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초기 한국교회 여성의 무속성 연구
- 1884년∼1910년을 중심으로 -
기독교학과 장진경
지도교수 박정신
본 논문은 개신교 선교 초기인 1884년부터 1910년을 중심으로 한국...
국문초록
초기 한국교회 여성의 무속성 연구
- 1884년∼1910년을 중심으로 -
기독교학과 장진경
지도교수 박정신
본 논문은 개신교 선교 초기인 1884년부터 1910년을 중심으로 한국교회 여성에게 나타난 무속성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선교 초기는 선교사가 내한한 1884년부터 전래된 개신교가 정착하여 한국교회의 모습을 갖추어가던 1910년까지로 한국교회여성들의 활동이 전도와 교육에 집중되어 교회여성들의 신앙이 구형되어 가는 중요한 시기였다. 개신교가 전래되던 때의 한국의 종교상황은 기존의 불교, 유교 등의 주도 종교의 영향력은 사라지고 전통적인 민간신앙인 무속이 강력한 힘으로 여성과 민중의 종교로 남아있었다. 개신교가 전래된 지 124년, 한국교회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던 1920년대부터 안팎으로 교회 내 무속성의 잔재를 염려하는 소리를 들어왔다. 이러한 무속적 성향에 교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교회 여성들의 기여와 책임이 크다는 것은 기존 한국 교회사에 통용되는 주장이었다. 이에 선교 초기 여성들에게 전교되었던 신앙의 모습과 무속성 잔존에 기여한 교회여성들의 역할은 어떠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무속은 무당을 매개자로 재해초복을 추구하는 민간신앙이다. 본 논문에서는 무속의 개념을 영적 존재에게 현실적 풍요, 물질적인 복을 기구(祈求)함에 있어 개인이나 가족 중심으로 기복(祈福)하는 것에 종교적인 힘을 집중하는 것으로 한정하였다.
개신교의 복 개념은 성서의 종교로 복과 언약의 관계가 강조하며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인정한 구약과 고난과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추구를 복으로 규정한 신약의 복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러한 복 개념은 세상의 필요와 풍요를 구하는 것과 교회가 속한 사회와 국가 공동체의 유익과 섬김, 정의와 공평의 하나님 나라 구현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선교사에 의해 전해진 초기 개신교는 청교도 신앙과 자본주의적 성향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여성만이 여성을 전도할 수 있었던 한국의 당시 시대상황에서 내한여선교사들은 개신교 복음전파와 함께 서구문물의 전달자로서 문화전도사 역할도 담당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의 교육, 생활환경이었던 미국의 빅토리아 가정성의 토대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가난과 열국의 침탈 위협에 놓여있었던 한국여성들에게 교육과 의료 선교를 통해 복음을 전파하면서 선교사들의 유복한 서구적 생활 모습을 개신교 신앙의 열매인 것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런 선교방법은 한국여성들에게 개신교 개종과 교회 생활이 새로운 서구문물의 혜택을 받는 한 요소로 인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신교회는 무속을 미신으로 정죄하여 축출하려 하였으나 개인과 가족 중심의 기복 추구를 공동체의 유익, 사회적 책임 등으로 조화롭게 인도하는 개신교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교회 속에 무속적 잔재를 남기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전도부인은 한국어 능력 부족과 내외법에 제한받았던 내한여선교사들의 필요에 의해 탄생된 한국식 여교역자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하층민이나 버려진 여성, 과부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개신교 복음이 삶의 전환점이 된 강력한 신앙의 소유자들이었다. 여선교사들보다 축귀나 병치유의 기도능력이 탁월했던 그들은 초기 개신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큰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들은 개신교 개종 후 기초적 수준의 신학교육을 받고 여선교사들의 선교조력자로 봉사하였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수용한 개신교 신앙의 진정성을 점검해 볼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 채 교회의 여성리더로서 정착하였다. 전도부인들 역시 개신교 복음수용과 서구적 삶의 추구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자신과 가족들이 좀 더 나은 물질적 수혜자가 되는 것이 개신교 축복의 결과로 받아들였으며 선교사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성공적인 개신교 신앙생활의 결실이라고 믿고 전파하였다.
평신도 교회 여성들은 개종의 가장 강력한 이유는 병치유였다. 의료선교나 전도부인의 기도를 통해 건강을 찾은 사람들은 별 갈등 없이 개종하였다. 또한 축귀의식을 통해 회복한 사람들의 개종은 더욱 확실하고 신속하였다. 이들 중에는 전도내용이나 개신교 진리보다는 자신이 신앙하던 정령보다 더 위계가 높은 영적존재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더 나은 삶을 위한 교육의 기회나 서구적 혜택의 수혜를 목적으로 개종하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당시 여성의 개종은 생명의 위협과 가족과 부락공동체로부터의 유리되는 강한 핍박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개신교 복음을 수용 개종하여 순탄하게 교회 성원이 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개신교 진리보다 정령의 위계를 따라 교회에 들어 온 사람들은 자신의 무속적 경향을 그대로 담지한 채 교회의 일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무속적 요소의 잔존은 교회의 여러 의례들과 혼합되면서 과도한 봉사, 기도, 헌금 등의 한국적 특성을 지닌 종교의례로 자리하게 되었다.
신앙대부흥운동을 통해 한국교회여성들은 교회내의 개인적인 위상을 갖게 되었고 불교, 유교, 무속의 죄 개념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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