문장들을 연결시켜준다면, 한국어에서는 대명사가 연결의 역할을 하고, 생략은 같은 무대에 있는 항목들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대명사는 표층결속성을 이루는 표현 중 하나로 문장들이 모여 텍스트를 이룰 때 텍스트 외적으로 의미를 연결해주는 요소이다. 대명사가 쓰인 문장 안에서는 그 의미를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고, 그 문장과 연결된 선행 문장에서 지시하는 바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다른 문장과 관계를 맺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역시 대명사는 같은 기능을 지니지만 영어와 한국어의 사용 빈도가 달랐다. 텍스트를 연결시키는 대명사의 다른 쓰임의 원인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어의 생략 때문이며, 둘의 서로 다른 기능이 표층결속성을 연결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ST와 TT를 비교함으로써 한국어의 생략 현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번역 상 생략되야하는 대명사가 무엇인지를 연구하였다. 한국어에서는 서술의 무대가 동일 할 때 청자의 인지에 있는 구정보 항목은 생략되어야 하며, 이는 영어에서 구정보를 대명사로 반복하는 것과는 표현 방식이 다르다. 한국어에서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을 적합하게 선택하는 것은 효과적인 의사전달을 위해 언어 사용자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번역 시에는 한국어의 텍스트 구조를 이해하고, 대명사와 생략이 문장 내에서 지니는 기능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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