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문화다원주의 시대에 외래 문화의 효과적인 수용과 이의 적절한 소화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래 문화의 창조적 수용은 일차적으로 번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기...
세계화와 문화다원주의 시대에 외래 문화의 효과적인 수용과 이의 적절한 소화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외래 문화의 창조적 수용은 일차적으로 번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바로 번역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번역문화가 독창성이 부족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자국의 문화적 주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번역의 도움이 없으면 각국의 문화는 단절되고 융합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모든 인류 역사의 문화 교류에서 번역은 우선적이고 보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인 것이다.
이러한 실제 번역 못지않게 번역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비평 문화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다시 말해, 실제 번역의 양적 증대에 비해 번역본에 대한 이론적 해명과 분석이 부족했던 현 우리 번역문화 현실에서, 번역비평 문화를 돌아보고 나아가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를 고찰하는 데 이 연구의 자그마한 목적이 있다.
우리의 글은 커다랗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서론에 이은 Ⅰ부에서는 번역의 이론을, Ⅱ부에서는 문학번역에 나타난 실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번역은 두 언표의 동일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등가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러한 등가성 추구는 실제 번역 작업에서 그 목적에 따라 두 가지 대립항으로 나누어진다. 직역과 의역, 원어 중심과 역어 중심의 번역, 문자와 의미의 대립은 번역사를 통해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논쟁의 쟁점이 되어왔다. 여기선, 현대 프랑스에서 전개되고 있는 대표적 번역이론들을 출발어 중심주의와 도착어 중심주의의 두 가지 가능태로 나누어 살펴본다. 먼저, 출발어 중심주의자들로 앙뚜완느 베르망의 “문자 번역 traduction-de-la-lettre”과 앙리 메쇼닉의 “번역 시학 poe'tique de la traduction”을, 그리고 도착어 중심주의자들로 에지트(E.S.I.T.)의 “해석이론 the'orie interpre'tative”과 장 르네 라드미랄의 해석학적, 인식론적 관점의 번역이론을 고찰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방법론은 모두 번역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충실성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입장이 나누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출발어 중심주의 이론은 번역을 상호 문화 교류의 본질적 수단으로 보고, 출발 텍스트의 낯선 것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받아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수용 문화의 지평을 넓히려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출발 텍스트의 언어적 형태, 특성과 문화의 이질성을 가능한 한 놓치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타 문화의 이타성을 존중하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원문에 집착하게 되면 코드적 변환의 번역, 혹은 더 나아가 언어적인 어색함을 유발할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도착어 중심주의 이론은 번역을 의사소통의 한 방식으로 보고 의미를 도착 언어로 무리 없이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관점에선 언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며 번역자는 언어 그 자체의 형태에는 그다지 구속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수용자의 가독성을 위해 때로는 이질적인 것을 제거하거나 체계적인 변형을 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프랑스어나 독일어와 같이 비교적 가까운 언어 간이 아닌 서로 환기하는 바가 없는 언어들, 예를 들어 한국어와 프랑스어처럼 언어적 특성의 차이가 큰 경우에 이러한 번역 방법이 좀더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수용자의 가독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언어 구조상의 차이, 문화적인 차이, 사고방식 등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되어 외국문학 작품으로서의 특징이 지워지고 수정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라드미랄은 번역학이 궁극적으로는 실제 번역가들의 어려움을 분류하고 분석, 개념화함으로써 직관과 경험에 의존하는 번역가의 선택과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천 지향적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그의 주장이 다음에 연구하게 될 ‘번역비평의 이론’과 ‘번역의 실제’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현재 우리의 번역문화를 생각해 보면, 번역서의 양적 팽창과 달리 번역의 질적 수준은 보장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번역자들의 작품 이해 부족과 우리말 실력 부족, 낮은 번역료, 번역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인식 부족, 번역비평의 비활성화,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번역자 양성 교육의 부족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원본과 번역본의 비교를 통해 번역본의 특징을 평가하고 궁극적으로는 번역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번역비평 문화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의 번역과 저런 관점의 번역,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이 체계적으로 분류되거나 지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번역의 위상과 질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번역학이 이론과 실제의 조화를 목적으로 한다면 번역비평이야말로 번역학의 여러 분야들 중에서 가장 본질적으로 번역학의 목적을 수행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주체인 번역자의 번역 결과물에 대한 해석, 평가를 하는 번역비평이야말로 이론과 실제의 중간지대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사 비평자의 주관적 판단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할지라도, 또한 번역의 질을 평가하고 비평할 명료하면서도 객관적인 기준이란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하더라도 이처럼 체계적인 기준을 정립하려는 시도 속에서 번역의 질에 대한 성찰의 수준도 높아지고 실제 번역의 질도 향상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 해석이론적 비평(개념적, 시적, 문화적, 의사소통 면에서의 일치), 베르너 콜러의 과학적 비평(외연적, 내포적, 텍스트 규범적, 화용적, 형식적 등가)을 구체적 번역비평 방법의 예로서 고찰했다.
문학사에서 이상적인 것을 지향하는 낭만주의 문학과 현실적인 것을 지향하는 사실주의 문학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시대에 따라 달리 선호되었던 것처럼, 번역사에서도 출발어 중심주의와 도착어 중심주의는 시대에 따라 상대적인 우위를 보이며 발전해 왔다. 이와 같이 ‘원문에 충실할 것인가, 원문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라는 이 해묵은 논쟁은 앞으로도 어느 한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직역주의냐 의역주의냐에 대한 이 양 진영의 대립을 소모적이고 당파적인 논쟁의 문제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번역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려는 열린 태도로 이 논쟁을 해석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이 대립을 서로 다른 성찰의 방향과 학문적 토론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번역학의 긍정적인 요소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번역비평은 비평가의 기술(記述)면에서 최소한의 객관성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러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원본과 번역본의 비교분석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즉, 원본의 미적·정서적 효과를 중시하든, 아니면 의사소통의 관점이든, 비평의 기준은 원본 텍스트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번역본에 문학텍스트로서 온전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지나치게 되면 자칫 원본과의 상관관계를 놓쳐버리는 비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번역비평은 원본 텍스트와의 비교를 통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러한 번역비평의 활성화를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뜨거운 감자’, ‘금기의 영역’으로 취급되는 번역비평을 공개적, 객관적이고 발전지향적인 번역에 대한 논의를 펼칠 수 있는 분위기, 공감적 소통의 장으로 만드는 일일 것이다.
본 논문의 Ⅱ부에서는 문학번역에 나타난 실제라는 제목 하에 앞서 제시한 번역의 이론을 참고로 해서 우리 나름대로 실제 작품에 대한 별도의 번역비평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번역비평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고 객관적인 것은 아니지만 번역의 정확성과 문학성을 따지는 데에는 어느 정도 유효하리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번역 행위가 있어온 이래, 원문과 동일한 완벽한 번역은 없다. 언어체계와 문화가 다르면 다를수록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실제 텍스트에 나타난 번역 작업이 어떠한 인식론적, 해석학적 관점에서 행해졌는지, 그리고 어떠한 문제점들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실제로 번역가들은 앞서 라드미랄이 지적했듯이 의식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하나의 이론 체계를 세우고 있으며, 그 이론은 원어 중심적, 혹은 역어 중심적인 모습으로 번역문 속에 반영된다. 소위 직역과 의역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이는 실제 번역에 적용하는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대하는 인식론적이며 윤리적인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분석할 텍스트로 19세기 프랑스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을 선택했다. 1834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발자크의 앞선 모든 노력의 결과이며 그의 미래의 작품의 토대’라고 평가되는 대표적 작품이며 발자크 연구가들 사이에서 가장 빈번하게 다루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번역의 문제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원문과 두 종의 번역본의 번역문을 비교·대조하여 문제점을 비평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Le Père Goriot 를 검토하면서 1. 개념적 등가성, 2. 출발어의 특성, 3. 작가의 개인적 어법, 4. 독자들을 위한 장치를 비평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그 각각의 하위 비평 단위로 ‘개념적 등가성’ 면에서 ‘어휘, 문장 층위’와 텍스트 내적 층위인 ‘인지적 문맥’을, ‘출발어의 특성’ 면에서 ‘관용어구’와 ‘문화의 차이’를, ‘작가의 의도’ 면에서 ‘비유적 표현’과 ‘언어의 변별성’을, ‘독자들을 위한 장치’ 면에서 ‘파라텍스트’로 분류해 고찰한다.
번역 텍스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평하는 일은 번역학의 연구 대상이라 할 수 있지만, 가급적 오류지적에 그치는 것 보다는 그 원인과 인식론적 가치들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번역자도 인간인 이상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며, 문학 텍스트에 대한 절대적인 해석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번역자는 번역 문학의 수준이 그 나라 문화 전반의 수준과도 맞닿아 있다는 점을 상기하여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번역의 문제를 온전히 번역자나 출판사만의 문제로 치부하기 보다는 학계의 공정한 번역비평이 끊임없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번역에서 실제의 중요성이 큰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실천 없는 이론이 공허한 것처럼 이론이 갖추어지지 않은 실천도 무모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번역 이론이 공허한 이론으로 남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실제와의 긴밀한 연관성이 추구될 필요가 있다. 즉, 현재의 우리에게 번역학은 생산적 번역학의 모습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론이 실제와 교감하고 실제를 효율적으로 설명하고자 할 때 비로소 이론과 실제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고 소통의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며, 이론 역시 스스로를 검증하고 보완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이 문화의 수용과 재창조라는 원래의 역할을 다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번역의 중요성이 올바르게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즉, 번역을 통한 타자와의 만남은 세계화와 문화 다원주의의 시대에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비판하는 일이며, 나아가 사유의 지적 자원을 풍성하게 만드는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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